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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Aug 25. 2015

엽서 한 장, 그대에게 보낸다.

여행을 로맨틱하게 만들었던 신의 한 수

벌써 1년이 지났구나. 회사를 때려 치우고 워홀도 좌절했던 그때. 구세주 같았던 퇴직금 덕분에 쉬이 날아갈 수 있었던 유럽여행이 벌써 1년이 지났다. 40여 일간의 여행은 1년이 지난 지금도 기록되고 있는 포스트와 틈만 나면 여행채널을 쳐다보는 나에게 깊이 박혀 있다. 여행은 짧고 추억은 길다.

혼자였어도 둘이 되었던 시간이 있으며 삼삼오오 로마 바티칸 시국을 걸었던 시간도 있었다. 

열흘 정도 동행했던 죽마고우와의 시간 속에서도 내가 놓치지 않고 하려 했던 건 그대에게 보내는 엽서였다.


나이 서른이 넘어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려야 할 판국에 훌쩍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고 회사를 때려 친 나를 군말 없이 지켜봐 준 사람. 워홀이 좌절되고 유럽여행 갈 거라면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며 혼자  설레어하던 나를 무표정으로 바라보던 사람. 그 사람에게 보내는 엽서를 빼먹지 않으려고 했다.

여행을 가기 전부터 무슨 연인 간의 뜨거운 이벤트인 마냥 준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파리에 머물려 예쁜 엽서 한 장 사니, 그대 생각이 났고 펜을 들었다. 그렇게 스위스,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아 등 각국의 엽서를 사고 우표를 사서 부치게 된 것이다.


각 나라별로 엽서, 우표를 사면서 풍경을 더 한 번 눈여겨 볼 수 있었고, 엽서에 나온 장소에 나는 머물렀던가를 생각해볼 수 있었으며 각 나라의 우표도 가질 수 있는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대합실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쓰기도 하고 굶주린 배를 달래며 핫도그 하나 사 들고 강가 벤치에서 쓰기도 했었다. 길을 헤매 너무 많이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숙소에서 나의 불빛으로 잠들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무시해가며 쓰기도 했다.


무척 로맨틱하다는 생각은 그 곳에서 뿐이었나 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엽서는 계속 집으로 날아들었고 낯이 뜨거웠다. 보고 싶다는 내용으로 시작하거나 이 곳을 함께 왔으면 좋겠다 혹은 함께 오자는 말들로 끝나는 엽서의 내용은 일기였다.

함께 만들어가는 일기가 아니니 얼마나 지루했을까. 혼자 유럽의 풍경 속에서 로맨틱했구나 싶다.


심지어 아직까지 그가 뜯어보지 않은 엽서도 있다. 나에게 미션처럼 그리고 하루를 정리하면서 빼 먹지 않고 당신을 생각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써 내려 갔었던 것들인데. 서운할 수 있었는데 이제 돌이켜 생각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라도 부러움이 먼저이지 않을까.


여행을 떠나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된 데에는 엽서가 큰 몫을 했다. 걷고 걷다 보니 지칠 수도 있을 법한 여행에서 잠시 생각도 정리하고 감정도 추스르는 시간은 여행 중에도 여행이 끝나고도 달달하게 남아 있다. 비록 그 내용이 받는 이에는 남의 일기를 들춰보거나 부러운 감정만을 줄지라도 말이다.


지금 여행 중이라면 언제고 여행을 갈 거라면 한 번쯤 생각나는 누군가에게 엽서를 한 장 보내보는 게 어떨까.


누군가에게는 그 곳을 여행할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여행지에서마저 날 생각해준다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여행만으로도 벅찬 시간을 조금 로맨틱하게 만들어 볼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당신을 생각하며 무사하다는 내용을 오늘은 이 글을 통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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