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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Dec 23. 2023

오래된 것을 보는 새로운 마음

교토의 오래된 가게에서

오래된 것들이 좋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 물건, 가게를 보면 그 긴 세월 동안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왔을지 궁금해진다. 무언가를 오래 할 수 있으려면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맛집이라고 오래가는 것이 아니고, 일을 잘한다고 오래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잘 돼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못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지속하게 만든다. 지금 그만둘 수는 없다는 마음, 더 가보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내가 궁금한 건 오래된 것들의 실력이 아니라 바로 그 마음의 씨앗이다.



오래됨이 곧 특권인 시대가 왔다. 우리 세대는 80세까지 일하는 세대가 될 거라고 한다. 지금 돈을 잘 버는 사람보다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러운 세상이 될 거다. 김승호 회장이 [돈의 속성]에서 강조했듯 한 번에 바짝 들어오는 큰돈보다 오래 꾸준히 버는 돈의 힘이 더 세다. 



오래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 질문은 오래도록 나답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나의 답은 [원칙] [휴식] [자기 사랑]이다. 이 중 무엇 하나라도 부족하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오래 일하기 어렵지 않을까. [원칙]이 없으면 한창 잘 나갈 때 예기치 못한 구설수에 휘말린다. [휴식]을 놓치면 이제 날개를 펼치려 할 때 건강이 발목을 잡는다. [자기 사랑]을 누리지 못하면 우울함과 무기력이 빛나는 재능과 노력을 어둠 밑으로 숨겨버린다.



[원칙] [휴식] [자기 사랑]은 시간과 노력으로 쌓은 커리어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설사 지금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꼭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것들에도 [원칙] [휴식] [자기 사랑]이 있을까?



이번 교토 여행에서는 100년이 넘은 오래된 가게를 가보기로 했다. 이른바 노포 투어 (Old-shop tour). 오래된 가게를 둘러본 다음 20년 즈음된 새로운(?) 가게도 가볼 것이다. 오래된 가게는 무엇으로 그 시간을 지나왔는지, 새로운 가게는 어떤 태도로 지속하고자 하는지 서툰 여행자의 시선이지만 들여다보고 싶다.



연남동 가까이 살면서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가게를 자주 본다. 그중에는 긴 대기줄로 북적이던 가게도 있다. 변화무쌍한 개점과 폐점 사이 조용히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가게도 있다. 그 차이를 이번 여행에서 알 수 있을까?




여행 계획: 오래된 가게들


[서점]

300년 된 문구점 [큐쿄도]

100년 된 서점 [마루젠]

30년 된 서점 [츠타야]


[찻집]

100년 된 살롱 찻집 [프랑수아]

20년 된 티 브랜드 [루피시아]


[디저트]

500년 된 사탕가게 [미나토야]

30년 된 와라비모찌 가게 [기온 코모리]




300년 넘은 문구점, [큐쿄도] 1663년 창립


아름답게 해가 지는 오후, 큐쿄도로 향했다.


오래가는 브랜드의 공통점은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원칙이다. 질 좋은 재료 앞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다.



[큐쿄도]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종이의 질감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기계적으로 매끈한 것이 아니라 도톰하게 질감이 느껴지는 전통 종이였다. 종이 위에 도장과 그림으로 간단하게 모양을 낸 엽서와 편지지가 단정하다.



이곳에서 파는 것은 옛 기록도구다. 종이, 붓, 벼루, 먹. 지금은 소수만이 사용하는 물건이 되었는데 생각해 보면 예전에도 이 귀한 도구들은 소수 지배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과거의 기록 도구는 여백이 많다. 빈 종이에 그림과 글씨를 오롯이 내가 채워야 한다. 큐쿄도의 수첩은 무지이거나 줄 정도만 그어져 있다. 쓰고 그리는 이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려있다.



