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독학클럽] 프리워커 앤가은님
안녕하세요, 단단입니다.
혼자서 성장과 균형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지칠 때가 있잖아요. 비슷한 생각을 하는 메이트와 같이 고민하면 서로 응원과 기운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어요.
[브런치] 앤가은
[인스타그램] @ann_gaeun
[유튜브] 앤가은anngaeun / 따뜻하고 차가은
[포트폴리오] 프리랜서 제작자 / 마케터 이가은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함께하는 독학클럽>. 벌써 세 번째 인터뷰이를 만났다.
고민하며 인터뷰 요청 메시지를 작성해놓고서 [전송] 버튼을 누르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 눈을 질끈 감고 메시지를 보냈다. 혹여나 거절당해도 상처받지 말자고 씁씁하하- 심호흡을 쉬고 메시지창을 열었다.
"너무 좋아요!! 무조건 할래요!!"
일을 하다보면 꼼꼼하게 따져보며 결정해야 할 때도 있지만 감을 믿고 질러야 할 때가 있다. 평소에 차곡차곡 데이터를 모아두었다가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빠르게 결정하는 사람을 보면 생각한다. '프로구나!'
단단 | 가은님, 안녕하세요! 함독 메이트 여러분들께 간단하게 인사 부탁드려요.
가은 | 안녕하세요, 올해 4월부터 회사 밖에서 프리워커 실험을 하며 제작자 / 마케터 / 크리에이터로 일하고 있는 앤가은 입니다.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들고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단단 | 프리워커 실험 이야기 정말 궁금했어요. 가은님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계신지, 어떤 히스토리를 가지고 계신지도요.
이번 뉴스레터의 주제는 <일을 놀이처럼 놀이를 일처럼>이다. 진짜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일과 놀이의 경계가 없다고 한다. 가은님의 일 기록을 보면서 '일하는 거 맞아? 즐기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활동으로 에세이와 영상을 만드는 가은님을 보면 '일하고 있는 거 아니야?' 싶다.
인터뷰를 하며 알았다. 애초에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었다. 경계가 흐릿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분명한 경계를 인지하기 때문에 두 세계에 모두 존재할 수 있었다.
가은 | 저는 좌뇌가 우뇌가 고르게 발달한 케이스에요. 학교 다닐 때 언어/수학/과학을 모두 좋아했어요. 생명과학부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실험실에서 밤새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들여다보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취미로 연극 활동을 하면서 '내가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알게 되었어요.
엄마한테는 약대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말하고 휴학했어요. 그리고 알바로 돈을 모아서 유럽 여행을 갔어요. 여행에서 돌아와 시험은 안 보겠다고 하고, 마케팅으로 전공을 변경했어요. 전공을 바꾼 스토리, 나를 표현하고 싶은 간절함이 보였는지 공모전이나 피티 대회에 나갈 때마다 대상을 받았어요. 재능이 있다는 확신을 했죠. 졸업할 때가 되어서 취직을 하려는데 대기업은 못 가겠더라고요. 제 성향이 부품이 되는 걸 못 견뎌요. 대기업이 아니라 내가 프로로 일할 수 있는 작은 회사로 가는 게 나에게 맞는다는 걸 알았어요.
가은 | 취업 준비를 할 때 평소에 팔로우하던 분이 페이스북에 PR 담당자 채용 공고를 올렸더라고요. 보자마자 '내 자리다' 싶은 거에요. 8년차 경력 채용 공고였지만 지원했어요. 감사하게도 마케팅팀 신입으로 채용이 되었고, 20년차 선배에게 혹독하게 일을 배우면서 폭풍 성장을 했어요. 1년 반 쯤 지나고 성장 속도가 느려진다고 느껴지니까 재미가 없더라고요.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재미있는지 생각해봤더니 캠페인 만들고, 아이디어 짜고, 화면 구성 할때 였어요. PD와 AE 직무, 좋아하는 광고를 찾아보다가 이노레드라는 디지털 에이전시를 알게 되었어요. 학교 선배가 거기 다니고 있었는데 너무 가고 싶어서 연락드렸거든요. 물론 내부에 연결만 시켜주셨고, 직접 3차 면접까지 모두 통과해서 입사를 하게 됐죠. 성과를 잘 내던 일이 퍼포먼스 마케팅이었으니까 우선 미디어 플래닝과 미디어 크리에이티브로 일을 시작했어요.
