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는 나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도시다. 7살 때 잠깐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명절마다 친척들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 명절에는 집에서 쉬겠다며 목포 할머니집에 가지 않고, 결혼 후에는 부산에 있는 시댁과 서울에 있는 부모님 댁에 가게 되면서 목포와는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이제 목포는 부고를 듣고 어수선한 마음으로 가는 곳이 되었다.
어릴 적에는 목포에 가면 어린이와 아기들이 많았다. 부모님 세대는 아직 결혼과 출산이 당연하던 시대였고 삼촌과 고모는 둘셋씩 아이를 낳아 길렀다. 장남인 아빠에게는 세 명의 동생이 있었고 모두 둘 이상씩 차례로 아이를 낳았다. 목포에 가면 새로운 아기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지난 주말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목포에 갔다. 더 이상 목포에는 새로운 생명이 없었다. 딩크족인 나와 언니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고, 아직 30대 초반인 사촌동생들은 결혼과 출산을 모두 하지 않았다. 어른들만이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보러 모였다.
“지금 뭐 하러 가는 줄 알기는 해?”
할아버지의 입관을 보러 가는 길, 동생이 물었다. 나는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동생은 젊은 이모의 죽음으로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다.
”뭘 몰라, 알지.“
태연하게 대답은 했지만 몇 걸음 뒤 무엇을 보게 될지 사실 전혀 몰랐다. 염을 마친 할아버지의 시신을 보고 만지면서, 아 지금 이 순간이 평생 잊히지 않겠구나, 직감했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어른이었던 어른들이 울음을 삼키고, 주체하지 못해 엉엉 우는 것을 보면서 죽음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삼촌과 고모가 자신의 죽은 아빠를 보면서 절규할 때, 나는 나의 부모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곳에서 나온 후 동생과 언니가 자신도 같은 것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평생 돈을 벌지 않았고 할머니 혼자 논밭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일당을 받아 네 남매를 키웠다. 공부를 잘했던 아빠는 돈이 없어 대학을 못 갔다. 대학에 안 보내주면 머리 깎고 중이 되겠다고 산속에 들어간 아빠는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술만 마시던 할아버지가 얼마나 미웠을까. 어린 내 눈으로도 의아할 만큼 늘 할아버지를 외면했던 아빠는 죽은 할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장남의 자리에 서 있었지만 울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아빠는 울지 않은 게 아니라 차마 울 수 없었던 거다. 가장 미워한 자식이 가장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마음껏 울지도 못한다는 것을, 입을 굳게 다문 아빠의 모습이 내 미래라는 것을 경험하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남은 사람들이 잘 살아야지.“
죽음은 삶을 생각하게 만든다. 할아버지를 관에 넣어드리고 나와 아빠가 말했다. 후회할 수도 없는 자식에게 주어진 몫은 어쨌거나 어떻게든 잘 살아내는 것이었다.
장례 절차를 모두 마치고 기차 시간이 남아 기차역 근처 빵집으로 가던 길, ‘고호의 서점’이라는 서정적인 이름의 가게를 발견했다. 죽음에서 삶을 생각하는 것처럼, 이제는 죽음과 소멸의 도시가 되어버린 목포를 생명의 도시로 기억하고 싶었다. 이 책방에서 생명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었다. 고호의 서점은 이름에 걸맞게 미술 해설서, 평론과 작품집이 많았고 안쪽 서가로 들어가니 [자연]을 주제로 한 큐레이션 서가가 나왔다. 미술 서점에서 자연에 대한 책이라니, 언뜻 어색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연사는 가장 거대하고 오래된 미술사니까 말이다. 자연사 책장을 둘러보다가 역동적인 일러스트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지구의 짧은 역사], 이 책이라면 목포에 대한 기억을 죽음이 생명으로 덧칠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로 돌아와 3일 남은 경조 휴가 중 2일만 반납하고 하루는 쉬기로 마음먹었다. 조부모상 경조휴가는 4일이 나오는데 주말은 포함되지 않는다. 금요일 아침에 부고를 듣자마자 휴가를 냈고 토요일에 조문객 맞이와 입관을 하고 일요일에 발인과 화장을 모두 마치니 3일의 휴가가 남았다. 어른들은 할아버지가 손주들 덜 힘들게 하려고 금요일에 돌아가신 거라고 말했다. 그때는 할아버지가 죽은 날과 우리를 위한 마음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입관을 할 때는 무너지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던 어른들이 명절에 모인 조카들에게 덕담하듯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게 이상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얻은 하루의 휴가. 뭔가를 할 에너지도 없고 시끌벅적하게 보내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다. 휴식과 애도의 사이에서 서성이다가 목포에서 사 온 책 [지구의 짧은 역사]를 읽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주 동안 매일 아침마다 1시간씩 1챕터씩 몇 억년을 숨차게 거슬러 올라가며 지구의 역사를 탐구했다.