요즘의 문구는 이미 많은 것들이 디자인되어 있다. Monthly, Weekly, Daily 기록 템플릿이 주어져있고 To-do list와 루틴 트래커까지 짜여져있다. 내가 만드는 영역보다 구매한 상품의 영역이 더 크다.



여행과 함께 읽고 있는 책 ‘사물의 소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늘날의 소비재들은 은은하지 않다. 추근거리고 조잘거린다. 그것들은 미리 제작된 표상과 감정을 이미 너무 많이 담고 있다. 그 표상과 감정이 소비자에게 봇물 터지듯 밀려든다. 소비자 자신의 삶은 그것들 안에 거의 깃들지 못한다.”



한병철의 안타까움과 달리, 나는 이 변화가 아쉽지만 않다. 창작을 도와주는, 이미 표상과 감정을 담고 있는 도구와 템플릿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기록과 창작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글과 그림이, 사치품이기도 했을 기록도구와 교육이, 소수의여 지배층에서 대중으로 확산되었다는 증거니까. 비싼 벼루와 붓과 종이가 없어도 요즘은 누구나 쓰고 그릴 수 있다. 심지어 언제 어디서든 이렇게 여행 중에도 말이다.


세로로 쓰는 편지지가 많았다. 어릴 때 문구점에도 이런 규격 봉투가 많았다.
건축과 인테리어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큐쿄도 매장.




40년 된 서점, [츠타야], 1983년 시작


교토는 꽤 최근까지 (~1869년) 수도였던 도시답게 대학이 많다. 학생과 교수가 많은 도시라고 하던데 역시 서점과 문구점이 많다. 고서점 가게를 지나 츠타야에 도착했다. 츠타야의 핵심 지점이 교토점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츠타야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처음 가본 츠타야의 인상은 “이미 한국 서점들이 너무 많이 따라 해서 대충 보면 뭐가 다르고 특별한지 잘 모르겠다.”였다.



무인양품이 떠오르는 젠(zen)한 우드 인테리어, 책만큼 문구와 디자인 용품이 많은 라이프 스타일 샵. 이미 국내 대형 서점이 오래전에 카피한 모습이었다. 2015년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매장 중앙에 5만 년 된 카우리 대형 소나무 테이블을 설치해 화제가 되었다. 100명이 앉을 수 있는 압도적인 크기의 테이블은 교보문고의 상징이 되었다. 


책등보다 책표지를 강조하는 진열 방식. 효율적이지 않은 공간 활용에서 츠타야의 철학이 느껴진다.
(좌) 일본책은 정말 작다. (우) 사람이 별로 없었던 쉐어 라운지.


[츠타야]에서 가장 궁금했던 쉐어 라운지는 공유 오피스 집무실이 떠올랐다. 미니 스낵바가 있고 술도 한잔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조용한 공용 작업실. 카페는 너무 시끄럽고 도서관은 너무 학교처럼 딱딱해서 책 읽을만한 카페를 찾아다니는 나와 같은 사람이 주요 타깃이다. 가격은 알콜 미포함 시간당 1,540엔 하루 4,620엔이다. 서울 청담에 위치한 유료 도서관인 소전서림도 비슷한 가격이다. (소전서림은 하루 5만원 반나절 3만원) 츠타야 매장의 매출 규모가 궁금해진다. 책이 얼마나 팔릴까, 예쁘지만 비싼 소품은 얼마나 팔릴까, 사람 없이 고요했던 쉐어 라운지에서는 매출이 얼마나 나올까.