* AE 직무란? 광고대행사와 광고주 사이에서 기획과 업무 조율을 담당하는 책임자
* 가은님이 '크리에이티브'라고 표현한 영역은 문맥에 맞추어 미디어 콘텐츠와 창작으로 변경했습니다.
하고 싶었던 콘텐츠 영역과 딱 맞아 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뉴미디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으면서 숫자와 콘텐츠 제작에 대한 감각도 키울 수 있는 일이었죠. 많은 브랜드의 광고 플래닝을 했고, 배달의 민족 광고는 3년 넘게 담당했어요. 입사 후 1년이 지나고 팀장님께 콘텐츠 기획/제작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너무 잘 하고 있고 여기에 재능이 있으니까 계속 같이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아 내가 여기에 재능이 진짜 있나보다. 그리고 팀 분위기도 너무 좋았어서 그렇게 3년을 함께 했어요. 그러다 다시 성장 정체기가 온 거죠.
주위에서도 지금 하는 일이 전망이 좋으니, 콘텐츠/창작 영역에 대한 갈증은 취미로 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취미로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너무 잘 된 거에요. 구독자는 많지 않았는데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 저희 부모님 집에 있는 가전제품을 모두 협찬 제품으로 바꿔줬어요. 퀄리티 있는 영상을 만들다보니 광고 의뢰가 많이 들어왔어요. 관광공사에서 상해 여행 티켓이랑 호텔 숙박권을 받고 100주년 기념 영상을 제작했어요. (영상 보기)
유연한 광고회사인만큼 대표님도 유튜브를 하셨고 직원들에게도 개인 채널 운영하라는 말을 하는 분위기였어요. 유튜브 채널이 잘 되는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크리에이터일로 수익을 얻었을 때부터는 조심해야한다는 피드백을 받았죠. '다른 직원들이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렸고요. 각자 쉬는 방식이 다른 건데 이게 문제가 될 수 있구나 생각이 들었죠. 게다가 저한테는 유튜브를 통해 내가 콘텐츠/창작 영역에 대한 재능이 있는지를 테스트를 해보고 싶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사이드프로젝트로 스몰 브랜드의 필름을 찍어드리는 기획을 해보기도 했던거구요.
이 정도로 하고 싶어한다면, 콘텐츠 기획/제작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어요. 당시에 브랜디드 콘텐츠가 붐 업을 일으키기 시작할 때였거든요. 워크맨이나, 토스 다큐멘터리, 브랜드 단편 영화 같이, 광고와 콘텐츠의 경계 사이에 있는 것들이요. 브랜디드 콘텐츠팀을 만들자는 제안서를 써서 대표님한테 찾아갔어요. 우리 회사도 브랜디드 콘텐츠를 빠르게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고, 제가 너무 하고 싶다고요. 그때 대표님이 대답이 '광고의 역사는 깊고, 브랜디드 컨텐츠는 이제 막 주목을 받는 영역이라 당장 피봇팅 하기는 어렵다. 우선 캠페인 제작팀으로 가서 일을 해보자.' 였죠.
숫자를 다루던 팀에서 제작팀으로 이동 하는 것도 회사에서는 제게 큰 기회를 준 것이었기 때문에, 저는 우선 제작팀에서 최선을 다 했던 것 같아요. 제 아이디어로 광고를 만들어 보기도 하면서 1년 정도 열심히 했어요. 취미로 하던 것이 본업이 되니 취미를 할 필요가 없어서 유튜브는 문을 닫았죠. 아쉽지도 않았어요. 덕분에 비로소 덕업일치의 삶을 산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하면 할 수록 제가 하고 싶었던 건 '광고'가 아니라 '광고와 콘텐츠의 경계를 허무는 것'영역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구요. 당장 새로운 팀을 만들기도 어렵고 만든다고 해도 클라이언트 프로젝트가 당장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다리는 데 시간이 걸릴거라고 예상했어요.
이제는 이전처럼 기다리지 말고 하고싶다면 바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양하게 브랜드와 뉴미디어 컨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회사 밖으로 나왔어요. 업무의 형태도 새롭게 경험 해 보고 싶기도 했고, 저의 방향을 재정비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명확했어요.