"지구 역사가 주는 한결같은 교훈 중 하나는 지금 이 순간이 대단히 덧없고 깨지기 쉬우며 소중하다는 것이다."
서문을 읽다가 이 문장을 발견하고는 오늘 이 책을 읽는 것이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느껴졌다. 46억 년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100년도 살지 못하는 한 인간의 역사란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찰나의 순간이다. 지금도 끝없이 변화와 진화를 반복하며 역사를 이어가는 46억 살 지구에게 인간의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역동적인 생명 활동 그 자체다. 길고 긴 지구의 역사를 이해한다면 대단히 덧없고 깨지기 쉽기에 무엇보다 소중한 찰나의 삶과 죽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시 지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지구와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아주 뜨겁고 짙은 대기에 쌓여 있었으며 산소는 없었다. 지구에 물이 생기고, 대륙이 솟아나고, 산소가 생기고, 생명이 시작되고, 지구 표면이 생명으로 뒤덮이기까지 지구는 수없이 많은 우연한 변화를 겪었다. 인간은 암석의 탄소에서, 지질층의 화석에서, 동물의 발자국에서 그 변화의 원인과 모습을 추측했다. 찾을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자주 틀리고 번복하기를 반복했다. 대륙이 과거에는 하나의 거대한 판게아였다는 이론도 한때는 웃음거리 취급을 받는 가설이었다. 현재의 모든 진실은 [주류 세력에게 동의된 가설]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은 언제든 폐기될 수 있다. 지구의 역사가 나에게 알려준 것은 이것이었다.
생명은 우연과 우연의 연속에서 태어났고 100%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것을 우연과 불확실한 확률에 맡겨야 할까? 아니, 나는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가 삶을 향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바로 [해석]이다. 애초에 정해진 삶의 목적도 의도도 방향도 없다는 것은 내가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만들어나가는지에 따라 삶이 온전히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삶을 바꾸지 않고도 삶은 바뀔 수 있다.
생명의 조건이 산소라고 생각했는데 지구에 산소가 희박하던 시절에도 지구에 생명은 존재했다. 산소 없이도 생명 활동을 할 수 있는 세균과 미생물이 지구를 촘촘히 채우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동물 1톤당 세균과 고세균이 30톤의 비율로 존재한다. 현미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아주 다르게 보일 것이다. 비어 있는 줄 알았던 곳에 무언가 존재하고, 채워져 있는 듯 보이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보는 세상이 진짜 세상과 다르다는 건 짜릿하고 신나는 사실이다. 아무도 없어서 외롭다고 느낄 때, 사실은 내 옆에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있다고 생각해 보라. 세상이 너무 정신없고 시끄럽다고 느낄 때 눈을 감고 피부와 접한 얇은 공기층을 현미경을 낀 듯 확대해서 아주 작은 원자와 전자의 고요한 세계로 들어간다고 상상해 보라.
