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단단입니다.
혼자서 성장과 균형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지칠 때가 있잖아요. 비슷한 생각을 하는 메이트와 같이 고민하면 서로 응원과 기운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임여여 @yeoyeolife
[블로그] 여여의 지구 살이
[브런치] 브런치북 <대학대신 시골살이>
여여를 처음 본 것은 2년 전 연희동의 제로웨이스트 마켓 '채우장'에서였다. 마켓 셀러로 첫 출점해서 우왕좌왕 헤매고 있을 때 여여가 다가왔다.
"디저트 맛보려고 했는데, 벌써 다 팔렸네요!"
"비건 디저트 가격 너무 싸게 책정하신 것 같아요. 다음에는 올리세요!"
"만들 수 있는 만큼, 준비할 수 있는 만큼만 가지고 오는 게 중요해요. 내가 얼마큼 할 수 있는지 그걸 알아야 해요."
아무리 봐도 20대 초반인 그에게서 이상할 만큼 깊은 인생의 내공이 느껴졌다. 마켓을 마치고 여여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구경했다. 남해에서 농사짓고 공부하는 사진, 서울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여여의 삶이 더욱 궁금해졌다.
"남해가 고향인가?"
"지금은 서울에 사나?"
"화장품을 사지 않고 모두 직접 만들어 쓰다니 신기하다"
호기심 가득한 마음을 간직한 채 2년이 흘렀다. 주말 오후, 여여로부터 DM이 왔다. 그는 반가운 인사와 함께 우렁차게 "한 번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이렇게 호기로운 제안을 받은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여여는 채우장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생각에 잠겨있기도 했고, 질문을 앞에 두고 고민을 하기도 했다. 새로운 갈림길에 선 마음의 출렁임이 느껴졌다. 여여를 만나면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서로의 ‘순간’을 공유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번에는 또 다른 여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단단 | 여여님, 안녕하세요! 함독 메이트 여러분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여여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남해에서 시골살이를 했어요. 농사도 짓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면서요. 그 후에 요리 대안 학교를 2년 동안 다녔어요. 요리를 삶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는 교육이었어요.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환경교육지도사를 수료했고 관련 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그만뒀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지 고민하는 시기예요.
단단 | 어떤 고민을 하고 있어요?
여여 | 그동안의 삶은 이어져왔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 있었고요. 그런데 그것을 현실에서 일로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어쨌든 생계를 유지해야 하잖아요. 최근에 삶의 가치와 현실이 부딪히는 순간을 경험했어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런 시점이 왔어요.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살아나가고 싶어 졌어요.
단단 | 2017년 말부터 2년은 남해 살이, 2년은 영셰프로 보냈잖아요. 4년은 긴 시간이고 그 사이에도 현실적인 걱정들이 있었을 텐데, 현실에 대한 걱정이 지금 이렇게 크게 다가온 이유는 뭘까요?
여여 | 그때는 달랐어요. 순간순간 몰입했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선택했고, 모든 게 다 배움의 과정이었어요. 이전에는 스스로를 알고 싶은 욕망이 굉장히 컸어요. 나를 만나기 위해 산다고 생각했어요.
단단 | 나를 만났나요?
여여 | 그 전보다는 조금 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표현할 수 있게 되었어요.
단단 | <대학대신 시골살이> 브런치북을 보니 남해에서 시골살이를 하기로 결정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게 은행 면접이었던 것 같아요.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다시 준비하거나 다른 대안을 찾아볼 수 있었을 텐데 남해로 간 이유가 무엇이었어요?
여여 |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한 번도 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사색을 즐기는 편이었지만 해야 하는 것만 있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면접을 보고 나서 처음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는 취업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어요. 그전까지는 자연스럽게 살아질 줄 알았는데 선택의 기로에서 불안했던 것 같아요. 해보지 않은 삶이니까요.
단단 | 그때 삼촌을 만났고, 삼촌이 '남해 와서 살아보라.'라고 했던 말이 어떤 신호처럼 느껴졌을 것 같아요. 저 사람의 손을 잡아보는 게 도움이 되겠다고요.
