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콘센트 찾아 삼만리
나는 심한 ‘방전형 인간’이다. 언제나 나의 휴대폰은 저녁이 되면 5프로, 3프로, 그리고 이내 방전이다.
이 버릇은 생각해 보면 20대 때부터 노상 지속되었었는데, 그나마 그 당시엔 여분의 충전 배터리가 있어서 자는 동안 충천하고 그걸 가방에 넣어 다니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일체형 핸드폰이 대세가 되면서 나 같은 방전형 인간은 곤란한 경우가 참으로 많다. 회사에서 업무 지시가 내려왔는데 대답을 하려던 찰나 ‘삐리릭’ 핸드폰이 꺼져버려 졸지에 읽씹 한 직원이 되던 순간이라든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소개팅 후 간만에 마음에 든 상대와 한참 카톡을 주고받고 있는데 ‘스르륵’ 또 핸드폰이 꺼져버려 ‘으악!‘ 현실 육성이 터져버린 경험 같은 것들 말이다.
남편을 비롯해 나의 이 습성을 아는 친구들은 ‘보조 배터리 좀 가지고 다녀라’ 혹은 ‘아니면 충전 줄이라도 제발 가지고 다녀라’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해보지만, 집에 보조 배터리가 두 개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절대 들고 다니질 않는 걸 보면 이건 무언가 뿌리 깊게 박힌 습관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요즘은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정신 차리고 충전줄을 들고 다니는데, 내가 가는 곳마다 충전용 콘센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콘센트를 찾아 삼만리로 여기저기를 샅샅이 다니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한 번은 지하철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 핸드폰이 속절없이 방전되어 버렸는데, 친구와 중요한 약속을 잡고 있을 때라 불안증과 금단 증상이 몰려와 어디라도 콘센트 구멍을 찾아 충전잭을 꽂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돈이라도 떨군 사람처럼 미친듯이 이리저리 눈을 굴려가며 걷다가, 승강장 자판기 뒷공간, 즉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공간에서 드디어!! 콘센트를 발견하고 말았다.
유레카!!!
지금도 일과를 마치고 자주 들르는 카페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정확히 30분이 걸렸다. 카페에 들어올 때 분명히 5프로였는데, 카톡 확인 몇 개 했다고 금세 4프로, 브런치 글들 몇 개 봤다고 3프로다. 빈 구석에 앉아서 다이어리 좀 쓰면서 콘센트 있는 자리가 나는지 봐야지, 했는데 여기저기 자리들만 수시로 둘러보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냈다. 이미 3년이 넘게 써서 떨어질 대로 떨어진 나의 올드 패션드 핸드폰 성능을 탓하면서도 ‘이제는 기필코 보조 배터리를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다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걸 보면, 나란 사람은 참 나다.
고개를 들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본다. 주변 10개의 테이블 중 지인과 순수히 담소를 나누고 있는 테이블은 하나, 나머지는 노트북으로 무언가 작업을 하거나 핸드폰 삼매경인 테이블들이다. 모두가 충전에, 충전기에 의존하고 있는 ‘방전 권하는 사회’. 나도 편하게 이 모든 전자기기의 혜택들을 누리고 있지만 어째 조금은 예전이 그리워진다. 그게 언제였는지 이젠 까마득하지만, 충전 콘센트를 찾아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