생명이 지구를 뒤덮기까지 오롯이 그 자신의 힘과 능력만으로 생존에 성공한 종은 없다. 그들에게는 대신 협력과 행운이 있었다. 생명과 생명 사이의 협력뿐만이 아니라 지구와 생명 사이의 협력이 지금의 지구를 만들었다. 생물은 지구에 영향을 미쳤고 지구는 생물의 운명을 결정했다. 뜨거운 원시 지구가 식고 대륙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자연력에 침식되어 바다로 유입되는 인의 양이 늘어났다. 광합성 생물은 인을 흡수하여 생명 분자를 만든다. 오랜 기다림 끝에 기회를 잡은 남세균은 세력을 확장하며 산소를 생산했고 지구를 산소 가득한 행성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대산소화 사건이다.
인간은 인과 관계와 패턴을 만들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빠르게 판단해서 도망갈지 말지 결정해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의 역사는 'A때문에 B가 생긴 것이다'라던가, 'A는 대개 B를 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A는 B도 C도 만들 수 있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 보니 D와 E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C가 되었구나라고 우리가 해석하는 것이다.
저자 앤드루 H. 놀이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이 순간은 덧없고 깨지기 쉽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에 소중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고 내가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대상은 직장 동료였고 그다음은 남편, 밑미 리추얼 메이트 순서였다. 당장의 일상이 가장 복잡하게 얽혀있는 순서대로였다. 직장 동료들에게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급하게 휴가를 내야 하니 업무를 조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에게는 오늘 휴가를 내고 목포에 내려가야 하니 회사에 알리라고 말했다. 밑미 리추얼 채팅방에는 주말까지 쉬어가야겠다며 소식을 전했다. 오히려 평소에 소중하게 여기고 마음을 의지하는 친구들이나 SNS 이웃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마음은 연결되어 있지만 물리적으로 엮여 있는 게 없어서 무거운 소식을 굳이 알릴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따뜻한 위로의 말과 조의금 역시 회사 동료들에게서 가장 먼저 받았다. 그 모든 관계 중에서 회사 동료에게 가장 먼저 위로를 받았다. 좋건 싫건 우리는 엮여 있을수록 서로의 지금을 더 잘 이해하고 돕는다.
장례식장에서 자식과 손주들, 며느리와 사위까지 스무 명이 넘는 상주가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정을 도왔다. 장례식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척들을 만나 안부를 묻는 자리이기도 했다. 가족이라는 그물망으로 엮여있기에 낯설고 복잡하고 힘든 장례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북적이는 장례식장 안에서 가족의 의미가 깊고 따뜻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가족은 서로 깊고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지 못한 우리 가족이 싫은 적이 많았다. 그러나 가족의 의미는 그게 아니었다. 가족의 의미는 [엮여있음]이었다.
어른으로서 내 삶은 [엮여있는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회사 밖에서 독립적으로 돈 벌고 싶었고 가족 밖에서 심리적으로 자립하고 싶었다. 독립적으로 개인적으로 온전히 나로서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오만이었는지 가르쳐줬다. 그 어떤 생명도 혼자의 힘으로 생명을 이어나갈 수는 없다. 협력과 행운의 결과로 삶은 이어진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어떠한 의미도 목적도 방향성도 없다. 덧없고 깨지기 쉽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구와 다른 생명과 주변의 누군가와 계속해서 협력하며 행운 근처를 맴돈다. 엮여있는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이 아니라 제대로 잘 엮여가는 방향으로, 삶은 흐른다. 잘 엮여 가려면 누구와 어떻게 엮여야 할지 결정해야 하고 엮여있는 상대와 엮여있는 지금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소중하기 때문에 엮여있는 것이 아니라 엮여있는 것이 소중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게 여겨야 비로소 소중해진다. 회사도 가족도 친구도 나도,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그렇다. 할아버지의 죽음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이것이었다. 기꺼이 함께 엮일 것,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소중하게 여길 것,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외면하지 말 것.
할아버지의 부고로부터 일주일 뒤 시댁 어른의 부고를 받았다. 죽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사실 죽음은 처음부터 내 곁에 있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간다. 가까워진 죽음으로부터 삶을 떠올린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삶 속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든다. 삶을 놓치고 싶지 않다. 외면했던 것들을 마주해야 할 시간이 죽음과 함께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