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자기만의 트랙> 김나이 님과의 만남을 기록하며
꼭 1년 전이었다. 세 번째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어디서 어떻게 일해야 할지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는 마음이었다. 하루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었다가, 하루는 지금 회사에서 경험을 더 쌓아야 할까 싶고, 또 어떤 날은 회사 밖에서 독립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도 모르겠는 내 마음에 길을 찾고 싶어서 커리어 엑셀레이터 김나이님의 커리어 컨설팅을 신청했다.
인터뷰 전 사전 질문
Q: 현재 어떤 커리어 고민을 갖고 계신가요?
A: 일에서 워크맨십을 찾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하고 있는 일>에서 <하고 싶은 일>로 점진적으로 옮겨가는 피봇팅을 하고 싶어요. 그 과정이 만족스럽길 바라고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보다 어떤 조직에서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서 이직 계획을 세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계속해서 일에 대한 생각과 관점을 정리하고 있어요. 1:1 컨설팅에서 앞으로 어떤 조직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고 싶어요.
10년 가까이 대기업에서만 일하면서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왜인지 모르겠지만 부문장님이 시켰어.” 이런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간이 더 걸려도 회의실 책상에 마주 앉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끝까지 파고들고 싶었고, 일의 why를 묻는 질문에 “제가 하고 싶어서요. 해볼게요.”라는 대답을 하고 싶었다. 그런 나는 동료들에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귀찮은 존재’였다. 수다 말고 일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가족 고민 말고 일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
컨설팅 신청을 하던 때에는 이미 본격적인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컨설팅 날짜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을 때, 지금 다니는 카카오스타일을 포함해서 3개의 패션 플랫폼에 합격한 상태였다. 그중 한 곳으로 마음을 정했고, 질문을 바꾸어 묻기로 했다. 대기업에서 10년 일한 내가 스타트업 DNA로 가득한 새로운 회사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기대보다는 두려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질문 1
나이님: 아무 제약 없이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면 무슨 일 하고 싶어요?
나: 세상에 제 이야기를 알리는 거요. 일에 대한 관점, 일상을 단단하게 세우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질문 2
컨설팅 경험이 많은 나이님은 내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말하기도 전에 알았다.
나이님: 지금까지 있었던 조직은 ‘적당히 일하자는 분위기의 대기업’이었네요. 뭐든 열심히 하고 싶은 사람일 텐데, 거기서 외로웠겠어요. 그래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갈증이 좀 채워졌나요?
나: (허를 찔렸다) “아니요. 안 채워져요."
나이님: 직장인으로 할 수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 많이 해봤잖아요. 이제는 영역을 좁히고 집중해야 해요. 내 생활을 책임지는 일에서 마음을 쏟을 필요가 있어요. 그럴 수 있는 조직으로 가면 좋을 것 같아요. 단, 일과 삶을 통합하며 일하면 번아웃이 올 거예요. 번아웃을 이겨내려면 내가 이 일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아야 해요.
질문 3
나이님: 재미/의미/성장/돈/워라밸/인간관계 중 중요한 두 가지가 뭐예요?
나: 의미요! 이게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 재미요.
이 말을 하고 보니 지금 다니는 회사는 돈/워라밸/인간관계가 좋은 회사였다. 그래서 떠나기를 주저했다. 나이님은 [돈/워라밸/인간관계]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회사 상황이 바뀌면 달라지는 거라고. [재미/의미/성장]은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다.
질문 4
나이님: 지금 다니는 회사 1년, 2년, 3년 더 있으면 얻을 수 있는 게 있어요?
나이님은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버틴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자체가 떠날 때라고 말했다. 나이님과 이야기하면서 새 회사에 가야겠다는 확신을 굳혔다.
아마 나이님은 줌 화면으로 보이는 내 표정을 통해 내 술렁이는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새 회사에서 잘 적응하고 성장하려면 어떤 마음이 필요한지 이렇게 힌트를 주었다.
이직하는 회사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 가는 회사는 징검다리이다.
지금 가려는 회사에서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하라.
