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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Dec 21. 2022

작가님, 책 좀 읽으세요

글 쓰는 노동자의 험난했던 업그레이드기



| 작가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5년 전이었습니다. 방송에 있던 저는 짧은 휴식기를 거쳐 이직을 했고 광고라는 곳에 몸을 담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생긴 영상팀은 제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곳이기도 했죠. 인수인계는 없었고 당장 해야 할 일도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하루하루를 심난하게 버티면서 나만의 업무를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던 어색한 PD 두 명이 갑작스럽게 퇴사를 한 후, 팀은 새로운 사람들로 다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메인 PD 2명과 AD 두 명, 영상 작가인 저까지 총 5명으로 팀은 북적였습니다. 소개로 오게 된 이 사람들은 이전에도 비슷한 계열의 광고회사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퇴사한 사람들보다, 업에 대한 이해나 영상 작업에 대한 실력이 뛰어난 것 같았습니다. 비록 인생에 대한 결은 좀 달라 보였지만요.


한동안 이래저래 업무의 호흡을 맞추어가던 어느 날, 좀 더 젊었던 메인 PD가 이런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 작가님, 제가 조언드리는데.. 책 좀 읽으세요.



순간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고매한 등단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글을 업으로 하는 영상 작가에게 책을 읽으라는 용감한 조언을 서슴없이 하다니. 당혹스럽고 창피했습니다. 딱히 인간적인 유대감이 없었기에 무례함에 분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조언도 막상 받고 나면 방어적이 되는 게 인간인지라 저 또한 스스로를 위한 변호가 순식간에 손 끝까지 차올랐습니다. 아니, 내가 그동안 읽은 책이 얼만데! 보나 마나 내가 당신보다 공부도 더 잘했다고요! 하는 유치한 반박들도 머리에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왜 저런 이야기를 보내야 했는지 저는 알 것 같았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텍스트를 적어 내려 갔습니다.



- 아,, 안 그래도 책을 안 읽은 지 꽤 된 것 같아요. 조언해주셔서 감사해요!








| 글 쓰는 PD, 감 없는 작가


사실적이고 보도적인 방송 글쓰기와 표현적이고 감각적인 광고 글쓰기. 방송의 글쓰기와 광고의 글쓰기는 목적과 결이 사뭇 달랐습니다. 방송작가를 시작으로 이쪽 업계에 발을 들인 저로서는 광고의 문법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딱히 누구 하나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인쇄물을 담당하는 카피라이터들이 주는 글을 보면, 그냥 텍스트의 의미 없는 나열처럼 읽혔습니다. 광고적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하지 못하고 광고 영상 카피를 흉내 내듯 쓰던 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독서에 대한 조언을 한 PD는 그런데, 가끔 광고 카피를 쓰기도 했습니다. 경력이 말해주듯 이쪽 일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잘 하든 못 하든 광고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선 분명 저보다 한 수 위였던 것입니다. 새로운 분야에서 저는 분명 초보였습니다. PD는 그런 면을 지적했던 것이고, 그에 대한 해결책의 한 방법으로 많은 책을 읽고, 광고에 대한 감각을 키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정말 책을 손에서 놓은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반발심이나 피로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들어오는 텍스트가 없다 보니, 내놓는 텍스트도 늘 한정적이었습니다. 쓰던 단어, 쓰던 표현, 새롭지 않은 아이디어로 하루하루 버틴 것이 들통나 저는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운동하는 사람이 근력을 키우듯,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습니다.







| 성장의 계기는 아플 수 있다, 하지만


2022년 12월. 그 조언을 들은 뒤로 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지금 회사에서 인정받는 작가이자 카피라이터입니다. 그날의 날카로웠던 조언은 이후로도 쭉 저를 떠나지 않았고, 저는 책을 읽기 시작했거든요. 책을 읽다가 책 모임을 만들었고 더 많은 책을 읽었고, 사유를 키웠습니다. 제 안에 글을 담는 그릇을 키웠습니다. 전보다 더 많은 텍스트들이 제게 왔고 브런치를 시작했고 어떤 날들마다 글을 썼습니다. 그날의 조언을 받아들인 덕분에, 저는 지금 글 쓰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 책을 내고 싶다는 더 큰 꿈을 꾸게 되었고요. 여전히 그날의 씁쓸한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분명 그날은 제가 꼭 한 번은 겪어야 했던 성장의 계기였습니다.


성인이  이후에도, 우린 계속해서 성장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외적인 성장은 끝났지만, 내적인 성장은 우주의 영역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 분명 괴로운 날들도 찾아옵니다. 저의 자존심을  많이도 꺾어야 했던 그날처럼요. 하지만 바로  순간 덕분에, 상상하지 못했던 당신의 멋진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성장통은 분명 아프지만 분명한  우린 반드시 성장해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 1 남짓한 시간 동안 함께했던 그에게 작은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나에게 굴욕을 주어 고맙습니다. 덕분에, 성장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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