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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미 Jun 18. 2019

우리는 이 비극에서
자유로운가

[영화] 기생충, PARASITE, 2019

감독 : 봉준호

출연 : 송강호(기택), 이선균(동익), 조여정(연교), 최우식(기우), 박소담(기정), 장혜진(충숙), 이정은(문광), 박명훈(근세)



- 2019 황금 칸 종려상 수상





영화관을 나오면서부터 스산하고 쓸쓸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필 날도 흐렸고 옷을 적시는지 안 적시는지 알 수 없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영화 전단지에는 봉준호 감독의 말이 이렇게 쓰여 있다. 


"<기생충>은 같이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거기서 우러나오는 웃음과 공포와 슬픔에 관한 희비극으로, 관객들은 완전히 다른 두 가족에게 펼쳐지는 예측 불허한 상황들을 지켜보게 된다. 관람 후에 갖가지 생각이 다 드는 영화이길 바란다." 


정말 갖가지 생각이 다 든다. 








영화는 스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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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시작은 반지하 방에서 보이는 창가의 풍경이다. 빛이라곤 볼 수가 없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집에 빛이라곤 전등불이 전부다. 그렇지만 창이 있다. 내다볼 수는 있다. 

영화는 짧은 듯 하지만 모든 대사와 장면을 곱씹어야 할 만큼 적나라하다. 파헤치자면 끝이 없고, 결국 하나하나 기억하고 하나하나 되새기면 신물이 날 만큼 몸이 아플 지경이다. 


    많은 리뷰에서 주로 다룬 계층과 계급, 부와 빈부에 관한 내용은 따로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봉테일이라고 할 만큼 많은 디테일을 통해 관객들의 쏟아지는 리뷰와 해석, 상징 등에 대해서도 크게 언급하지 않았음을 말씀드립니다. (이러한 해석 혹은 상징들에 대한 풀이는 따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네이버> 기생충 스틸 이미지 


계획과 무계획


    '계획'이 있는 아들 기우는 학력 위조를 통해 고액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박사장네 딸인 다혜의 영어 과외를 맡게 된 장남 기우, 박사장네 막내아들 다송의 미술심리치료를 맡은 동생 기정, 박사장과 아내 연교의 운전기사 아빠 기태, 박 사장 집 가정부가 된 엄마 충숙까지 가족 전부가 박사장 집에 취직하게 된다. 시작은 아들 기우가, 그리고 기정이 합세하면서 가족 일가는 '계획'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모두 박사장 집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우리는 사실 잘 알고 있다. 그 '계획'이라는 것이 뜻대로 이뤄졌다면 세상 불행한 일이 있을까 말이다. 

모두가 백수였던 이들은 누군가를 백수로 만들고 자축하는 사이 뜻하지 않은 상황에 놓인다. 전 가정부였던 문광이 나타나면서. 


<네이버> 기생충 스틸 이미지

    나는 영화 내내 이 가족을 응원했다. 비가 억수로 퍼붓던 날 캠핑을 간 박사장 네 일가족이 돌아오면 어쩌려고 저렇게 버젓이 큰 저택 거실에 앉아 고급 양주를 다 퍼마시는 걸까. 저것도 계획이라면 저것은 분명 잘못된 계획이다. 그냥 밖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먹든가, 아님 잘 차려입고 나가 번 돈으로 스테이크를 썰 일이지. 이런 생각은 '제발 들키지 마라'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중, 문광이 나타나고 기우는 말한다. "이건 계획에 없던 건데" 