가은 | 막상 나와보니 생각보다 밖에서 지내는 게 잘 맞더라고요. 직장인보다 프리랜서가 더 몸값이 높기도 하고요. 브랜드가 에이전시에게 광고를 맡기면 기획/광고 운영 수수료를 내거든요. 회사가 아닌 개인 프리랜서에게 맡기면 수수료를 절감하면서 기존과 비슷한 퀄리티의 결과물을 받을 수 있는 거죠. 회사는 비용을 절감하고 프리랜서는 월급보다 페이가 더 높은 수당을 받는거죠. 그래서 자꾸 흔들렸죠. 회사 다닐 때와 같은 일을 하면서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버니까요. 그렇지만 회사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하려고 나온 게 아니라 콘텐츠를 실험해보고 싶어서 나온 거잖아요.
단단 | 가은님이 하고 싶은 일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어요?
가은 | 크리에이터라는 정체성을 견고히 하는 일들이예요.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뉴스레터를 보내거나, 제작자로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게 될 수도 있죠. 여러 다른 브랜드의 영화나 필름을 만들거나, 에디터로 콘텐츠를 만들어드리거나 워크샵을 열기도 해요. 결국 내 일과 브랜드의 일이 모두 창작하는 영역의 일인거죠. 글, 영상, 사진, 목소리 뭐가 되든지요.
처음에는 유튜브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이 있었어요. 회사 다닐 때 유튜브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기도 했잖아요. 저는 그 피드백을 '일을 잘하고 싶은 게 아니라 튀고 싶은 거 아냐?' 라고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저는 유명해지고 싶은 게 아니라 콘텐츠 제작에 역량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거였거든요. 인플루언서가 되기보다는 광고 제작자, 콘텐츠 제작자로 성장하고 싶었다는 거죠.
프리랜서가 되어 보니 결국에는 내 콘텐츠를 해야 하더라고요. 처음엔 헷갈렸어요. 아닌가? 나 유명해지고 싶은가? 제가 속물같다고 느끼면서 자기검열을 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거 봐, 퇴사하고 유튜브 하잖아.' 그 말이 싫어서 과도하게 브랜드 일을 많이 받기도 했었고요. 지금은 인정했어요. '나는 좋은 워커도 되고 싶은데, 크리에이터로서 사는 것도 좋아.' 너무 재미있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는 게 행복해요.
단단 | 브런치에서 '유튜브는 하고 싶지 않았다.'라는 문장을 봤는데, 그게 이 맥락이었던 거죠?
가은 | 맞아요. 크리에이터로서의 존재감이 부각되면 프로의 느낌이 안 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클라이언트와 만났을 때 제가 워커인 것과 인플루언서인 것은 다르거든요. 인터뷰 주제로 다시 돌아가보면 제게 크리에이터는 재미있고 시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놀이고, 반대로 워커로서의 일은 잘 해내야 하는 영역인거죠.
가은 | 제작팀으로 옮기고 1년이 채 안 되었을 때 대표님이 '가은아, 너 콘텐츠 제작이 맞더라. 잘하더라.'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아... 결국에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면 남의 인정을 받을 수 있구나.' 자신을 믿으면 남의 인정도 받을 수 있는 거였는데, 외부의 말을 듣고 3년을 끌었던 거에요. 안 해본 거니까 잘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몰랐던 거죠. 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믿었어요. 내가 당장 내일 '이거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가면 된다고, 거기서도 인정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순간이었어요. 스스로를 좀더 인정해주는 삶을 살자. 남의 인정에 중독되지 말자고요.
단단 | 워커와 크리에이터를 분리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일과 놀이로 나눌 수 있을까요?
가은 | 그렇게도 분류할 수 있고 남의 일을 해주고 돈을 버는 행위인지, 내 일을 하는지로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남일이 내 일이 되면 좋은 거잖아요? 그 교집합이 커지면 커질수록 만족도가 커지고요.
단단 | 그 교집합이 커지는 게 일과 놀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거죠.
가은 | 계속 교집합을 찾고, 키워나가려고 하는 거죠.
단단 | 퇴근 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직장인, 프리랜서를 보면서 느낀 게 있어요.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쓴다고 해서 '자유롭게 일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유연근무제를 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한달에 정해진 시간만 근무하면 되거든요. 오늘 6시간 일하고 내일 10시간 일하는 게 가능한 거죠.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로 공간의 제약도 크게 뛰어넘었고요. 그래서 이제는 '자유롭게 일한다'는 것이 다른 의미로 느껴져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해요.
