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 Aug 26. 2023

내가 공들인 여름 안에서



잔인해서 아름다운 여름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는 여름 햇살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잔인하게 덥고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원한 휴식 끝에 추위가 찾아오는 이야기보다 무더위 끝에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많은 이야기가 [고난 끝 행복] 서사를 가진 데는 이유가 있다.



숨 막히는 더위 덕분에 돌아서면 여름은 추억이 된다. '여름이었다'라는 표현은 아마도 그런 감정을 품고 있는 것 아닐까. 20대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지금이라면 굳이 하지 않을 어려움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결과로 지금의 내가 있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오랜만에 산책을 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신호를 발견했다. 봄에는 벚꽃 잎이 흩날리고, 여름에는 햇볕이 나뭇잎 사이로 강렬하게 부서지던 아파트 사이 나무 그늘에 벌써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번 여름은 덥고 지치고 숨이 막히는 계절이었다. 그리고 약속처럼 가을이 돌아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추억하는 여름은 기억을 재생할 때마다 미화될 것이다. 
계절에게 참 고맙다. 무엇이든 왔다가 간다는 것을 알게 해줘서.


이번 주는 퇴근길 내내 [사랑의 공간 만들기] 명상을 들었다.



“생각이 많아지거나 무기력해지는 것은 내 탓은 아니지만 나의 책임 가운데 있습니다.

나의 상황이 나의 감정이 내 책임이라는 것은 아주 멋진 일입니다.”



나의 여름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는 그 모든 상황과 감정이 내 책임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선택임을 알면 삶의 방향키는 나에게 주어진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로 삶은 내 앞에 펼쳐진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흐름 위에 올라타는 것, 그것 뿐이다.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 밖에서 이런 저런 커리어 강연을 할 때마다 첫 회사 이야기를 구구절절 주구장창 써먹었다. 매일 퇴근 지하철에서 1시간 내내 울며 다닌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나의 이야기. 지난 10년간 나의 일은 그 시절을 벗어나기 위한 분투였다. 언제까지 그때 이야기를 써먹게 될까 궁금했다.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도망이 아닌 애정으로 일에 다가설 때, 그제야 더 이상 그 시절 상처를 발판삼아 도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지금 하는 일을, 회사원으로서 일하는 생활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일을 시작하고 딱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스스로 감이 좋고 생각이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회사 생활이 나름 맞는다는 것을 아는데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다.



어쩌면 10년을 버텼기에 비로소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의 대사처럼 말이다.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그 꽃을 위해 너가 공들인 시간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좋아하는 게 없어서 고민이다.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좋아하는 일이란 건 어쩌면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은 산더미 같은 일, 상사의 오해, 답답한 조직문화일 수도 있다. 그 장막을 걷어내야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이 보인다.



나는 정리되지 않은 채 정신 없이 쌓인 일 더미에서 나만의 길을 내는 것을 좋아한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물길을 내고 배를 지어 띄우고 여기서 저기로 물건을 나를 수 있게 다리를 놓는 과정에서 [나의 존재]를 만끽한다. 그러려면 회사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아주 큰 회사일수록 좋다. 그럴수록 문제는 복잡하고 이해관계는 얽힐대로 얽혀있고 해결책을 찾기가 힘들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기기니까.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일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드디어 일을 제대로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달 내내 30년 이상 커리어를 이어가는 직업인들의 에세이를 찾아읽으며 확신했다. 10년차는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시기라는 것을. 나에게는 제대로 일해 볼 20년이 남았다.



읽은 책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임경선

[일을 잘하고 싶은 너에게], 이원흥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최인아



공부하는 마음으로


밑미 공부 리추얼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메이트가 찾아오는데 그 중 꽤 많은 분들이 선생님이다. 선생님 메이트분들의 기록에서 학교 다닐 때는 접해보지 못했던 전문적인 교육 용어를 만난다. 게다가 행정 업무부터 교육 과정 개발, 시험 출제 과정까지 일이 어찌나 많은지, 옆에서 자세히 지켜보면서 [경험했으나 몰랐던 일의 뒷면]을 알게 되었다.



초중고부터 대학까지 총 16년 동안 학교에 다녔으니 학교와 교육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학생 관점에서의 학교만 알고 있었던 거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경험을 해도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경험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구나. 나와 다른 분야, 생소한 직업을 가진 분들을 볼 때마다 [어떤 관점]으로 경험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매일 내 머리를 만지고 다듬지만 5cm를 자르면 머리가 어떤 모양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고선 미용실에 가서 5cm 잘라주세요! 하고는 생각보다 훨씬 짧아진 머리 길이에 흠칫 놀란다. 단골 미용실 원장님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신입 디자이너 때는 손님들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는데요. 그러면 100% 클레임 들어와요." 매일 보는 머리도 직업으로서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아가는 일. 그것이 공부하는 마음이라면, 세상은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똑같은 일을 해도 다르게 성장하는 이유가 바로 공부하는 마음의 차이에서 오는 것 아닐까.





나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에


5년 전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막연하게 머릿 속으로 꿈만 꾸고 있었다. 친한 후배에게 글을 쓰고 명상과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 잘 어울려요. 선배가 이야기할 때 종종 명상 선생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흠… 그런데요. 일단 목소리는 좀 바꿔봐요.”



신기하게도 요즘 강의나 세미나를 할 때 가장 자주 듣는 칭찬이 바로 목소리다. “목소리가 편안하고 듣기 좋아요. 심야 라디오 듣는 것 같아요. 강의 들으면서 목소리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강의를 듣거나 훈련을 하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그대로다. 그런데 왜 피드백이 이렇게 바뀌었을까? 내 목소리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근사근하지 않고 공기 함량이 적고 얇은 내 목소리를 그냥 [인정]했다.



밝고 명랑한 척 인위적으로 만든 가짜 목소리 아래 숨어있던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도를 늦췄다. 말을 빠르게 많이 하면 안 그래도 얇은 목소리가 갈라진다. 가끔 ‘응? 오디오가 빈 건가?’ 싶을 정도로 쉼표를 주기도 한다. 오히려 그 멈춤이 집중하게 만든다.



아무리 남을 따라해봤자 그건 가짜다. 사람들은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안다. 나는 비타민처럼 밝고 통통 튀는 사람은 아니다. 대신 오랫동안 고민한 이야기에 마음을 담아 이야기할 줄 안다.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면 전달된다. 아직은 그걸 어떻게 하는지 설명은 못 하겠다. 언젠가 알게 되면 글로 써봐야지.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담아 글쓰고 말하는 것에 대해 안다는 거다. 그렇게 전할 때 상대가 온전히 받아준다는 것을 안다.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시선을 안으로 돌려야 한다. 정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남들만큼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처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는 늘 그래서 생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끌어당김, 정말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