계획에 없던 일은 사건을 만든다. 문광 역시 비밀이 있었고 남궁현자의 큰 저택 아래 만들어 놓은 지하 벙커에 그의 남편을 숨기고 있었다. 기택과 마찬가지로 사업이 망하고 사채빚에 쫓기며 숨어 있던 것. 가끔 박사장 네 일가족이 나가면 햇볕이 드는 저택 거실에서, 혹은 다른 곳곳의 공간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문광이 '같은 불우이웃끼리 봐달라'라고 충숙에서 돈을 주며 '일주일에 한 번만 남편에게 먹을 것을 주면 안 되겠냐'고 하지만 이미 충숙은 자신들의 거짓과 위선 속에서 거절하고 만다. 그 관계는 일순간에 바뀐다. 그들 가족이 전부 문광에게 들키면서 말이다.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없던 계획 안에서 기택네 가족은 모든 걸 숨기는 것에 몰두한다. 나의 예상처럼 아니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던 박사장 네 일가가 폭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일단락되는 듯 하지만 그것은 더 큰 비극을 낳는다. 


    기택은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말한다. 폭우로 인해 가족이 전부 체육관 신세를 지고 있는 가운데 아들 기우가 박사장 집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아빠 기택에게 계획을 묻는다. 하지만 기택은 '계획이 없어야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폭우, '자연재해로 인해 우리가 여기서 자게 될 거라고는 아무도 몰랐던 것 아니냐'라고 말한다.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고.' 


하지만 계획이 있어야 했던 기우는 민혁으로부터 받은 수석을 들고 저택의 지하로 내려간다. 기우의 계획은 무엇이었을까. 그 돌로 지하에 있는 문광과 근세를 살해하려던 걸까. 하지만 기우의 캐릭터는 그렇게까지 변모하는 모습으로 예측되진 않는다. 허세가 있고 술술 입에선 거짓이 나오지만 자신이 이곳에, 이 저택에 '잘 어울리냐'고 묻는 그는 이 곳에 머물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키스에도 집중 못할 만큼. 나는 수석을 그들에게 주러 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그 돌은 다른 형태로 기우를 가격하고 기우의 품에 다시 온다. 


계획은 이성, 무계획은 감정이라는 비약적 논리를 대고 본다면 기택의 행동은 무계획이라는 그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냄새에 관한 박사장의 말과 아들 다송의 말 때문에 자신은 전혀 모르는 자신의 냄새가 무엇인지 킁킁 대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계획보다는 기분 나쁨. 대체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야 라는 울분으로 바뀐다. '냄새가 선을 넘고, 지하철 타는 사람들에게서 나며 무말랭이 같은, 행주 빤 냄새 같다'는 그 말이 기택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나, 그런 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던 걸까. 결국 그는 지하에서 올라온 근세에게서 나는 냄새에 코를 막아버리는 박사장을 죽이고 만다. 이 감정적인 행동의 결말은 이미 박사장의 아내 연교에게 문광의 활동성 결핵을 말할 때 나타난다. 아들 기우 앞에서 연기를 하던 기택의 감정이 밑도 끝도 없이 치솟자, 계획을 짠 아들 기우가 말한다. '감정을 좀 누르라고.' 


계획과 무계획에 대한 논쟁은 현실과 비현실, 비관 혹은 염세주의와 낙천주의 등과 같이 세상을 보는 시선, 태도에 대한 관점일 수 있다. 계층, 계급에 대한 논란을 살짝 제쳐두고라도 나는 과연 어떤 삶의 태도로 살고 있는지를 곱씹어 보게 된다. 계획이 있든, 무계획이든. 원하는 대로 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영화를 볼 때 그리고 결국 기우가 아버지를 지하에서 걸어 올라오게 하려고 돈을 많이 벌어 그 저택을 사겠다는 허무맹랑해 보이는 계획 역시 되짚어 보게 된다. 정말 허무맹랑한 걸까. 대학 졸업장도 없고 학력위조로 집행유예를 받았으며 사기 전력을 가진 그가. 한국사회에서라면 그 계획이 허무맹랑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세상 모든 비극


    영화는 나란 사람이 참 줏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만든다. 기택네 가족이 영화 중반까지 들키지 않기를 응원하긴 했지만, 순간순간 어떤 장면에선 과연 이들의 행동과 태도를 응원할 수 있는가를 묻게도 만들었다. 


