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뉴스레터 <함께하는 독학클럽> 9월 17일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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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 머릿속은 온통 [내 이야기로 나를 알리기]라는 주제로 가득 차 있어요. 이 주제로 세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 최근에 제가 자주 받는 질문도 이 주제거든요.
내 이야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득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고요. 마음에 훅 와닿는 콘텐츠를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와, 찐이다!"
"진정성 있네."
"진심으로 쓴 얘기구나."
그렇다면 진정성 있게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은 알다가도 모르겠는 '진정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본격적으로 SNS 글쓰기를 시작한 건, 2019년 재수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였어요. 그전에도 블로그에 글을 쓰긴 했지만 콘텐츠나 글쓰기라고 보긴 어려운 엉성한 원데이 클래스 리뷰 포스팅이었죠.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가장 힘주어 만든 콘텐츠는 회사 에세이 시리즈인 [아직 회사원입니다]였어요.
당시 저는 진정성을 '내 마음을 그대로 솔직하게 다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眞情性 한자어 풀이 그대로 진짜 마음을 드러내면 그게 진정성이라고 생각했죠. 적지만 제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분들이 있었고 저는 이 길이 맞다고 믿으며 점점 더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죠.
더 날 것의 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거친 마음까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단정하게 꾸며낸 사회적 자아를 벗어던지고 그 아래에 있는 나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 생각의 연장선에서 쓴 글이 가족 심리 상담 기록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엄청난 악플과 비난을 받았어요. 난 진짜 진심으로 썼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보여준 진심은 저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 뿐, 독자에게 닿지 않았던 거예요. 독자 입장에서는 굳이 알 필요 없는 타인의 깊숙한 내면을 마주한 셈이었으니까요.
이후 한동안 뭘 올려야 할지 모른 채 방황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사람들은 진정성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알고보면 꾸며진 이야기를 좋아해.'라는 삐딱한 마음도 품었죠.
그러다 브랜드 전문가인 박재현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Q. 진정성이라는 게 뭐예요?
A. 상대의 입장이 되는 거지. 난 브랜드 얘기하는 사람이니까, 식당을 운영한다고 생각해 보자. 저 손님은 이 공간, 음식, 서비스를 어떻게 느낄까? 이 고민을 진심으로 하는 거야.
Q. 진심으로 하는 게 뭔데요?
A. '이렇게까지 해야 해?' 이런 말이 나올 때까지 가보는 거야. 고객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면 그 미션에 집착해서 평균 이상의 노력을 해보는 거지. 그래야 사람들은 '아, 저 사람 찐이구나. 진심이구나. 진정성 있구나.' 말하거든.
저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브랜드의 자리에 '콘텐츠'를, 손님의 자리에 '독자'를 대입해 봤어요.
진심을 담아서 콘텐츠를 만든다는 건 독자에게 좋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평균 이상의 노력을 해보는 것이더라고요. 결국 진정성 있는 콘텐츠란, 독자가 내게 원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파고들어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삐뚤어지는 저는 이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엄청 서운하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세상이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 세상이 나를 인정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마음을 접고 오로지 독자만을 위해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굳이 왜 해야 하지? 이런 삐뚤어진 생각이 올라왔어요.
때마침 인스타그램에 브이로그 강의 영상이 뜨더라고요. 강의자의 첫마디는 이랬습니다. "니 브이로그 내가 왜 봐야 하는데?" (알고리즘 정말 독하죠) 맞죠, 맞는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겠죠. 그럼 나는요.. 나는 어디서 위로를 얻고 어디서 만족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걸까요?
위로와 인정, 사랑과 만족.
그 누구도 내가 원하는 인정과 사랑을 줄 수 없고 결국 내가 나 스스로에게 줄 수밖에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똑같이 나약한 인간이고 지금 자신이 직면한 현실이 버겁고 힘들어서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을 찾게 되니까요.
참 야속하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면, 타인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해줘야 한다는 삶의 진리. 하지만 이것밖에는 답이 없더라고요. 일단 내가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사랑하며 마음 근력을 키운 후에, 내가 가진 넉넉한 마음과 경험을 독자에게 나눠주는 콘텐츠. 나도 힘들어 봤으니까,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아니까, 그 마음으로 독자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이야기. 독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보고 '진정성 있다'고 느낍니다.