- 대기업 홈쇼핑 산업과 플랫폼 기업 커머스는 어떻게 다른지 탐구 (나의 타깃 오디언스인 10대, 20대는 어떻게 커머스를 하는가?)
-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회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그 정신없음도 느껴보라.
- 내가 하는 일로 마켓에서 성취를 만들어보라. 그 경험 없이 독립하면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다
- 개발자, 디자이너 많이 알아둬라. 나중에 독립하면 꼭 필요할 것
유연한 온보딩을 위해 입사 첫날 팀원들에게 물어라. 내가 당장 해줬으면 하는 일! 3개월 후, 6개월 후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 그리고 해줘라.
그때 내가 나이님께 했던 말, 그리고 답으로 들었던 말을 분기마다 다시 들여다보았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노션을 들여다볼 때마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마스크 안으로 얼굴을 파묻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내가 아닌 사람이 나만큼, 아니 나보다 나를 믿어준다는 마음이었다. 고맙고 소중했다.
**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
어렸을 때 꿈꿨던 것들이 있잖아요. 생각해 보니 제가 그걸 다 이뤘더라고요. 책도 내보고, 매체에 글도 기고해 보고, 독서모임 리더도 해보고, 사람들이 제 글을 읽고 편지도 보내주고요. 그러고 나니 궁금해졌어요. 이제 나는 뭘 해보고 싶지? 제 판을 만들고 싶어요. 제 이야기 판, 제 플랫폼.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게 하고 싶어요.
** 그때 내가 가졌던 커리어 로드맵
지금 [홈쇼핑 프로모션] → 이직 [모바일 플랫폼 프로모션] → 이직 [모바일 플랫폼 브랜딩] → 마흔 살 독립 [나만의 일을 세우는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자]
나이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제가 잘 살아남을게요. 우리 끝까지 살아남아서 같이 그 이야기판 만들어요.” 너무 울컥했다.
그리고 1년 동안 새 회사에서 열심히 적응했다. 여기서 살아남고 싶었고, 살아남는 것을 넘어 운전대를 온전히 내 손에 쥐어주고 싶었다. 동료들의 차를 얻어 타지 않고 “제 차에 타시죠.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뭘 하면 되는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나이님의 조언대로 팀원들과의 미팅에서 가장 먼저 나에게 당장 바라는 업무와 성과가 무엇인지 물었다. 3개월 후, 6개월 후 나에게 기대하는 것을 물었다. 답을 들었고, 했다.
시간에, 체력에, 어려울 거라는 시선에 지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면 일을 더 잘하는 법, 일과 시간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법을 연구했다. 당시 읽었던 책은 <피크 퍼포먼스>, <타이탄의 도구들>, <당신의 생각을 정리해 드립니다>, <핑크 펭귄>이었다.
더 할 수 없을 만큼 나를 몰아붙였고, 신기하게도 힘들지 않았다. 새 회사에서 내가 바꾼 것들이 생겼다. 프로모션 마케팅팀 소속이었지만, 내 업무의 50%는 프로모션이었고 나머지 50%는 주요 서비스 지면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전시 노출 영역이라고도 불리는 그 지면을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할지, 지면을 통해 어떤 임팩트를 만들어내야 할지 틀을 짜고 프로세스를 그렸다. 최종 GOAL에 맞추어 [소재 취합 - 우선순위 설정 - 성과 분석 - 성과를 반영한 부서별 자원 배분 로직]을 설계했다. 내가 입사하고 비로소 체계가 생겼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연중 가장 큰 프로모션인 블랙 프라이데이도 단독으로 맡아 진행했다. 급속도로 얼어붙는 시장 환경과 이에 발맞춘 마케팅 예산 삭감으로 눈에 띄는 수치 성과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없는 주머니를 탈탈 쥐어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모두가 그렇게 격려해 주었다.
블랙 프라이데이 회고 세션을 마치고 한숨 돌리며 하루 휴가를 냈다. 카페에 앉아 1년간의 회사 생활을 회고했다.