여여 | 삼촌은 세상을 보는 눈도 많이 키워주셨고, 무엇보다 생활력을 키워줬어요. 모든 것을 직접 다 하시거든요. 저는 그 전에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냥 하면 된다는 걸 알았어요. 고맙죠. 그전까지는 누구도 그렇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단단 | 고등학교 졸업을 기점으로 여여님과 저는 다른 선택을 한 셈이에요. 저는 정형화된 틀 속으로 들어가기를 선택했는데 그 선택이 아쉽기도 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저는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여여 | 저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안정적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남해에 있을 때 스스로를 낯선 환경에 두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한두 달씩 여행도 계속 다니고요. 배낭 하나로 독일, 중국, 국내 곳곳을 돌아다녔어요. 계속 집을 떠나서 다른 사람의 집에서 다른 삶을 살아본 거죠. 그러면서 느낀 건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거예요. 환경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되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단단님이 <자기만의 방>에 대한 글을 썼잖아요. 저도 내 옷장, 내 방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디에 있어도 임시거처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은 서울에서 집을 구해서 살고 있는데 내 공간을 갖는 게 행복하더라고요.
단단 | 마음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내 공간을 찾으러 다닌다는 느낌이 드네요. 일이라는 것도 결국 사회 속에서 내 자리를 찾는 거잖아요. 여기서 내 생계도 꾸리고 싶은데 그 방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방황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함께하는 독학클럽> 콘텐츠를 시작할 때 즈음 자기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프리랜서처럼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선택에 대한 확신이 강하고 똑같은 고민을 해도 아주 깊이까지 무너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여여 | 오히려 반대로 더 많이 무너지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단단 |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요즘은 해요. 정말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더라고요. 그냥 살다 보니 흘러 흘러서 지금의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회사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누구나 조금 더 만족스럽게 먹고살고 싶잖아요. 그 욕망이 너무 커서 고민하는 것 같아요. 만약 “나는 그냥 어떤 방식이든 먹고사는 게 제일 중요해”라고 한다면 가장 적은 시간에 내가 가진 자원으로 가장 많은 돈을 주는 곳에 가면 돼요. 반대로 저 같은 사람도 있고요 (웃음) 퇴근 후에 저는 아주 비효율적인 활동들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요. 돈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이러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여여 | 저는 어떤 일이든 돌아보니, 쓸데없는 일은 없었어요. 모두가 다 신기할 만큼 이어지더라고요. 이다음이 뭐가 될지는 사실 모르잖아요. 지금 이 멈춤과 방황의 시간도 나중에 분명 무언가가 될 거라는 확신도 있어요.
여여 | 열아홉 살, 은행 면접에서 탈락했을 때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선택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컸어요. 나는 내가 너무 궁금한데 궁금해하지 말고 '일단 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어요.
단단 | <나를 모른다>라는 상황에서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를 모르니까 선택할 수 없어 vs 나를 모르니까 주어진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두 가지 성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여님은 어떤 유형이었어요?
여여 | 저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한 게 아니라 잠시 멈춘 거에요. 당시 삼촌한테 “제 삶이 대학과 취업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는데 삼촌의 대답이 '잘 모르겠으면 잘 모르겠는 상태로 기다려봐도 괜찮다' 였어요. 제 주변에서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이 없었거든요. “뭘 해라. 이게 더 낫다”라는 말을 했지 그 누구도 “잘 몰라도 괜찮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순간에 멈출 자신도 없었고요. 그 말을 듣고 '멈춰도 괜찮다'라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그 당시에 삼촌은 별 뜻 없이 하신 말일 수도 있는데 그때 제가 그 말에 꽂힌 거죠.
단단 | 누군가가 어떤 말을 해서 내가 바뀌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말을 그렇게 들어서 바뀌는 거더라고요. 그분이 귀인인 것도 맞지만 그때 내 마음이 원하고 있었는데 여러 말 중에 '난 저 말을 선택하겠어.'라고 마음먹는 거죠.
여여 | 시골에 살고 있었을 때는 남들과 다르다는 게 불안했어요. 순간순간 즐기는 때도 많았지만 “진짜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 많이 했어요.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제 삶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당시에는 불안감이 더 컸어요. 결과물을 생산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살아간다는 감각이 있었는데 2년 정도 지나니까 이 삶이 저한테 익숙해졌어요. 그때 생활력을 많이 길렀다고 생각해요. 어디 가든 잘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작은 우물을 여러 개 파지 말고 한 우물을 깊게 파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팠던 여러 우물이 아주 다르지는 않거든요. 다른 우물을 여러 개 파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 안에서 돌고 돌더라고요. 고등학교를 요리로 시작했지만 금융 - 시골살이를 거쳐 다시 요리학교에 간 것처럼요.
