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낭비 프로젝트, 일주일 해보니 어땠냐고요?

무의미한 시간이 의미있는 시간을 만든다

by 단단


이 글은 뉴스레터 <함께하는 독학클럽> 4월 8일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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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도 쉬는 게 아니야



3월 한달 내내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다. 원하는 일을 하며 돈도 적당히 벌고 있는 데다가 하루 노동 시간도 회사원보다 짧은데 도대체 왜 소진감과 무기력을 느끼는 걸까. 원인을 찾고 싶었다.



지난 주말, 3월에 쓴 일기를 읽고 한달 회고를 하면서 원인을 ‘수면 부족’으로 결론지었다. 심리 코칭 세션에서 서밤 코치님은 내 일상에 도통 시간 낭비가 없다며 최후의 처방으로 ‘시간 낭비’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카페에서 책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을 읽다가 새로운 원인을 발견했다.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이 문구를 보자마자 무릎을 탁 치곤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쉬겠다고 아침부터 카페에 나와 책을 읽다가 기어이 또 글감을 찾아내 글을 쓰러 가겠다니, 정말 못 말린다.



지난 일주일 내내 그랬다. 시간 낭비를 하겠다며 집 밖에 나가 산책을 하고, 동네를 벗어나 강을 건너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도, 나는 영상을 찍고 아이디어를 메모했다. 이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조급함, 유튜브에 최소 2주에 한 번은 영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 산책 풍경이라도 찍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불안감에 정신없이 휘둘리고 있었다. 몸은 쉬고 있었지만 머리는 쉴새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위해서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쉴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완벽하게 세팅해두었다. 아침 루틴, 요일 루틴, 저녁 루틴, 내가 정해둔 틀에 맞춰서 재깍재깍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됐다. 타고난 성실함 덕분에 정해진 스케줄대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 빵 하고 터지는 콘텐츠는 없었지만 구독자수도 조회수도 차근차근 성실하게 늘었다. 이대로 시간의 힘을 믿고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좀처럼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일단 내가 쓴 글이 재미없었다.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못해 숨이 찬 나를 똑 닮아있었다. 보는 사람을 숨차게 아니 숨막히게 죄어오는 문체, 칼각으로 접힌 빨래 같은 문체, 따라가고 싶지만 거리를 좁히지 않고 아득하게 멀어지는 뒷모습같은 문체였다.



고유한 문체를 지니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문체는 작가 자신이다.

<글을 쓰며 생각한 것들>, 임경선




글을 쓰는 사람은 글쓰는 순간에서 보상을 받는다. 머릿속에 있는 걸 활자로 옮겨내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낀다. 그 도파민에 중독되어 안정적인 월급까지 버리고 회사를 나와 놓고선 나는 회사 일 하듯이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다.



image.png ※ 쉬는 장면도 기어이 찍어 버린... 지독한 크리에이터입니다 �




시간 낭비도

배워야 하는 거였어



그동안 나는 ‘시간 낭비’를 ‘일하지 않는 시간’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일을 안 하고 밖에 나가면 쉬는 거니까 시간 낭비 미션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 어떤 순간이든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 내 안의 압박감을 떨쳐버리지 않고는 도저히 휴식도 시간 낭비도 할 수 없었다.



시간 낭비란 결과에서 자유로워지는 거다. 시간을 낭비하는 과정마저 유튜브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 느끼는 걸 글로 쓰지 않아도 된다고, 이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허용해줘야 했다.



시간 낭비도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배워야 하는 능력이었다. 그동안 내 삶에는 시간 낭비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시간 기록을 주제로 강의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능력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힘들게 한 거다.




image.png ※ 스콘 접시 위에 내려앉은 벚꽃잎 �




딴짓 vs 휴식

놀이 vs 일



“시계부를 보니까 너무 모범적으로 사시는데 딴짓은 안 하세요?”



구글 캘린더 시간 기록법 강연에서 받은 질문이다. 강연이 끝나고 주말 내내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딴짓이란 도대체 뭘까 하염없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왜 그분은 놀이나 휴식이 아닌 ‘딴짓’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놀이는 하고 나면 즐겁고 휴식은 하고 나면 편안하다. 딴짓은 하고 나면 즐겁거나 편안하기는 커녕 찜찜하다. 딴짓을 한 내가 싫어지기까지 한다. 놀이와 휴식은 내가 적극적으로 선택했다는 감각이 있다. 딴짓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다. 퇴근 후 피곤하고 지치고 억울해서 이거라도 안 하면 못 견디겠다는 마음으로 유튜브를 열어 숏츠를 보는 것처럼.