사실 숨 돌릴 틈 없이 회사 일에 나를 밀어 넣으며 동시에 회사 밖에서 강연, 세미나, 리추얼 메이커 활동도 했다. 이직 전 카카오스타일 마케터라는 보기 좋은 타이틀을 달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 기대는 사실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좋은 기회를 많이 얻었다. 커리어 플랫폼 헤이조이스에서 <5개 대기업에 러브콜을 받은 마케터의 포트폴리오 작성법>으로 세미나를 열었다. <내 콘텐츠로 전문가 되는 법>이라는 콘텐츠로 브런치 공모전에 당선되어 클래스 101에 강의를 런칭하기도 했다. 자아성장 플랫폼 밑미에서는 <하루 30분 셀프 스터디>라는 주제로 매일 공부하는 커뮤니티를 1년 넘게 이끌고 있다.
나이님의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Q: 아무 제약 없이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면 무슨 일 하고 싶어요?
A: 세상에 제 이야기를 알리는 거요. 일에 대한 관점, 일상을 단단하게 세우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1년 사이에 이 질문이 더 구체적인 방향을 갖추게 되었다. 내가 해왔던 일은 단순하게 “내 콘텐츠를 만들어 세상에 나를 알리는 것, 일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미션을 갖게 되었다.
포트폴리오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업데이트했다.
마케터로서 나답게 사는 (buy) 경험을 만드는 사람
나답게 일하고 사는 (live) 삶을 말하는 사람
그리고 올게 왔다. 나이님이 예고한 번아웃. 24시간 뇌를 쌩쌩 돌리며 풀가동했고,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양치를 하면서도 온통 일 생각뿐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만둘 수 있는 것을 정리했다. 1년 반동안 격주간 발행하던 뉴스레터를 정리했다. 밑미 리추얼 메이커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한 달의 안식월을 가졌다. 모든 제안에 뇌를 거치지 않고 “네! 해보겠습니다. 제안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답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차분하고 정중하게 거절 메일을 보냈다.
주변을 정리하고 남겨둔 것을 단 두 가지였다. 회사와 밑미 리추얼 메이커. 특별히 깊은 고민을 하고 정리했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는 오를 대로 오른 연봉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었고, 밑미 리추얼 메이커는 그냥 재미있었다. 힘든 것보다 힘을 얻는 게 더 컸기 때문에 그만둔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정리한 시간을 리추얼에 더 써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만 했다. 명상 음악을 들으면서 산책을 했고, 매일 늦잠을 잤다. (유연 근무제 못 잃어) 신기하게도 일부러 일을 줄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이 다시 술렁였다. 길을 걷다가, 샤워를 하다가, 밥을 먹다가 다시 아이디어가 퐁퐁 올라왔다. 그 시기의 아이디어는 대부분 밑미에서 이끄는 공부 리추얼을 어떻게 하면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남는 게 있는 방향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공부란 뭘까? 응원이란 뭘까? 리추얼이란 뭘까?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밑미 메이트에게 전할 메시지를 만들었다. 메이트의 글을 샅샅이 탐색했고, 매일 편지를 주고받는 마음으로 인증 기록에 댓글을 달았다. 작년부터 관심 있었던 ‘코칭 심리학’ 공부도 했다. 코칭 심리학 박사 과정으로 공부 중인 작가 <서늘한 여름밤>님의 추천으로 교재를 사서 읽었다.
코칭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선명해졌다. 1년 전 나이님의 질문에 대답을 업데이트할 수 있게 되었다.
Q: 아무 제약 없이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면 무슨 일 하고 싶어요?
A: 나답게 일하고 성장하고 싶은 사람들이 내면의 변화를 만들고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회사 밖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게 되었다.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는 반짝임을 꺼내주는 일
내 반짝임을 발견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한 끝에 “반짝임을 발견하려는 끈질긴 마음”을 얻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맨질맨질하게 닦아도 보고, 외부에 있는 건 아닐지 찾아 헤매기도 하고, 혹시 다른 사람은 알고 있는지 묻기도 하며 말이다. 결국 찾아 헤매던 파랑새는 집 안에 있다던 동화의 결말처럼, 내가 가장 미워하던 나의 예민함과 섬세함에서 수북하게 먼지 쌓인 반짝임을 찾았다. 집 안에 파랑새를 두고도 애써 외면하며 길을 헤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마치 나를 보듬듯이 손을 붙잡고 말하게 된다.