츠타야를 나오며 내가 좋아하는 서점을 떠올려봤다. 연남동 서점 스프링 플레어. 그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책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책이 적어서 좋다. 적지만 요즘 독자들이 관심 갖는 주제의 책을 엄선해서 소개해준다. 꼭 신간만 있는 것도 아니다. 몇 년 전에 출간된 책도 꽤 있다. 중요한 건 몇 걸음이면 서점 안의 책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오히려 책의 양에 압도되지 않고 한 권 한 권 책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넥플릭스를 켰다가 뭐 볼지 30분 동안 고르기만 하다가 꺼버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대형 서점의 어마어마한 서가는 마치 넥플릭스 같다. 자유로운 방대함보다는 나를 잘 알고 존중하는 사람이 좁혀 놓은 선택지가 좋다. 자본주의가 선전하는 자유는 사실상 허상인데 아닌 척,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싫어서일까.



일본어를 알지 못해서 츠타야의 책들이 어떤 기준으로 진열되어 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책의 권수가 예상보다 많지 않았고 책등이 아닌 표지를 볼 수 있게 진열한 방식에서 책 자체에 주목할 수 있도록 한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150년 된 서점 마루젠, 1872년 창립


“양서는 마루젠.”



외국 서적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시절, 마루젠은 교토의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학문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츠타야와 달리 인테리어가 멋지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츠타야보다 더 많은 손님들이 서가에 서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어서일까 “여기가 진짜 서점이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외국어 공부를 하려면 두꺼운 사전과 페이퍼백 책이 꼭 있어야 했다. 요즘은 외국어 공부하기가 더 쉬워졌지만 오히려 공부에 더 집중하기가 어렵다. 이 느낌은 기분 탓이 아니다. 뇌과학자들은 어렵게 공부할수록 머릿속에 남는다고 한다. 



마루젠 서가에 서서 영어 원서를 탐독하며 외국 학문을 향한 호기심과 갈망을 채우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비싼 외국 서적인 만큼 고민하고 고민해서 한 권을 구매하고 모두 읽고 또 한 권을 사러 왔을 것이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 정보가 너무 많지만 여전히 우리는 더 새로운 정보 더 신기한 정보 더 멋진 정보를 소비하기 위해 헤맨다. 동시에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책 값은 인플레이션에도 오르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정보일까, 정보를 소비한다는 감각일까, 정보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만나는 것일까.



나에게 정보란, 나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도구다. 빠듯한 일정 사이 서점을 둘러보겠다고 두 시간을 소비했다. 그 시간에 조용한 카페에서 가져온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나의 체험이 소비인지 배움인지, 체험인지 경험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소유에서 체험으로, 시대의 패러다임이 변했다고 하지만 소비의 대상만 바뀐 것은 아닐까. 소유는 사물의 소비이고, 체험은 존재의 소비이다.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을 하려면 소비에서 창작으로 넘어가야 한다.



여행을 소비가 아닌 창작의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비일상의 시공간이 주는 낯선 감각을 만끽하며 창작하는 시간으로 여행을 채우고 싶다.




100년 된 서양식 카페, [프랑수아], 1934년 개업


[프랑수아]는 파리의 살롱 문화를 표방하는 지식인들의 토론장이자 노동운동, 공산주의 운동을 지지하고 자금을 모으던 통로였다. 미술학도였던 창업자 다테노 쇼이치는 교토를 자유와 민주의 낭만이 깃든 도시로 만들고 싶었다. 당시 일본은 합법적인 운동이 불가능한 군국주의 시대였다.




차분하게 흐르는 교회 성가대 음악, 벽면에 걸린 회화 작품, 호화 여객선을 본떠 만든 돔 천장과 조명을 보고 있자면, 마치 100년 전 격동의 시대 한가운데에 있는 것만 같다.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에 누가 앉았을까,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생각하면 3차원의 시공간에 여러 시간의 차원이 겹쳐진 듯하다.


오래된 가게의 매력은 긴 시간 동안 품어온 이야기의 힘이다. 그 힘을 오래 끌고 가려면 변화와 유지 사이 팽팽하게 긴장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그대로의 인테리어와 메뉴, 분위기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변함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세심하게 바꿔야 한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조금씩 바꾸지 않으면 그대로인 것이 아니라 낡고 바래진 것처럼 보인다.