<네이버> 기생충 스틸 이미지 좌) 기택네 가족(기택, 충숙, 기우, 기정) / 우) 박사장네 가족(박사장, 연교, 다혜, 다송(사진에는 없음)


    영화에 등장하는 세 가족(기택네, 박사장 네, 문광네)은 결국 모두 비극을 맞이한다. 모든 집이 가족을 잃었다. 살아 있든 살아 있지 않든.  영화는 내내 두 집의 차이를 보여주고 극명하게 대립시키는 가운데 문광과 근세를 통해 비극을 만들어낸다. 딸 기정은 지하실에 있던 근세에게 죽고, 근세와 문광은 충숙 언니라고 부르며 착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충숙에게 죽고, 박사장은 기택에게 죽는다. 

영화를 보면서 이 순간까지 왔을 때, 나는 어느 가족도 어떤 사람도 응원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어떠한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근세가 기정을 죽여서 충숙은 근세를 죽였지만 집행유예를 받았다. 근세는 노숙인으로 뉴스에 나가며 묻지마 살인마가 되었고 그가 기우를 가격하고 기정을 죽인 것에 대해 충숙의 정당방위가 인정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사채 빚을 지고 무기력한 남편을 어떻게든 먹여 살리던 문광이 죽자 그 일가족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근세의 상태를. 

물론 이해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묻지마 살인이라는 것은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결국 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고자 함일 테니 말이다. 갖가지 모순과 누구도 응원할 수 없게 만드는 형태로 말이다. 결국 전부 비극을 맞이한 모습으로. 

우리 모두 때로는 보이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비극 속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 건 아닐까. 그리고 그 비극의 씨앗은. 돈, 돈을 통해 비춰 볼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


    이 세 가족은 각기 상황에서 다른 이중적인 모습 또한 드러낸다. 충숙이 문광으로부터 나는 불우이웃이 아니라고 하는 지점, 박사장이 윤 기사와 카섹스를 한 여자는 마약을 했을 거라고 하지만 결국 아내인 연교에게 차에서 나온 팬티가 있다면 좋겠다. 연교는 그럼 마약을 사달라는 대사에서, 일가족 사기꾼이라며 기택네 가족을 협박하던 문광과 근세 부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서로 어떤 처지도 어떤 관계도 자신의 처지와 관계가 될 수 있음을 망각하고 살고 있다는 이중성. 사회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를 꼬집어 버리는 상황들까지.



영화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덕분에 많은 고민거리를 안게 되었다. 영화적 지식이나 촬영기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상징적인 장면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모든 장면이었고 모든 대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찬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적나라하게 현실을 잘 담았다. 극명한 대비는 가족의 삶의 형태로, 희비는 대사와 사건들로, 그다음은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감독이 말했던 관람 후 '갖가지 생각이 다 들길 바란다'는 말은 가히 성공적이다. 수도 없는 리뷰가 나오는 것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나 역시 여러 가지 화두로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이미 많은 내용들이 나와 있기에 이 정도로 함축하려고 한다. 아마 영화관에서 나와 몸이 아플 지경으로 힘든 감정을 느낀 이유는 감독이 이 이야기를 담고자 했을 때 들여다본 그 무엇과 같지 않을까. 







아래와 같은 키워드들로 영화를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남겨봅니다. 


상하무빙, pretend, 성북동, 방역소독, 학력위조, 고액과외, 봉준호 감독의 슬로우모션장면들, 연극 같은 영화, 기생충, 숙주, 꼽등이, 반지하, 돈, 지하, 지상, 계단, 인디언, 모스부호, 맥주, 북한 말투, 콘돔, 폭우, 수목장, 수석, 짜파구리, 와이파이, iptime, 수학능력시험, 대만 카스테라,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미제텐트, 마약, 팬티 등등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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