단단 | 저는 쉼이 너무 중요한데 각자의 쉼의 방식이 다르잖아요. 저는 개인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서 회사 일을 10시, 11시까지는 못 하겠더라고요. 가은님에게 일과 쉼의 균형은 어떤 모습이에요?
가은 | 광고 회사 다닐 때는 균형이 없었어요. 아이디어가 나올 때 까지 해야하니까요. 그 때는 쉼이 없다고 엄청 힘들진 않았어요.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에 더 집중을 했죠. 그런데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는 제 시간이 너무 소중하더라고요.
클라이언트의 외주를 받아서 내 이름을 걸고 하니까 일과 쉼의 균형이 무너질만큼 일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저의 창작이 쉼인데 남의 일에 매몰되니까 회사 다닐 때와 다를 게 없는 거에요. 시간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 없는 거죠. 회사는 적어도 불을 끄고 집에 가기라도 하는데 지금은 집에서 하니까 새벽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일을 받을 때 몇 시간 내에 결과물을 낼 건지 시간을 정해둬요. 쉼이 확보되지 않는 일이면 안 받아요. 제가 말하는 쉼은 제 창작 활동을 할 시간이에요.
하고 싶어하던 일을 제안받은 적이 있었어요. 문제는 3개월 동안 다른 외주 일을 하면 안 되고 그 회사 일만 해야 한다는 거에요. 10시부터 7시까지 일하는 삶을 떠나온 지 6개월밖에 안 됐는데도 그 시간을 내는 게 너무, 내 쉼(창작) 을 너무 방해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짜 고민하다가 거절했어요. 그 거절을 기점으로 거절한 프로젝트가 많아졌어요. 거절을 해야 나를 지킬 수 있더라고요.
단단| 그때 세운 거절의 기준이 뭐에요?
가은 | 제 1의 기준은 하고 싶은 영역인지에요. 그 다음에는 결과물을 시간이 아니라 작업으로 요구하는지에요. 디자이너에게 로고를 만들어 달라고 하지, 10시간을 작업해달라고 하지 않잖아요. 이제 우리가 일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할 때가 왔어요. 프리랜서에게 '너는 몇 시간을 내어줄거야?'라는 질문은 결과의 퀄리티보다는 상대의 시간을 뺏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몇 시간이 되었던 최선을 다 할 건데요.
단단 | 제가 재택근무하면서 느낀 것도 그거였어요. 그동안 노동의 대가로 돈을 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제 시간을 내어준 대가로 돈을 벌고 있었던 거더라고요.
가은 | 그래서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회사 다닐 때는 야근이 당연했는데 사실 우리가 회사에서 9시간을 매 순간 집중해서 일하지는 않잖아요. 야근하는 날도 있고, 2시에 퇴근해도 되는 날도 있잖아요. 프리워커 시장은 커질거고, 조직도 일하는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단 | 불안함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시간으로라도 매어두지 않으면 안 될것 같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나봐요. 예전에는 시간을 투입하는 게 생산성인 시대가 있었거든요. 그때는 정확하게 시간을 투입해야 정확한 결과물이 나왔죠. PPT 보고서를 손으로 쓰던 시대에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분들의 사고가 아직 거기에 멈춰있다고 생각해요. 손글씨 2시간 쓰는 것과 3시간 쓰는 것의 결과물이 다르니까요. 지금은 어떤 생산성 도구를 쓰는지, 어떻게 기획하는지, 누가 하는지에 따라 똑같은 결과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다른데, 그걸 실무로 해보지 못한 경영진은 이해 못하는 거죠.
단단 | 올해 프리워커로 일을 해보면서 새로 알게 된 일에 대한 관점이 있어요? 경계에 대한 필요성도 느끼셨던 것 같고, 일에 대한 기준도 세웠고, 또 얻은 게 있나요?
