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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Dec 05. 2023

부러운 카리스마

첫째 아들은 내년이면 중2가 된다. 아직까지 태권도 학원만 주구장청 다니던 아들이 

 '이제 수학 학원을 다녀봐야 할 것 같은데...'라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이왕이면 아들은 판서 수업하는 곳 말고, 개별 진도하는 곳으로 다녔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드디어 스스로 학원을 다녀보겠다고 한 날이 온 것이다. 

마음이 바빠졌다. 그런데 나는 워낙 여기저기 알아보고 비교해 보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이라 동네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친구는 이쪽으로 아주 관심이 많고 빠싹하게 잘 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학원 2군데 상담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오늘 아이하고 같이 상담을 받으러 갔다. 

처음 간 곳은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원장님이 상담을 해줬다.

혼자 집에서 학교 현행에 맞춰 공부한다는 아들의 얘기를 듣고 

그동안 잘해왔겠지만, 그런 식으로 앞으로 쭉 한다면 점점 힘들어질 거라며

선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무조건적인 선행은 안된다는 말도 했다. 

그분의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저 남득이 되면서 약간의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그렇다고 그 학원이 딱히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상담하고 나오는 데 아들이나 나나 약간 씁쓸한 감정은 들었지만 

나쁘지는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집하고 거리가 조금 멀었다. 

두 번째 간 곳에서는 레벨 테스트를 했다.

50분 이상 문제를 풀고 나온 아들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테스트 결과는 나쁘지 않게 나왔다. 집에서 혼자 공부를 잘하고 있었다며 칭찬해 줬다.

하지만 역시 선행을 강조하며 이렇게 하면 당장 내신은 괜찮겠지만 

고등학교 가서 힘들어질 거라고 했다. 

심란한 말이었다. 뭐 그렇다고 늦은 건 아니니 이제 시작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아들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간단하게 상담을 끝내고 나왔다. 

아들한테 물어보니, 테스트 보던 교실에 아이들이 수업받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어떤 아이에게 혼을 내더라는 거다. 여러 번 알려준 건데 또 틀렸다고.

아들은 그 모습을 보니 너무 화가 났다고 했다. 틀리면 혼나야 하는 게 싫다고.

아휴, 그럼 여러 번 알려주고도 계속 틀리면 누가 좋게 말하겠냐고 했지만

아들은 고개를 저었다.  


학원을 괜히 알아봤다며 퉁퉁거리는 아들, 

그럼 다른 학원을 다시 알아보자고 달래는 엄마,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상황이 걱정된다는 아들,

다들 그렇게 산다고 말하는 엄마,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아들, 

하던 대로는 안되고, 조금씩 시간과 공부량을 늘려보라는 엄마,

서로 답을 못 찾고 핑퐁 대화만 하며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왔다. 

일찍 퇴근해서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린 남편은

아들의 학원 결정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어땠어? 결정했어?"

"고민이래요."

"왜?"

아들하고 나눈 대화를 남편에게 그대로 해줬다. 

내가 조금이라도 왜곡해서 얘기하면 아들은 바로 고쳐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남편은 부드럽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 그래도 일단은 다녀봐. 난 처음 간 학원이 더 낫겠는데.

3개월 정도 다녀 보다가 아니면 그때 그만두면 되지 뭐."

나는 아들 눈치를 아들은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아들의 시선을 피하고 남편의 눈만 봤다.

아들은,

"그, 그럴까."

"그래. 그래보자. 다녀보고 아니면 마는 거지 뭐. 엄마가 내일 전화해서 등록한다고 할게."

"어? 내일? 그럼 언제부터 다녀?"

"음... 다음 주부터 다니면 되겠네."

"어, 알았어요."

아들은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지 이 쉬운 결론은!

남편의, 아니, 아빠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쉽게 결정을 하다니!

살짝 서운하긴 하지만 그래도!!

.

.

.

휴우~ 다행이다. 

당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부럽소!

아들의 감정에 끌려다니지 말고 딱 끊어서 말해줘야 하는데 

아, 나는 왜 이게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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