일요일 밤 8시 반, 늦은 시간에도 프랑수아에는 손님으로 가득 찼다. 혼자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는 외국인 관광객,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무리로 가게 안은 빈자리가 거의 없었지만 차분하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누가 봐도 옛 유럽의 살롱 문화를 따라한 카페인데, 세월 속에서 [프랑수아]는 프랑수아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좌) 오렌지 큐라소 차 (우) 비엔나 커피와 시나몬 토스트


이곳의 메뉴는 밀크티, 홍차, 비엔나 커피가 대표적이고 눈길을 끄는 메뉴는 다양한 리큐르를 활용한 풍미 짙은 차다. (* 리큐르: 풍미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도수 높은 술) 오렌지 술인 그랑 마니에르를 넣은 오렌지 큐라소를 한 모금 마시니 속이 뜨거워진다. 메인 디저트는 홈메이드 스타일의 치즈케이크다.



유럽 스타일이 아니라서 좋았다. 영국식 애프터눈티와 스콘도 아니고 프랑스식 홍차와 밀푀유, 마카롱도 아니고 이태리식 에스프레소와 티라미수도 아닌 리큐르 홍차와 치즈케이크가 있는 일본식 티 살롱.



갑자기 궁금해진다. 한국식 티 살롱에는 어떤 차와 디저트가 어울릴까?




500년 된 사탕가게, [미나토야]


“게이초 4년 (1599) 교토의 에무라 씨는 아내를 묻은 후, 며칠이 지나 땅 속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서 다시 파보니 죽은 아내가 낳은 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밤마다 사탕을 사러 오는 여인이 있었는데 무덤에서 아이를 꺼낸 후에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아이는 8세에 승려가 되어 수행에 정진해 고명한 승려가 된다. “



사탕가게 [미나토야]에는 ‘죽으며 아이를 낳은 여인이 유령이 되어 죽은 몸에서 나오지 않는 젖 대신 사탕을 먹여 아이를 키웠다는 전설’ 속 사탕 [유레이코소다테아메]를 판매한다. 만화 [묘지의 기타로]로도 알려진 이 이야기의 장소를 찾아 청수사 근처 골목으로 향했다.



(좌) 이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오래된 텅빈 가게 (우) 이것이 사탕이 맞나? 싶은 사탕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눈에 띄는 간판도 별다른 광고 문구도 손님도 심지어 주인도 없는 휑한 가게였다. 한참을 크게 부른 뒤에야 가게 안쪽에서 사탕을 자르던 할머니가 나왔다. 오래된 유래만큼 여러 종류의 사탕과 일러스트가 그려진 다양한 패키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사탕은 딱 한 종류 [유레이코소다테아메] 뿐이었다.



시식용 사탕을 입에 넣자마자 아! 아는 맛인데, 엿이잖아 이거! 실제로 500년 전 사탕은 물엿과 비슷한 끈적하고 말랑한 질감이었다고 하니 호박엿과 아주 비슷했을 거다. 500년 동안 바뀐 것은 사탕의 질감뿐이라니.


(좌) 제각각 조각난 호박엿 맛 나는 사탕 (우) 벽면에 가득한 역사 기록

브랜딩도 광고나 홍보도 거의 전무한 데다가 맛도 특별하지 않은 이 가게가 어떻게 500년을 이어왔을까 집에 돌아와 사탕을 먹으며 생각했다.



카페 프랑수아와 본질적으로는 같은 비밀 아닐까. 오랫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온 곳에는 그 시간만이 가질 수 있는 기억과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오래된 가게들의 자산이자 콘텐츠가 되었다.




30년 된 일본식 찻집, [기온 코모리]


교토 여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찻집이었다. 홋카이도 호텔에서 조식 디저트로 맛본 와라비 모찌가 너무 맛있어서 [일본 와라비모찌]를 검색해 보니 이 카페 후기가 여러 개 나왔다. 보다 보니 어느새 교토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즈넉한 전통가옥에서 맛보는 전통 다과, 예쁘고 맛있었다.