딴짓은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통제권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이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나는 퇴근 후 멍하니 유튜브를 보다가 잠들곤 했다. 회사에서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고 집에 와서도 기력이 없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 유튜브를 보는 거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나는 딴짓을 끊을 수 있었다. 버는 돈이 줄고 생활이 불안정해졌지만 대신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지 선택할 자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있는 게 많아졌고 굳이 딴짓으로 통제력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딴짓의 자리에 휴식을 넣었다. 운동, 베이킹, 독서는 내게 생산적인 활동이 아닌 휴식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는 놀이이기도 했다. 그런데 휴식과 놀이의 시간마저 결과물로 환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소진감과 무력감이 시작됐던 거다.



딴짓과 휴식・놀이의 차이

딴짓: 하고 나면 기분이 안 좋다

휴식・놀이: 하고 나면 기분이 좋다



일과 휴식・놀이의 차이

일: 결과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휴식・놀이: 결과물이 없어도 된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분명해졌다. 나에게 시간 낭비란 “결과에서 자유로운 몰입”이었다. 일을 안 한다고 해서 무조건 시간 낭비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실 난 이걸 알고 있었다. 작년 7월에 쓴 뉴스레터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다. 이래서 내가 쓴 글을 주기적으로 다시 봐줘야 한다.



image.png 7월 9일 뉴스레터 <노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에게>




회사를 다닐때 읽고 쓰는 활동은 목적과 성과를 잊고 그 자체를 즐기던 ‘놀이’였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 매 순간이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느라, 놀이하듯 했던 읽고 쓰는 활동을 철저히 ‘일’로 하고 있었다.



일 모드에서는 뇌가 자유롭게 생각을 확장하지 못한다. 목적과 성과가 명확하기에 다른 길로 생각이 뻗어나갈 여지가 없는 거다. 일상을 일 모드로만 채우면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높은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후의 처방

: 아침 시간을 날리자



최후의 처방을 내리기로 했다.

“아침 시간을 그냥 시원하게 날려버리자.”



오늘 아침, 10시간을 늘어지게 자고 8시반에 일어나 아침 루틴을 마치고 집 앞 카페로 향했다. 커피와 스콘을 주문하고 읽고 싶었던 책을 펼쳤다.



규칙을 정했다.

“햇살을 가득 받으며 책을 읽되 절대 이 책에서 글감을 찾으려 하지 않기.”



그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다가 한 시간쯤 지났을까. 결국 글감을 찾아 버렸다. 시간 낭비에 또 실패해 버린 거다. “오 이거야! 이제 글을 쓰러 가보자.” 속으로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실패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에 돌아와 글을 쓰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카페에 갈 여유를 스스로 허용하지 않고 바로 서재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면 오늘의 글감을 찾지 못했을 거다. 어쩔 수 없이 온 몸에 힘을 꽉 주고 ‘OO 기록법’ 컨셉의 글을 의무감에 한껏 휩싸여 썼을 거다. 지금 이 글은 그보다 한결 편안하게 쓰고 있다. 시간을 시원하게 비우고 나니 오히려 재밌는 글감이 나를 제발로 찾아왔다.



모든 시간을 의미로 채워버리면, 진짜 의미 있는 시간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없다.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있어야 의미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다. 무의미를 조금도 견디지 못하는 나는 그 대가로 의미를 잊어버리는 벌을 받았던 거다.



이번달 나의 새로운 미션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마침 카페 테라스를 즐길 수 있는 봄이 되었으니 매일 아침 햇살을 잔뜩 받으며 한 시간씩 책을 읽고 음악을 듣자. 또 뭔가를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훌훌 던져버리고, 이 시간이 지나고 아무런 결과물이 없어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 주자. 어떠한 목적도 결과도 없이 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것, 그게 지금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열심 아닐까.



image.png ※ 벚꽃을 손에 잡았어요!!!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란 이런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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