가은 | 김호 작가님이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에서 아파서 나오는 것 말고 자발적인 쉼표가 필요하다고 하셨잖아요. (단단과 가은이 공감하게 읽은 책) 어제 미팅을 갖는데 임원이 '공백기에 뭐하셨어요?' 라고 묻더라고요. 그분에게는 회사 안에서 하는 일만 '일'이더라고요. 저는 지금 이 시간을 공백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 질문에 타격 받지 않고 대답했죠. 나오자마자 웹 영화 만들었고, 기존 클라이언트에게 일을 받아서 다큐멘터리 채널도 만들었고 등등이요.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은 조직에서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회사 밖에서 일하는 최신의 문화를 접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나와서 얻은 것은 일의 형태는 정말 다양하고 사람마다 일하는 재능은 다양하다는 거에요. 혼자 일하다보니 동료와 함께 복작복작 일하는 게 즐거웠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고요.
회사에 있을 때 셀프 브랜딩을 할 수가 없었어요. NDA (기밀 유지 협약) 때문에요. 그럴 시간조차 없었지만요. 경험한 것을 글로 풀고 정리하면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할 수가 없었던 거죠. 회사를 나와서 5년차가 넘어가는 시점에 커리어를 이렇게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꼭 필요했구나, 알게 되었죠. 다른 분들에게도 자발저긴 쉼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데 일단 그러려면 제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시기를 건강하게 잘 보내고 싶어서 기록 클럽을 3번 진행했고, 제 에세이도 쓰고, 영상도 만들고요.
단단 | 10월에 <앤가은 일과집> 에세이를 뉴스레터로 연재하고 계시잖아요. 그 레터를 읽으면서 아! 이건 가은님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마다 쓰는 글이 다 다르잖아요. 예를 들면 저는 한 가지 감정의 끝까지 가보는 사람이거든요. 실망이라면 실망을 끝까지 파헤쳐보는 사람인거죠. 그래서 제 글은 누군가에게는 명중하지만 누군가는 버거워할 수 있죠. 가은님의 글은 그 상황의 분위기를 담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단정한 경쾌함> 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해봤어요. 분위기를 잘 포착하는 게, 상황 속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불안감, 열등감, 조급함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느끼고 표현하는지만 다른 거죠. 그게 매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 감정의 끝까지 가보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고요. 가은님은 "불안의 파도를 타보자! 출렁출렁대는 파도처럼~" 이런 사람 같아요.
가은 | 대학생 때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요즘 브이로그 많이 찍잖아요. 브이로그를 영화와 비교해서 낮게 평가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저는 영화도 브이로그도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 삶을 조망하고, 제 주위를 조망하는 콘텐츠를 영화적으로 풀어내고 싶어요. 저의 편안한 일상이요.
두 개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요. <앤가은>은 프리랜서로서 일의 형태를 실험해보고 부딪혀보는 이야기에요. 프리랜서 인터뷰도 하고, 프리랜서로서 일하는 기록물,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프리랜서 일상을 올려요. <차가은> 채널은 기획자, 제작자로서 만드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올리고 있는 거죠.
단단 | 저는 "세상은 무엇일까?" 에 대한 답을 말하는 게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영화든, 소설이든, 브이로그든 상관없이 자신의 '관점'을 보여주는 거죠. 세상에 대한 저의 관점은 <자신을 깊이 돌아봄으로서 나라는 사람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힘을 얻는다>에요. 가은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 관점? 은 뭔가요?
가은 | 표현을 정리해 본 적은 없지만 (잠시 생각) 위트가 있고 싶은 사람이에요. 변칙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변칙과 위트를 잃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단단 | 제가 생각했던 경쾌함이 '위트'였나봐요. 아까 가은님의 콘텐츠에 대한 키워드가 '단정한 경쾌함'이었잖아요. 그걸 바꿔야겠어요. '다정한 경쾌함'으로요. 제가 생각한 위트는 배려에요.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 어려운 미션을 부여받았을 때의 긴장감,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위트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는 건 '배려'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위트를 좋아하고 위트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사람을 보면 '다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은 |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에는 도전이라는 키워드도 있어요. 기록클럽을 기획하면서 <일단기록>이라는 키워드를 붙인 이유가 있어요. 일단 해보면 달라지는 것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고민을 너무 많이 하잖아요. 저도 그래서 못했던 것도 많고요. 그냥 하는 게 완벽한 것보다 더 낫다는 말이 있잖아요. 완벽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하면서 완벽해지면 되는거죠. 그런 일들을 계속해서 보여주려고 해요.
