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어도 행복하지 못한 나란 인간에 대하여
이 글은 뉴스레터 <함께하는 독학클럽> 3월 25일 콘텐츠입니다.
►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hamdok.stibee.com/
작년 가을부터 올해 3월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내가 꿈꾸던 ‘돈을 버는 구조’를 완성하는 시점이 3월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1월, 2월, 3월 모두 목표 대비 두 배 넘는 돈을 벌었다.
매일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돈이 되는 일을 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주말에는 책을 읽고 쿠키를 구웠다. 계절이 바뀌어 봄이 되었고 따뜻한 햇살이 집안으로 길게 들어왔다.
나는 행복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행복과 거리가 먼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힘이 빠지고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뤘다. ‘이제 됐다’는 안도감 대신 ‘이게 다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행복을 누려본 경험이 없었다. 행복해질 거라고 기대할 때 오히려 행복했다. 여행을 가기 전, 합격 통보를 받고 출근을 하기 전, 돈 버는 구조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 나는 행복했다. 그러나 막상 손에 쥔 행복은 금세 시들해졌다. 이번에는 다를 줄 알았다. 이 지겨운 반복을 끊고 싶었다. 이번에도 행복해질 수 없다면 나는 영영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가 움찔하고 손가락이 멈췄다. 정지우 작가님의 신간 소식이었다. 축하해야 하는 소식인데 가슴이 찌릿했다. 나는 언제쯤 다음 책을 낼 수 있을까.
미뤄두었던 진짜 꿈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꿈꾸던 일상은 ‘적당히 돈 벌면서 글 쓰는 삶’이 아니었다. ‘꾸준히 책을 쓰는 삶’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출판사와 독자가 기다려주는 매력적인 작가로서 꾸준히 책을 내는 삶이다. 독립 출판도 잠깐 생각했지만 편집자와 책을 만든 두 번의 경험이 너무 좋았다.
글이라면 지금도 넘치게 쓰고 있다. 매주 뉴스레터 마감이 돌아오고 ‘회고 글쓰기 클럽’에서 멤버들의 글을 읽고 장문의 피드백을 쓴다. 글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강의를 기획한다.
누가 봐도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책 쓰는 삶’이었던 거다. 확실한 행복을 손에 쥐고도 나는 만족할 줄을 몰랐다.
올해를 준비하며 그동안 하던 일들을 가지치기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만 당장 돈이 안 되는 일은 일단 쳐내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책 내기’였다.
지금은 돈 버는 구조를 먼저 만들 때라고, 수익 구조가 안정화되면 그때 다시 출판사에 투고하면 된다고 나를 달랬다. 생존 전략이라고 믿었던 그 선택이 나를 무력하게 만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책은 내게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던 거다. 책은 내 정체성의 뿌리였다. 아무리 멀리 뛰어나가도 결국 다시 돌아오게 하는 구심점이었다. 기록 정리 클럽, 회고 글쓰기 클럽, 노션 템플릿, 뉴스레터 모두 책을 쓰기 위해 내 일상을 정돈하고 글로 쌓는 과정에서 나온 중간 결과물이었다.
중간 결과물이 잘 굴러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눌러두었던 목소리가 삐져나왔다. “그래서 뭐? 이제 회사원만큼 돈 벌게 되어서 뭐? 너 아직 새 책 계약도 못했잖아.” 하… 이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았는데.
교육 사업으로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구축하는 건 1단계였다. 1단계 허들을 넘자마자 2단계, 3단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월 3~5백을 벌며 글 쓰는 삶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을 뿐이다.
1단계를 넘어 2단계로 진입했으니 이제 뭘 해야 할까. 기다리는 일이다. 집착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서둘러서 될 일이었으면 진작에 됐을 거다. 당장 다음 책을 계약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적극적으로 책과 글의 주변을 맴도는 거다.이번 달 회고 글쓰기 클럽을 하면서 멤버들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남기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글 쓰고, 정리하고, 콘텐츠로 다듬는 과정 자체가 내게 영감과 에너지를 준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니라 ‘작가 제갈명’의 내공을 키우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매일 아침 2시간씩 영어와 일본어 공부를 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번역 업계에서 관행대로 일할 생각은 없지만 어떤 식으로라도 번역을 하고 싶다. 다른 언어를 책으로 만드는 번역이라는 일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AI가 번역을 다 해주더라도,
언젠가 제갈명이 번역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꾸준히 공부한다.
내일 당장 출간 계약서를 쓸 수 없다고 해서 실망하긴 이르다. 빨리 이 다음 문이 열리면 좋겠지만 지금 내게 열린 문은 노션 기록 정리 클럽과 회고 글쓰기 클럽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다음 문을 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때까지 착실하게 시간을 쌓으면 꾸준히 책을 내는 작가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궤도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중심에 가까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쓸까 말까 고민하던 이 글을 쓰면서 내 무력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게 되었다. 돈과 꿈 사이 균형을 잡느라 미뤄두었던 꿈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서둘러서는 안 된다. 성급하게 다시 꿈만 좇았다간 돈을 잃고 흔들릴 거다. 일단 돈이라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 또다시 사로잡힐 것이다.
균형감을 길러야 한다. 나는 꿈만으로도 돈만으로도 살 수 없는 애매한 모순 덩어리니까.
내가 지켜야 할 바운더리를 조정할 때가 왔다.
‘꿈과 돈의 균형을 잃지 않는 것.’
올해 나는 좋아하는 일로만 돈을 벌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었다. 그걸 충분히 인정해 주자. 먼 미래만 바라보며 내 손에 쥔 소중한 행복을 무시하지 말자. 그러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지금을 누려야 한다. 필사적으로 현재를 살아야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작가 제갈명의 발판이 되어줄 거라고 다시 한번 믿어 주자. 아님 뭐, 너 아니면 누가 널 믿어주겠냐고.
이 글은 뉴스레터 <함께하는 독학클럽> 3월 25일 콘텐츠입니다.
►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hamdok.stib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