유튜브 영상 나래이션을 녹음하기 전, 저는 자애 명상을 합니다.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이 영상을 보는 분들이 행복하기를, 마음이 편안하기를, 기분이 좋아지기를"이라고 속으로 말해요. 그리고 활짝 웃으며 나래이션을 녹음합니다.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목소리만 듣고도 말하는 사람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웃으며 말하는 목소리에 웃음이 담긴다는 거죠. 웃으며 말하는 상대에겐 웃으며 대답하게 되듯, 먼저 위로를 건네면 위로를 받게 됩니다.
착한 척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잘난 척만 안 해도 좋은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이 글을 읽어줄 사람이 나로 인해 아주 조금이나마 힘을 얻으면 좋겠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왜냐고요? 우리는 생각보다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저도 그래요.
며칠 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아래와 같은 사진과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DM으로 메시지 하나를 받았어요. "으웩 토나온다"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메시지를 지우고 인스타그램을 껐어요. 마음을 진정시킨 후 다시 생각해 보니 왜 그런 반응을 받았는지 알겠더라고요.
저는 너무 자랑하고 싶었던 겁니다. '나 이렇게 성실해요. 이것 좀 보세요, 제가 공부하는 것 좀 보고 감탄 하라고요!' 이런 마음이 제 안에 있더라고요. 똑같은 내용을 다르게 쓸 수 있었을 겁니다. 기존 상식을 뒤엎는 영문법 책을 추천받았는데 너무 좋으니 한번 보시라고 올렸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잘난 척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독자들은 그 마음을 기가 막히게 알아챕니다. 방금 소개한 사례는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제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들만 봐도 그렇더라고요. 이상하리만큼 악플이 달리는 영상은 제가 내심 자랑하고 싶어서 올린 영상들이었어요.
잘난 척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친구를 사귈 때도 그렇잖아요. 잘나서 잘난척하는 친구 말고, 그 잘남을 다 같이 나누려는 친구 옆에 있고 싶잖아요.
자,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정리해 볼게요.
내가 나를 먼저 위로하고 사랑하는 마음 근력
내가 아닌 독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태도
독자에게 줄 무언가 + 그걸 기꺼이 내어줄 마음
줄 것도 있어야 하고 줄 마음도 있어야 한다는 거죠. 참, 이게 어렵습니다. 오히려 마음은 어떻게 고쳐먹어 보겠는데 무엇을 줘야 할지 모르겠지 않나요? 독자에게 난 뭘 줄 수 있을까요. 이게 바로 나만의 내러티브입니다.
나만의 내러티브, 서사, 스토리, 이게 별게 아니에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거죠.
"제가 뭐하던 사람이냐면 말이죠."
50만 인스타그래머 프라우허를 아시나요? 2020년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책으로 저는 프라우허님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당시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책을 모두 찾아 읽었거든요. 책을 읽어보니 저랑 공통점이 많더라고요. 유통 회사에 다녔고 제로 웨이스트와 살림에 관심이 많고요.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했어요.
일회용품 없이 장 보는 재밌는 꿀팁 콘텐츠가 올라오더라고요. 스텐 냄비 들고 시장에 가서 두부 사 오기, 다회용기에 떡볶이 사서 담아오기 같은 저도 따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올려줘서 열심히 봤어요. 그렇게 5년이 지나 지금 프라우허님은 평생 쓸 수 있어서 환경에 덜 유해한 스텐 주방 도구를 판매하는 메가 인플루언서가 되었어요. 프라우허가 뭐하던 사람인지, 사람들은 알죠. 무해하게 살고 싶어서 귀찮지만 스텐 용기를 들고 시장에 장 보러 가는 사람.
그렇다면 저는 뭐하던 사람일까요? 타고난 저질 체력과 내향적인 기질을 인정하고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사람. 그 도구로 기록과 글쓰기를 선택한 사람이죠. 이게 저의 내러티브 자본입니다. 이 자본으로 저는 독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꾸준히 기록하는 방법, 마음가짐, 쉽고 간단한 기록 시스템, 이런 것들이겠죠. 그리고 이걸 공유할 때는 절대로 잘난 척하거나 인정 욕구를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나는 나의 무기로 충분히 성장했으니 이제 나의 성장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먹어야죠. 정말 어렵지 않나요? 글로 쓰기에도 어려운 주제라 일주일 내내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저 역시 아직 과정에 있으니 계속 고민하고 정진해야겠죠. 내가 뭐하던 사람인지, 그래서 누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잃지는 않았는지 계속 돌아봐야죠.
오늘의 이야기를 요약해보겠습니다.
진정성은 나 스스로를 채운 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태도다.
잘난 척만 안해도 좋은 이야기가 된다
나는 뭐하던 사람인가? 나의 내러티브 자본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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