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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흥 Jan 18. 2016

잊을 수 없는 이름

이블 크니블

형, 안녕!

지난 주말엔 충남 태안으로 워크숍을 다녀왔어. 몇 년 전부터 한 해를 시작하며 이맘때 늘 있는, 중요하다면 중요한 행사지. 저녁 식사 후 잠시 짬을 내 어둠이 내린 바닷가에 나가 파도의  울음소리를 들었어.

'검푸른' 바닷가에서 수평선과 하늘이 몸을 섞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김민기의 '친구'가 떠올랐어.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 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눈 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눈 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https://youtu.be/siMfVqkTDAc

형도 알다시피 이 노래는 김민기 선생께서 고등학생 때 친구의 죽음을 겪고 만든 노래잖아. 저녁 바다는 외롭고 쓸쓸해서 그 불투명한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노라면 선뜻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해. 이 '친구'는 나도 수없이 불렀었지. 형 앞에서도 몇 번 불렀었던 것 같아.


'바다'와 '죽음'. 오늘의 '바다'는 '죽음'의 길목인 셈이네. 그 두 단어를 형에게 내놓은 건, 사실은 이 사람 얘기를 꺼내고자 함이었어(바다와는 상관 없긴 하지만).


이블 크니블 Evel Knievel.

2007년,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형을 생각했지. 어쩌면 형의 운명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을 지도 모르니까 말야. 이소룡 까지는 아니어도 형은 이 사람에게도 많이 빠져 있었잖아. 형이 그의 이름을 내게 처음 알려줬을 때의 장면이 떠오르네. 형은 농담 삼아 "이블 크니블. 이불은 이불인데 큰 이불이야." 라고 했잖아(형의 유머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었지).


나는 역시 형을 통해 그가 전설적인 오토바이 스턴트맨이란 걸 알았고, 형은 역시 형답게 그를 연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실행에 옮겼잖아.

오토바이.

사실 형은 초등학생 때 이미 아버지의 집채만 한 짐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걸 나는 알아. 형의 자전거 타기는 경이로울 정도였지. 형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형은 자전거 뒤에 항상 짐 대신 형 친구들과 나까지 보통 대여섯 명을 태우고 부평 신촌은 물론  부평 시장바닥까지 누비고 다녔었잖아. 누구도 형 자전거 뒤에 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지. 모두 형의 자전거 타기를 믿었으니까. 아니, 형을 믿었으니까. 형의 오토바이 실력 역시 대단했지. 아마도 형의 몸은 타고났었던 것 같아. 축구, 스케이트, 자전거, 오토바이... 모두 다리와 관련된 것들. 나 역시 형처럼 다리와 관련된 스포츠를 유난히 좋아하는 건 우연이 아니었던 거지. 물론 형의 손재주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려고 해.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형은 내게 오토바이를 가르쳐 주었지. 내가 자전거를 탈 줄 알았으므로 형은 내게 기어 넣고 푸는 법을 알려주고는 바로 내게 오토바이 핸들을 맡겼지. 하지만 형으로부터 오토바이를 넘겨받은 나는 그 육중한 오토바이의 무게에 겁을 먹었고, 역시 출발하자마자 넘어져 버렸지. "나 오토바이 안 탈래."하며 끝내 오토바이 배우기를 거부했었지. 그 후로 제대로 오토바이를 타 본 적이 없었어. 형이 오토바이로 인해 세상을 떠난 후 내게는 오토바이 트라우마가 생겨버렸지.  TV 뉴스에서 오토바이 사고 뉴스라도 나올라치면 나는 어머니를 힐끔 쳐다보고 슬며시 채널을 돌리곤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 물론 그 트라우마는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아...이블크니블의 아들 중 로비크니블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토바이 스턴트맨이 되었고, 아버지가 실패했던 그 '시저스팰리스 분수 공연'을 성공했다던데 나는 앞으로도 오토바이를 탈 생각은 없어. 형을 닮고 싶어 나도 해병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형이 반대했었잖아. 나는 형의 마음을 알 수 있거든...

아이러니하게도 이블크니블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당뇨와 폐섬유증이라는 병으로 인해 세상과 이별했고, 형의 마지막을 목격한 건 오토바이였어.  그렇다고 해서 그와 형을 비교할 수는 없어. 한때는 형이 좋아하는 것을 하다가 죽음과 만났다는 사실에 애써 의미를 두려 한 적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생각은 접었어. 어떤 형태로든 삶이 아닌 죽음은 허망할 뿐이므로. 이별 중에 가장 큰 슬픔을 는 게 바로 죽음이잖아. 삶 안에서의 이별은 그 어떤 이별이라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치유될 수 있는 아픔을  남길뿐이지. 며칠 전 이 시대의 큰 인물 한 분도 유명을 달리했는데 세상에 남겨진 건 역시 큰 슬픔이야. 죽음이, 특히 급작스런 죽음이 가져다주는 허망함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지. 느낌보다 자세한 표현의 도구는 없으니까.


그의 기일도 아니고 그가 떠올라야 할 사건도 없었는데 뜬금없이 이블크니블이 떠오른 건 지난 주말 저녁의 바다를 보며 떠오른 노래 '친구'와 '죽음'이란 단어들 때문이었을 거야. 물론 형이야 항상 내  가슴속에 살아있지만... 형에게 그가 다가오지 않았다면 형의 운명도 바뀌었을까? 그러나 과거의 일에 '가정(假定)'으로 묻는 물음은 무의미하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게. 형이 그토록 좋아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나도 무의식적으로 그를 좋아했었던 것 같아. 많이는 아니었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어떤 것을 너무도 좋아하여, 그 어떤 것을 하다가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다행인가? 다만, 앞으로는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것을 하며 살겠다는 다짐은 했어. 행복은 거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 안에 있다고 믿으니까.


오늘은 바람이 심하게 부네. 형이 있는 곳에 감기 같은 건 없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렇게 말하며 맺고 싶어.

"형, 감기 조심해..."


2016년 1월 18일. 형의 사랑하는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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