단단 | 저도 비슷해요. 차, 명상, 요가, 독서, 베이킹 모두 다른 건데 '자아성찰' '표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 연결되더라고요.
여여 | 표현의 도구가 많은 사람인 거죠. 그동안은 한 가지를 꾸준하게 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여겨졌잖아요. 여러 가지를 돌아가면서 하다 보면 그 사이사이에 실력이 분명히 쌓이더라고요. 예전에 잠깐 했던 활동을 시간이 지나서 다시 해보면 그 사이에 실력이 늘어 있는 경험을 자주 했어요.
단단 | 다른 활동의 경험이 다시 돌아왔을 때 이전의 나보다 훨씬 더 빠르게 실력을 높일 수 있는 통찰력을 주는 것 같아요.
단단 | 시골 살이를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이었어요?
여여 | 제가 시골살이할 때 관심 키워드는 농촌이었어요. 매일 보는 게 농사니 까요. 할머니들 농사지으시는 거 보고 저를 많이 돌아보기도 했어요. 아침일찍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데 재미있게 사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거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더라고요. 시금치를 파는데 다 농협에 판매할 때 농협 기준에 맞추어야 하는데 정해진 크기의 시금치만 납품할 수 있거든요. 버려지고 제 값을 못 받는 농작물을 보면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이 버려진 채소들을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요리로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요리 대안 학교인 영셰프에 가게 된 거죠. 대안 학교에 대해서는 원래 관심이 있었고요.
단단 | 영셰프는 뭘 배우는 곳이에요?
여여 | 요리하는 삶을 실험하는 거에요. 요리와 관련해서 인문학 공부, 환경 공부도 했어요. 요리로 삶을 풀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요리를 일로 경험하니까 힘들더라고요. 전체 요리 과정의 한 파트만 맡아서 하는 일이요.
단단 | 지난 인터뷰이인 소영 님도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요리를 좋아하는 것과 10시간 동안 조리를 수행하는 건 다른 것 같아요.
여여 | 요리로서 풀어내는 삶의 가장 대표적인 게 조리 파트잖아요. 일단 체력의 한계를 너무 많이 느꼈어요. 요리라는 키워드를 조리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풀어내는 활동들을 했어요. 마크로 비오틱 교육 보조 강사, 채식 요리와 제로웨이스트 요리 워크숍을 기획하기도 했고요. 이 과정에서 발견한 가치가 교육과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그다음에 환경교육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기회가 되어서 환경 교육 기관에서 인턴을 했고요.
단단 | (웃음) 여여님의 들이댐은 정말 타고난 능력이에요.
여여 | 저는 목적과 목표가 있으면 정말 잘 달릴 수 있는데, 지금은 그걸 알 수 없어서 방황하고 있어요.
단단 | 방향 설정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방황하는 거죠. 여여님은 전력질주를 하는 사람이니까 초반에 방향 설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저 멀리 가버리는 거잖아요. 그것도 너무 열심히요. 그래서 지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어디로 갈지 아주 세세하게 생각해볼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단단 | 대안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쓰셨는데요. <대안적 삶>이란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정해진 경로의 반대라고 생각하나요? 정해진 경로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여여 | 학교 다닐 때는 대학 가고 취업하고 결혼하는 삶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고 그 선택지만 있는 줄 알았어요. 거기서 한 걸음 떨어진 경험을 해보니 그건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더라고요.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에요.
단단 | <대안>이라는 단어 자체에 의문이 들었어요. 모두 동등한 여러 선택지인데 대안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정해진 경로를 정당화시키는 것 같더라고요. 정해진 길이 주류이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차선책처럼 보이도록요. 여여님은 이 '대안'이라는 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했어요. 정해진 경로가 아니라 나만의 방식을 찾는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요?