“당신은 모르는 당신의 반짝임을 내가 알아요.”
여기까지다. 지금 내가 찾은 답은 아직 이것뿐이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고 자신 있는 이 재능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일’이 되는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일’이란 독립된 한 개인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자원을 확보하는 활동이다. 아직 내가 발견한 ‘나다운 일’에서 경제적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쯤 되니 답답한 마음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왜 매번 이렇게 뒤로 물러서기만 할까, 최선을 선택하는 삶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삶을 살까. 나는 왜 이렇게 용기 없는 겁쟁이일까.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마음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나이님의 신간 <자기만의 트랙> 그리고 오프라인 세미나였다.
밑줄 그으며 읽은 <자기만의 트랙>을 들고 세미나로 향했다. 나이님의 질문에 답하며 외면했던 나를 마주해 보기로 했다.
내가 고른 것은 <주도성>, <환경>
이 키워드로 두 개의 질문을 만들었다.
일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내가 결정하고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일인가?
일의 과정에서 내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얼마나 있는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고, 나아가 더 나은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나답게 사는 (buy & live) 경험을 제공한다는 미션을 갖고 있지만, 솔직하게 buy 경험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커머스 마케터로서 내가 하는 일에 최소한의 애정과 책임감을 갖고 싶어서 지어낸 문장이었다. 내가 지금의 일에서 좋아하는 것은 업무를 구조화하고 틀을 잡는 것이다. 구조화를 할 맛이 나려면 일정 규모의 트래픽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플랫폼은 데이터/유저/상품이 모두 풍부해서 이 조건을 충족한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나답게 일하고 매일 하루하루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그 누구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내면의 변화를 만들고 싶고 나다운 성장을 돕고 싶다.
나: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알아요. 잘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고요. 작은 시도와 경험을 충분히 했고, 이제는 더 큰 변화를 맞아야 한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용기가 안 나요.
나이님: 용기를 낸다는 건 너무 어렵죠. 왜 용기가 안 나요?
나: 매달 꼬박꼬박 받는 월급을 포기하기 어렵고, 또 막상 해보니 내가 그만한 그릇이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앞서요.
나이님: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discussion partner 와 이야기해 보세요.
이 답을 듣자마자 아…! 힌트를 얻었다. 코칭 심리학 책을 읽으면서 이 분야를 더 공부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해 준 서밤님의 1:1 코칭 프로그램을 신청해 두었는데, 어쩌면 서밤님이 나의 discussion partner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청서에 코칭 10회기를 계획하고 있다고 썼는데, 이 10회의 대화가 용기의 지렛대가 되어줄 수도 있겠구나.
세미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후에 벌컥벌컥 마신 카페인과 나이님에게 받은 에너지가 힘을 합쳐 마음을 콩닥거리게 만들었다. 사실 나이님에게 더 일찍 연락을 하고 싶었다. 컨설팅이 끝나고 응원해 주신 대로 회사 생활 너무 잘하고 있다고, 내가 일을 장악해 버렸다고 자랑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제자리에 서있는 것만 같아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게 아니었다. 집에 와서 1년 전의 컨설팅 기록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알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하면 될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코칭 심리학 대학원에 간다거나, 프리랜서 선언을 한다거나, 갭이어를 갖는 대범한 결정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겁이 많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아는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애써 믿는다.)
정말 월급 때문에 회사를 못 그만두는 걸까?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끝까지 경험해 보면, 그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마음 한 켠으로는 회사에서 좀 더 승부를 보고 싶은 것 아닐까? 리더로 성장하는 경험도 한 번은 해보고 싶은 것 아닐까? 아직 고작 10년 일했고, 20년은 더 일할텐데 몇 년 더 회사에서 가능성을 탐색해 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오늘의 마음을 한 움큼도 잊고 싶지 않아서 잠들기 전에 꾹꾹 눌러 기록으로 남긴다. 계절마다 이 기록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때 나는 또 어딘가에 서서 이곳이 원점인지 반환점인지 종점인지 헤매고 있을까. 그래도 좋다, 그 길이 나만의 트랙 위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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