500년 된 사탕 가게와 100년 된 티 살롱을 다녀와서일까? 전통 가옥에서 전통 디저트를 판매하는 이곳에서는 '모찌가 예쁘고 맛있다, 가게가 고즈넉하다' 외에는 특별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왜일까, 숙소로 돌아오며 깨달았다. 이야기였다. 공간의 경험은 시각과 후각, 미각으로도 만들어지지만 가장 입체적인 경험은 이야기를 통한 '상상의 경험'이다.



이 사탕이 유령이 아이를 키운 그 사탕이구나, 이 자리가 교토 지식인들이 앉아서 정치와 사회를 논하던 자리구나, 그들은 무슨 커피를 마셨을까,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하게 닳은 이 의자에는 100년 동안 몇 명이나 앉았을까.



실력만큼 중요한 것은 매력이다. 성공의 조건은 실력이지만 실력이 있다고 모두가 오래가는 것은 아니다. 오래 지속하게 하는 것은 매력이다. 우리는 이야기로 연결된 대상에게 매력을 느낀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세상에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중 대중의 선택을 받는 사람은 소수이고 그중 오래 노래하는 삶을 지속하는 사람은 더 소수다.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데도 알려지지 않았다니, 이렇게 글을 잘 쓰는데 책 한 권 못 낸 사람이 많다니, 이렇게 맛있는데 장사가 안 되다니.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한 나에게 차례가 오긴 올까. 그런 생각으로 울적하던 때가 있었다.



교토의 오래된 가게들은 입을 모아 대답하고 있었다. 나의 차례가 온다고. 아니, 이미 왔다고. 내가 나의 자리에서 나답게 나만의 이야기를 찾고 만들고 쌓아가는 과정이 그 증거라고 말이다. 



노력의 진정한 보상은 과정이다. 결과를 기다리며 조급한 마음이 든다면, 그 길이 아닌 거다. 그 방법이 아닌 거다. 지금 이것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으로 즐겁고 뿌듯하고 내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될 때 세상은 알아차린다.



실력을 이기는 나만의 매력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일상을 여행처럼



내 일기장은 수면 기록 노트다. 아침에는 정해둔 시간에 일어나지 않고 미적댄 변명과 자책을 쓰고 밤에는 내일 일어나야 하는 시간과 마음가짐에 대해 쓴다. 누군가는 그렇게 고생하지 말고 그냥 마음 편히 푹 자라고 하겠지만 이미 너무 푹 자고 있다. 하루에 8-9시간씩 자는데 이렇게 푹 자다 보니 하루가 너무 짧아서 7-8시간으로 줄여보고 싶은 거다. 하루 종일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재택근무하는 날이 더 많을 정도로 활동량이 적고 체력 소모도 적은데 굳이 8-9시간씩 자야 할까.



이런 고군분투가 한순간에 무색해지는 날이 있는데 바로 여행날 아침이다. 새벽 3시에도 알람을 듣자마자 눈을 번쩍 뜬다. 알람을 듣고 단번에 일어난 스스로를 보면 헛헛한 웃음이 난다. 그동안 잠과 벌였던 사투는 다 뭐였을까.



만약 일상이 여행이라면 매일 기대감에 번쩍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매일 똑같아 보이는 하루를 여행처럼 기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 여행의 테마 [오래된 것을 보는 새로운 마음]은 오래된 일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온 하루가, 심지어 퇴근 후의 시간마저도 회사를 위한 시간이라고 여긴 시기가 있었다. 운동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기 위한 체력 준비이고, 빨래는 회사에 입고 갈 옷을 준비하는 것이며, 잠들기 전 아침 식사를 미리 챙겨두는 것은 출근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세월을 빨리 흘려보내고 싶었다. 새로울 것도 기대할 것도 없으니까.