여여 | 사람들이 <대안>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아마 대체할 다른 단어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일단 제시된 선택지를 부정해야 하니까 다른 선택이 대안이 돼버렸던 것 같아요. 음... (잠시 고민) 제가 대안학교를 졸업할 무렵 든 생각이 있어요. 대안학교에 대한 의문점이자 앞으로 개선되기를 바라는 점이기도 해요. 좋은 대안이란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걸 아는 것에서 나아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만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친구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과 연결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 길을 찾는 게 어려워요. 대학을 선택하면 현실적인 길을 명확하고 쉽게 알려주잖아요. 그다음에 뭘 해야 할지 알려주니까 그걸 하면 되는데, 대안학교는 오히려 현실과 동 떨어진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사회에서 역할을 맡으려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요건을 갖출 필요도 있는데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더 절망적으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교 안에서 배운 것과 사회는 다르니까요. 그게 아쉬운 점이었어요.
단단 | 저의 고민이기도 해요. 정해진 삶이 답이 아니라는 건 아는데 고립되어서 혼자 꿈을 꾸길 원하는 건 아니거든요.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고 싶고, 돈도 벌고 싶고, 조직에서 일하는 소속감도 좋아요. 그런 나에게 대안이 뭘까? 모르겠더라고요. 지금 현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부정할수록 답이 없더라고요.
여여 | 저도 항상 대안적 삶을 꿈꿨지만 대안이라는 건 정답이 없다는 걸 알게 돼요. 대안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우리 흔히 말하는 길이 더 쉬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단단 | 정형화된 삶이 누군가에게는 대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여 | 맞아요. 대안이라는 말은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대적이잖아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일 뿐인 거죠. 요즘 세상에는 대안의 종류도 정말 많고요.
단단 | 대안이 많고 대안을 긍정하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기도 해요. 예전에는 “이 길 아니면 너 잘못될 거야”라고 주입하니까 '이 길이 맞겠지.'하고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모든 선택이 열려있고 정답은 내가 만드는 거라고 하니까 더 모르겠더라고요. 내면을 바로 세워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여여 | 대안은 나답게 살고 싶은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남들은 직업을 먼저 찾고 '나'를 고민했다면, 저는 '나'를 먼저 고민하고 직업을 찾는 게 저의 대안일 수 있었던 거죠.
단단 | 저는 안정 지향적이면서도 도전을 좋아해요. 새로운 걸 좋아하면서도 익숙한 걸 좋아하고요. 양가적인 사람이죠. 그래서 조직이 좋으면서도 싫거든요. 조직의 안정성이라는 이점을 취하면서도 계속 이곳과 다른 무언가를 찾아다녀요. 그런 제가 조직 생활을 하면서 아주 가끔 조직이 좋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랑 같이 뭔가를 만들어나간다는 느낌이 들 때에요. 혼자 했을 때보다 일의 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조직에 기대를 하게 돼요. 여여님이 이제는 조직 안에서 일하기를 원한다는 게 안정성도 있지만 함께한다는 감각을 원하는 것 같기도 해요.
여여 | 혼자 '여여'로서 한 활동이 많았죠. 이제는 함께할 동료를 찾고 싶어요. 인턴으로 조직 생활을 경험하면서 오히려 조직에 속해 있을 때 시간을 더 잘 쓸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시간을 100%를 가지고 있을 때는 오히려 불안이 50%를 잡아먹어서 50%만 쓴다라고 생각했어요. 조직에 있으니까 70%는 조직 안에서 성장하는 데 쓰고 나머지 30%를 집에 와서 훨씬 잘 쓰고 있더라고요. 벼르고만 있던 브런치북을 발행할 수 있었던 것도 출퇴근 시간에 글을 썼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목적지가 없는 느낌이에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거에요. 에너지만 축적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더 축적되고 나면 결정되는 게 있겠죠.
단단 | 나는 왜 이렇게 회사를 못 놓을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월급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당장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왜 회사를 손에 쥐고 놓지 못할까 자책하며 힘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네가 못 놓는 게 아니라 다른 대안이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아서 안 놓는 거야. 회사를 떠날 수 없는 사람이라서 못 놓는 게 아니고."라고 하더라고요.