오늘의 집에 홈오피스 소개를 올리고 협찬과 문의를 많이 받았어요. 원래부터 인테리어를 했냐고 물어보기도 하더라고요. 아니에요! 관심이 최근에 많이 생겨서 많이 들여다봤어요. 공간 컨설팅에도 관심이 많아져서 많이 보고 돌아다니면서 내 공간을 만들다 보니까 새로운 영역이 열리는 거죠. 이런 거 못한다고하면서 집 사진도 안 올리고, 모르니까 대충 했으면 이런 일이 안 생기잖아요. 어떻게 해? 가 아니라 그냥 하면 된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단단 |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은 | 진짜로요. 그래서 저는 많이 말하고 많이 연결되어 사는 것 같아요.
단단 | 함께하는 독학클럽 마지막 공통질문을 드려요. 성장에 대해서 사람마다 다른 답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새로운 것을 해보는 게 성장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한 분야에서 능력치를 쌓는 게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가은님께 성장이란 뭘 의미해요?
가은 | 어제보다 더 만족할 만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갖게 되는 것이요. 퍼포먼스 마케팅하던 시절에는 러닝커브가 빠른 게 성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끝이 없어요. 성장의 갈증에 매료되어 있는 상태가 너무 심하면 현재의 행복이나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을 놓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음.. 적어도! 오늘 단단님을 만나고 집에 가는 길에 세상을 보는 시야가 아주 조금은 달라질 거란 말이에요. 그럼 그게 성장이죠. 오늘 단단님을 만나서 일을 배운 게 아니지만 성장을 한 거죠! 내가 더 만족스럽게 바뀌는 거잖아요. 단단님이 하고 있는 생각과 활동을 알게 되었고 그걸 통해서 나는 어떤 워크샵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고요. 내가 가고 싶은 영역으로 더 가보는 것은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요.
단단 | 독서 모임을 하면서 든 생각인데, '내가 틀려서 기쁘다'라는 생각이 들 때 너무 좋은 거에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모임 멤버가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라는 반응이 기분 나쁜 게 아니라 '저렇게 생각 할 수도 있구나.' 내가 틀렸는데 기쁘다는 사실이 너무 좋은 거에요.
가은 | 최근에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안 불안해? 왜 회사로 다시 안와?" 그런데 저는 회사에 있을 때가 더 불안했어요. 김호 작가님 책을 읽으면서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맞아. 회사는 들어가기 위해 있는 곳이 아니라 나오기 위해 있는 곳이지. 내가 나와서 뭘 할 수 있는지 지금 확인해보지 않으면, 나중에 뚜껑을 열었을 때, 너무 무서울 것 같아."
그래서 지금 열어봤고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가야할 방향을 정리할 수 있게 됐어요. 이전보다 덜 불안한 삶을 살게 된 것 같아요. 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퇴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맞지만, 회사에 파묻혀 있는 상태가 더 불안했던 것 같아요. 다시 회사를 가면 아주 다른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단 | 그건 진짜 분명해요. '아주 다른 마음으로.'
가은 | 첫 에세이 레터에서 안구진탕에 대해 썼거든요. (무의식적으로 눈동자가 흔들리는 병.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가 어렵다.)
단단 | 그 문장에 다들 엄청 울컥했던 거 알죠?
가은 | 저는 그 고백이 처음이었어요. 회사 밖에 나와서 나를 돌아봤기 때문에 용기가 생긴 거에요.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거죠.
단단 | 회사를 나오면서 프리워커 실험은 올해까지만 하려고 했잖아요. 남은 기간은 어떻게 보낼 계획이에요?
가은 | 일단 남은 3개월 동안 최대한 크리에이터 영역에서 시도 해보려고요. 그 후에 남의 일을 해주는 게 더 즐거우면 그 일을 받고요. 회사를 갈 수도 있고요. 좀더 프리워커로 남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남은 3개월이 저에게는 너무 중요해요.
어떤 사람은 절벽 끝에서 날 수 있는지 실험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뛰어내린 저를 보고 '넌 날개가 있었네.' 라고 했지만 그 밑에 사실 계단이 있었고, 떨어질 만한 곳이 아니었어요. 경험이 있었고, 일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떨어질 일은 없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밖에 나가면 땅에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절대 땅에 떨어지는 건 없었어요.
앤가은님의 인터뷰 어떻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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