조금씩 그 쳇바퀴 너머 새로운 것들을 발견했다. 회사 가는 길에 마주한 나무와 가게들, 버스 창밖 풍경을 관찰했다. 같은 계절 속에서도 미세하게 달라지는 햇살의 색과 바람의 질감을 느꼈다. 매일 아침에 사 먹는 라테의 맛도 조금씩 달랐다. 어떤 날은 우유가 좀 더 많았고 어떤 날은 라테 아트의 하트가 좀 더 컸다.



명상을 배운 이후로는 세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도 호흡이 달라지면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고 그럼 내 마음이, 궁극적으로는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제나 그대로인 것은 없다. 오래된 것은 낡거나 새롭다. 매일 낡아질 것인지 매일 새로워질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자극을 계속 갈구하는 것은 계속 낡아진다는 것이다. 내 안에 새로운 것이 없으므로 외부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신호다.




여행을 일상처럼



여행은 일상을 잊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던 일상의 새로움을 발견하러 가는 것이다.



여행에서 일상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일상의 나를 버려야만 쉴 수 있다면,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삶 전체를 저당 잡히며 살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삶은 정지된 순간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시공간 전체이다.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일상과 분리하지 않기 위해 여행에서도 리추얼을 지속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리추얼은 [요가]와 [일기]다. 요가는 [숨], 일기는 [바라봄]이다. 이 두 가지 리추얼은 삶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정신과 존재 그 자체다. 호텔 침대에서 아침저녁에 요가를 하고 틈날 때마다 일기를 쓴다. 그러려면 여행 일정을 빡빡하지 않게 빈틈을 충분히 두고 짜야한다. 일기를 쓰며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멋진 것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input과 output의 균형을 맞춘다. 체험과 경험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소비를 위한 체험인지, 배움이 있는 경험인지 예민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소비를 위한 체험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고 배움이 있는 경험은 스스로 누리기 위함이다. 





35년 된 일상, [나], 1989년 출생



여행을 마치며, 가장 마지막 코스로 향했다. 500년 된 사탕가게와 300년 된 문구점, 100년 된 찻집, 30년 된 서점을 지나 35년 된 [나]에게 도착했다.



나는 35년 동안 매일 삶을 지속해 오며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쌓고 있을까. 타협하지 않는 용감한 원칙을 갖고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는 분명히 알 수 있는 미세한 변화를 만들고 싶다. 소비적인 체험을 전시하는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 좋아 보이는 것을 쫓아다니지 않고 내 안의 좋은 것을 잘 꺼내어 쓰고 싶다. 세상이 그거 아니라고, 바꾸라고, 다른 걸 하라고 말해도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것을 지키고 싶다.



그러면 매일을 반짝이는 눈으로 새롭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삶이 당연해지면 지루해지고 감사함을 잃는다. 그럴 때 우리는 허무할 만큼 쉽게 무너진다.



매일을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동시에 변하지 않을 핵심은 유지하고 싶다. 무게 중심이 단단하지만 동시에 유연하고 싶다. 나만의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세심하게 읽으며 미세하게 업데이트하며 파도를 잘 타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래된 것들이 가진 힘에는 새로운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새로움은 모두가 알아챌 만큼 화려한 새로움이 아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한 새로움이다. 굳건한 원칙으로 매일 반복하는 일상은 안정감을 준다. 매일의 미세한 조정은 세상과 타인을 향한 이해와 배려다. 안정감과 유연한 배려를 갖춘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매일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낡거나 바래지 않고 우아해질 수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교토의 오래된 가게와 거리에서, 지나온 시간을 아름다운 축복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오로지 나만이 아는 무수한 최선과 사랑을 돌아보며 이 글을 다시 꺼내 읽고 싶다.



그때까지 매일 내 안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며 살기를.

나의 시간을 축복하며 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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