여여 | 인턴 일을 그만두고 바로 그다음 날부터 취업 준비를 했어요. 룸메이트가 저를 보고 '조금이라도 쉬어.'라고 하는데 저는 이게 쉬는 거에요. 그리고 충분히 잘 쉬고 있고요. 저의 생활을 스스로 돌보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이제 생겼어요. 이제는 일로서 어떤 조직에서 어떤 일을 해볼 것인가의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요.
단단 | 10년 후에 여여님이 얼마나 잘 살지는 눈에 보이는데,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법이 너무 다양해서 궁금해요. 쉽지 않겠지만 그만큼 열심히 잘할 거라는 믿음도 있지만 막막할 것 같아요. 10년 후에 내가 잘 될 것은 알지만 지금 당장 내가 뭘 할 수 있어?라고 물으면 답답하거든요.
여여 | 지금까지는 늘 욕구를 해소하면서 살아왔는데 지금은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단단님 만나서 어떻게 풀 수 있을지 기대하며 왔어요.
단단 | 사람들은 대부분 해서 될 것 같은 걸 하다 보니 나를 잃는다고 생각하는데, 여여님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먼저 고민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선택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게 나를 잃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요.
단단 | 여여님은 강점이 뭐에요?
여여 | <적응력>이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여러 스킬들이 <생활력>이 제 바탕이 되어 주기도 했고요. 그리고 확실한 저만의 <스토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남들과 다르다는 게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제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봐요. 대학에서 더 좋은 것을 배웠을 수도 있지만 제가 선택한 삶에서 배운 것도 정말 많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할지 생각하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사람들은 모두 스토리가 없어서 고민인데, 저는 스토리가 있으니까 그걸 연결시킬 연결점만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살아온 게 제 강점이 되는 거죠.
단단 | 내가 갖고 있는 게 강점이라고 생각하면 강점이 되는 거고, 단점이라고 생각하면 단점이 되는 거죠. 강점을 꾸준히 하는 실행력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여여 | 제가 한 선택이 확신해서 선택한 것도 아니고 우연과, 도피라고 생각했던 건데, 그 순간에는 도피였지만 지금 순간에는 돌려놨거든요.
단단 | 제가 생각했을 때에도 여여님에게 지금 필요한 건 스토리가 아니라 현실적인 스킬이에요. 이제 직면해야 하는 타이밍이죠. 조직에서 그걸 배울 수 있을 거에요.
단단 |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채우장'이었잖아요. 그때 사실 저는 내적으로 혼란이 있었어요. <채우장셀러>, <나>, <나의 회사 사람들>이 다 다른 집단이거든요. 그래서 회사에서도 이방인이 이고, 채우장 셀러 집단에서도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회사 사람들은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 저를 신기하고 다르게 생각하거든요. 채우장에 계신 분들은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삶 전체에서 비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분들이잖아요. 저는 그 정도의 실천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비지향적인 사람도 아닌데 나는 누구지? 이런 생각에 혼란스럽고 그 어디에서도 저답지 못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렇게 방황하다가 스스로를 이 집단과 저 집단을 잇는 연결자라고 정의 내렸어요. 그 어디에서도 마음 불편한 시기였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세계를 봐 버렸고, 이미 강을 건너버려서 돌아갈 수가 없는데 이 강 너머에도 내 자리가 없고 돌아갈 곳도 없다."
여여 | 돌아가야 할까요? 이미 왔는 걸요. 제가 시골살이를 선택함으로써 맞닥뜨린 상황과 비슷해요. 나는 이미 이 세계로 넘어와버려서 저 길을 다시 가려니까 안 맞는 기분이 드는 거에요. 사람들은 이미 나의 모습을 시골에 있는 모습으로만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그 순간의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후회하지는 않아요.
단단 | 사실 후회할 수도 없어요. 이미 그러기로 했으니까요.
여여 | 그래서 더 재미있게 받아들인 순간도 많아요. 사람들이 저를 재미있게 보는 시선도 즐겼고요. 대학에 간 친구들과 공감대가 없어지면서 불안과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공존했어요.
단단 | 저는 스스로 늘 경계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완전하게 어느 집단에 속하지 못하고,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그래서 어디든 가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어느 순간 그걸 받아들이는 시기가 오고, "그냥 경계에 서 있을 수 있다."라고 생각해요.
