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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Sep 26. 2024

내향인 커뮤니티 리더로 성장하기



실패한 기억


4년 전, 트레바리에서 모임을 연 적이 있었다. 1회 차가 끝나고 반 이상의 멤버분들이 환불 요청을 했고 결국 폐지되었다. 2년 전,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 다시 트레바리에서 모임을 열었다. 그곳에서 감사한 인연도 만났지만 책 선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환불 요청을 한 멤버가 있었다. 하기 싫은 숙제 하듯 남은 모임을 꾸역꾸역 마무리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몰랐다. 그냥 나는 오프라인에서는 안 되나 보다고 생각했다.



다시 얻은 용기


3년째 밑미에서 오프라인 리추얼 모임을 이끌고 있다. 온라인으로 매일 만나는 느슨하지만 끈끈한 모임이다. 이곳에서 내 강점을 찾았다. 다정하고 살뜰하게 매일 조금씩 관계 맺는 방식이 나의 내향적인 성향과 딱이었다. 어릴 적 친구와 교환일기를 주고받던 추억을 만끽하며 기록과 댓글로 이야기를 나눴다. 늘 마감되는 리추얼은 아니었지만 매월 꾸준히 찾아주는 메이트들이 있는 사랑받는 시그니처 리추얼이 되었다.



문제를 깨닫다


퇴사를 하고 다시 오프라인 모임을 시작하자고 결심했다. 언젠가는 이겨내야 할 관문이었다. 에너지 레벨이 낮은 내향이라 나는 오프라인에서는 안 돼,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정말 내 에너지 문제인 걸까? 


내 모임을 열기 전 보라님의 <디즈니 덕후의 시네마 테라피> 모임에 놀러 간 건 신의 한 수였다. 보라님 모임에서 멤버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사람들이 오프라인 커뮤니티에 비싼 돈을 내고 가는지" 그 본질을 알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좋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나는 커뮤니티 리더로서 내가 100%를 쏟아내서 그 시간을 꽉꽉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커뮤니티 리더의 역할은 그게 아니라 '기꺼이 함께하고 싶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커뮤니티 리더는

▪︎ 좋은 사람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 좋은 대화 주제를 건넬 수 있어야 한다

▪︎ 플랫폼의 문법에 따르기보다 나답게 변형할 줄 알아야 한다.


보라님 모임에 다녀와서 준비한 세션을 모두 바꿨다. 어떻게 하면 우리 함께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내가 드릴 수 있는 에너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끈질긴 고민 끝에 '대화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세션으로 재구성했다.


운 좋게도 모임 전날 넷플연가 임채원 매니저님이 "모임 200회 진행한 사람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셨다. 잔뜩 긴장해서 채널톡으로 이것저것 물어보는 나를 도와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잠깐 통화를 하자고 하시더니 꿀팁을 대방출해주셨다. 재빨리 받아 적고 다시 한번 구성을 바꾸었다. 


▪︎ 자기소개 서로 해주기

▪︎ 중간에 자리 한번 바꾸기

▪︎ 마지막에 한 줄 소감 말하며 모임에서 배운 것 되새기기

▪︎ 리뷰 남겨달라고 꼭 부탁하기

▪︎ 그룹 토크 & 전체 토크 중간중간 섞기




드디어 맛본 오프라인 성공 경험


첫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하며, "와... 성공이야!" 속으로 외쳤다. 기록에 진심인, 너무나도 멋진 분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분들이 모일 수 있는 거지? 좋은 분들이 모였으니 내가 할 일은 대화할 맛이 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앞으로 남은 3번의 모임과 번개, 단톡방에서 '기꺼이 내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마음'을 이끌어드리고 싶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해서 듣고 싶다. 


정서경 작가님의 말처럼 좋은 이야기는 솔직한 이야기다. 용감하게 마음을 열고 남기는 기록은 모두 자신만의 빛으로 반짝인다. 우리 모두 자신의 반짝임을 찾고, 키우고, 알릴 수 있기를. 기대되는 가을이 시작되었다.




온라인 vs 오프라인 커뮤니티


온라인 커뮤니티와 오프라인 커뮤니티는 다르다. 온라인을 좋아하는 사람과 오프라인을 좋아하는 사람의 성향이 다르고, 똑같은 사람이 와도 다른 것을 기대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참여자 성향  

 나에게 집중하는 에너지가 높다.  

 느슨하고 깊게 연결되는 네트워킹을 좋아한다.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관찰하고 성장하고 싶은 니즈.  


오프라인 커뮤니티 참여자 성향  

 새로운 외부 자극에 열려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에너지를 받는다.  

 좋은 사람과 어울려 놀고 싶은 니즈.  




커뮤니티 vs 콘텐츠


콘텐츠든 커뮤니티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왓츠인마이백 콘텐츠가 인기 있는 이유도 비슷하다. '쇼핑'도 놀이 문화다. 왓츠인마이백 콘텐츠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가 자주 쓰는 물건을 따라 사는 건 재미있는 놀이다.