여여 |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경계에 있었던 적도 많았어요. 남들은 생각 없이도 있고, 쉽게 하려고도 있는데 나는 이미 알아버렸고, 가기도 싫고. 저 스스로도 경계인으로 표현할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그 경계를 통해서 또 다른 경계로 넘어가게 되기도 해요. 늘 그 경계에 있지는 않았어요. 그 순간에는 늘 거기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경계도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 상황을 즐기기로 했어요.
단단 | 억울하기도 하더라고요. 경계라는 말 자체가 어떤 정해진 영역이 있으니까 가능한 건데, 그 영역은 남이 만든 거잖아요. 제가 만들었으면 제가 있는 곳이 주요한 땅이 되었을 텐데, 남들이 만들어서 영역을 갈라놓고 여기랑 저기는 다르다고 하니까 저는 경계인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제가 그냥 '내가 있는 곳이 경계 안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경계인이야.라고 해버릴 수도 있는 건데 그게 너무 어렵다 보니까 '내가 경계인인가?'라고 생각하는 거죠.
여여 | 저는 <경계를 따라서>라고 말하는 데요. 그 경계가 내가 정한 경계일 수도 있거든요. 상황 따라 경계가 바뀌어요. 정해진 건 없다고 생각해요. 상황 따라서 그 경계를 따라서 그냥 있어지는 거예요. 그 경계를 정한 것도 결국 나거든요. 이쪽저쪽 이런 표현보다는 가능성을 더 많이 두고 싶어서 '경계 따라서'인 거죠. 우리가 누군가를 봤을 때 그냥 그 시점의 그 사람을 보는 것뿐이잖아요. 끝까지 그 사람이 그 모습인 건 아니잖아요.
단단 | 제가 보지 않는 순간 그 사람은 다른 영역에 존재할 수도 있고요.
여여 | 저는 함부로 나를 정의 내리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는 순간 갇히는 것 같아요. 어떤 행위도 상황 안에서 판단되는 거잖아요.
여여 | 매 순간 항상 욕심을 냈어요. 마무리가 좋아야 하고, 잘하고 싶고요. 저를 나타내는 수식어들은 많아지는데 (요리사, 시골살이, 환경 등등) 그중에서 뭘 선택해야 할지 늘 달라지더라고요.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겠지만 매 순간 갖고 싶은 게 다르고 여러 개 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이 키워드로 살고 싶지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고요. 나중에 돌이켜보니 점들을 연결해서 선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때는 점일 뿐이잖아요. 점일 때는 빨리 연결되고 싶어요. 지금처럼요.
단단 | 그 점이 섬 같으니까요.
여여 | 점이 선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죠. 그동안 선을 그으려고 점을 찍은 게 아니라 점을 찍다 보니까 선이 된 거잖아요. 스토리도 처음부터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생겨진 거고요.
단단 | 만들려고 했다면 절대 만들지 못했을 거에요. 일도 그런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처음부터 있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이걸 할 수 있고, 해봐도 괜찮은 정도의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빠져들어서 다른 점들과 연결될 만큼 확장되기도 하고요.
여여 | 그 과정을 한번 정리하는 과정을 필요할 것 같아요.
단단 | 점들을 연결해보는 경험이 필요하죠. 그게 지금 여여님이 해야 할 과정이겠네요.
여여와 인터뷰를 마치고, 아주 오랫동안 정리했다. 불쑥불쑥 마음 깊숙하게 자리 잡은 불안과 번민, 나의 약점들이 떠올라서였다. 지금까지 나는 기꺼이 방황하고, 기꺼이 선을 넘고, 저 멀리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들은 나보다 강한 사람들일 거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저렇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방황하고, 고민하고, 여전히 길을 찾아가는 여여를 만나고 알았다. 이 세상에 방황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자신 앞에 놓인 길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한동안 외면하기도 하고, 깊이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주어진 길을 그저 걸어갈 뿐이다.
지금 여여는 조직 안에서 일해보는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여여의 다음 단계가 어디일지 궁금하다. 그의 걸음과 분투를 힘껏 응원하고 싶다.
여여님의 인터뷰 어떻게 읽으셨나요?
<함께하는 독학클럽>은 일하는 우리는 일과 일상에서 끊임없이 성장과 균형을 고민하고 살고 있어요. 그 고민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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