루틴이나 툴킷을 소개해주는 것도 비슷하다. 어제 공부 커뮤니티에서 한 멤버분이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 책을 읽으며 30 가지의 자두를 맛보는 체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철 행복 책을 가이드 삼아 계절을 체험하는 게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이게 커뮤니티와 콘텐츠의 역할이다. 모두가 내 삶을 더 풍요롭게, 즐겁게, 새롭게 바꾸고 싶어 한다. 일상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작고 쉽고 재미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콘텐츠가 혼자서도 가능한 놀이를 알려준다면, 커뮤니티는 같이 해야 더 재미있는 놀이를 알려준다. 내가 가지고 있는 툴/루틴/도구/놀이/방법 중에서 같이 해야 더 좋은 게 있다면 커뮤니티 프로그램으로, 혼자 해도 충분히 즐거운 게 있다면 콘텐츠로 만들자.




회사 밖 홀로서기라면서 플랫폼을 이용하는 이유


회사 독립 선언을 했지만 플랫폼에서는 독립하지 않았다. 혼자 일하는 자유는 좋지만 혼자 떠안아야 할 온갖 업무들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프로그램 기획, 홍보, 모객, 정산, CS까지 혼자 하다 보면 제대로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지쳐 나가떨어지기 쉽다.



내가 이용하는 수익형 플랫폼

[콘텐츠] 퍼블리, 유튜브

[커뮤니티] 밑미, 넷플연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

플랫폼이 정해둔 수익 상한선과 수익 구조를 따라야 한다

의도하지 않은 오디언스가 유입될 수 있다 (결이 안 맞는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경우)

플랫폼의 운영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플랫폼을 쓰는 이유


협업

: 다른 사람이 만든 제품은 잘 팔고, 알리고, 키우면서 정작 나 자신을 세일즈, 마케팅, 브랜딩 하기는 어렵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혼자 일하다 보면 요즘 일 잘하는 회사에서는 어떻게 일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생산성 도구부터 커뮤니케이션 언어, 메일 작성법을 알 수 있다. 퍼블리와 일할 때는 깔끔하고 야무지게 메일 쓰는 법을 배웠고, 넷플연가로부터는 노션, 타입폼, 각종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분업

: 회사 밖에서 혼자 일하다 보면 모든 것을 혼자 다 해야 하는 환경에 지치기 쉽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나왔는데 정작 많은 시간을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다른 일들로 보내게 된다. 물론 모두 중요한 일이지만 내 코어를 다질 시간이 없이 휘둘리기 쉽고 그러다 보면 


확장

: 유튜브가 나 대신 내 영상을 여기저기 보여준 덕분에 구독자수가 늘고 있다.




그래서, 내향인도 커뮤니티 리더가 될 수 있나요?


오히려 관계에 에너지를 많이 뺏기는 내향인일수록 '자신만의 커뮤니티'가 있어야 한다. 내향인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아니다. 안 맞는 사람과 함께할 때 에너지 소모가 크다. 내향인들은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때, 비로소 에너지를 얻는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안전하게 마음을 놓고 기댈 수 있는 커뮤니티를 자신의 환경으로 조성해둬야 한다.


내향인이 커뮤니티 리더로 슬기롭게 성장하려면 '나의 바운더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고,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처음부터 선언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기대치가 어긋나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상세 페이지에 <내향인>, <다정함>, <글쓰기>와 같은 키워드를 강조하는 것이다. 왁자지껄 신나는 분위기를 기대한다면 여긴 아니라는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내야 한다. 대신 다정한 응원과 지지, 글쓰기에 필요한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두 번째 방법은 애초에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 가는 것이다. 3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플랫폼 '밑미'의 브랜드 슬로건은 '내면의 변화를 만드는 플랫폼'이다. 밑미는 뉴스레터와 인스타그램으로 꾸준히 밑미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알린다.


"나를 만나러 오셨군요."

"꾸준하게 나를 보는 근육을 만들고 싶어요."

"급할 것도 없고요, 정답도 없습니다."


이런 콘텐츠를 보고 "시끌벅적 신나는 음악 파티"를 떠올릴 사람은 없을 거다. 조용하게 둘러앉아 자신에게 집중하며 명상을 하거나 글을 쓰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래서 밑미에 모인 사람들은 자주 "다른 데서는 제가 이상한 사람 같았는데, 여기 오니까 마음이 정말 편해져요."라고 말한다. 이렇게 정체성이 명확한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향인인 내가, 왜 커뮤니티 리딩을 하고 싶은 건지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고 와도 집에 오면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인데 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걸까? 답은 너무 명확했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예민해지는 사람이라고 해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살 수는 없다. 때로는 기댈 줄도 아는 사람이 진짜 건강한 사람이다.


나의 내향성을 존중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건강하게 잘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에게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언제나 사라지지 않고 나와 함께해 줄 커뮤니티를 찾고 싶었고 결국 커뮤니티 리더가 되기로 했다. 내가 만든 커뮤니티는 내가 그만둘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테니까.


내향인 커뮤니티 리더로서, 나는 앞으로도 종종 실패할 거고, 상처받을 거다. 그렇지만 자주 서로에게 기대어 위로받을 것이고, 그 힘을 동력으로 꾸준히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의 커뮤니티에 온 사람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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