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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Sep 30. 2015

"넌 아직도 스위스구나"

1년 하고도 2달이 지나가는 데도 우리는 아직 유럽이네(1)


오랜만에 여행에 함께 했던 나의 죽마고우를 만났다.

녀석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아직도 스위스다. 우리가 그곳을 다녀온 지 벌써 1년 하고도 2달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녀석에게 "넌 아직도 스위스냐?" 하고 말했더니 녀석이 말했다.

"진짜 그러네."


그 여행이 녀석에게 주었던 추억이 그랬던 거다. 오랫동안  그 사진에서 떠날 수 없을 만큼.


우리는 그래서인지 만날 때마다 여행 이야기다.


유럽여행을 준비하면서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유럽여행 준비 소식을 알렸다. 왜 가는지, 어쩌다 가게 되었는지는 거두절미하고 그냥 일단 '나는 간다'였다.

한 녀석은 자신의 결혼식 전에 가지 말라달라는 부탁이었다. 몇 안 되는 십여 년 된 친구 녀석의 부탁이 고민스러웠다.  퇴직하고 그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내게 한 달 정도 여행을 미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행 자금이 점점 빠듯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녀석은 내 결혼에 네가 안 오면 안 된다는 말을 굳이 남기며 신혼여행을 파리에서 그리스로 가니 파리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는 말을 두고두고 들을 것 같은 생각에 결국 나의 여행을 한 달 미루면서 애초에 꿈꾸던 생일을 파리에서 맞이하는 걸로 결정 난 것이다.

그렇게 파리에 갔고 신혼부부와 함께 결혼과 나의 생일을 축하했다. 그제야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스위스, 스위스 노래를 부르던 녀석도 동행을 자처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열흘을  함께하기로 한 것이고 난 좋았다. 많은 도시들의 일정을 다 짜기에 내겐 시간도 부족했고 힘도 들었기에 녀석이 그 두 도시의 일정을 짜 주면 난 그저 가자는 대로 갈 셈이었다. 


스위스 바젤에서 남들과 달리 이틀을 머물러 루체른으로 간 나는 그곳에서 녀석을 기다렸다. 이미 파리 8일, 스트라스부르 2일, 바젤 2일을 거친 느긋한 나의 여행에 녀석은 분명 활력소가 되어줄 거라 생각했다. 녀석이 하라는 대로 티켓을 끊고 근무 중인 녀석을 들쑤셔 가며 숙소를 확인하고 나는 미리 가 기다렸다.

그 해 7월 그때,  루체른에서 루체르너 페스트(Luzerner  Fest)라는 뮤직 페스티벌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공연도 보고 페스티벌 음식도 먹으며 여유롭게 기다렸다. 녀석이 예약한 숙소가 밤 11시 이후에는 출입이 불가능한데 녀석은 취리히에 내려 기차 타고 오기에 빠듯한 시간이었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내 친구가 밤 11시쯤 온다. 내게 문을 열어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직원에게 말했고 친절히 알려준 덕에 나는 문 앞에서 밥을 기다리는 길고양이 마냥 앉아 있었다. 루체르너의 하이라이트인 카펠교 불꽃놀이를 아쉽게도 보지 못하고 멀리서 소리와 나무 사이로 번쩍 뛰어오르는 빛을 보면서 말이다. 비도 오고 있었고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녀석이 오지 않아 걱정이 앞설 때쯤, 마침 도착한 그녀를 보고 기뻤다. 다행이다.



루체르너 페스트(Luzerner Fest)를 혼자 감상한 것이 미안하면서도 아쉬웠던 나는 녀석이 오기 몇 시간 전 비가 오는 바람에 다시 숙소로 돌아오면서 저녁거리를 고민했다. 회사가 끝나고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녀석이 굶고 오는 것이 맘에 걸려 파리에서부터 사온 와인과 전 날 바젤 숙소 아침식사에서 주워 온 형형색색의 삶은 달걀을 꺼내놓고 바젤에서 만난 스님이 전해 준 초콜릿과 페스티벌에서 나의 손 발을 묶어버릴  뻔했던 통닭 한 마리를 준비했다. 대단한 만찬은 아니었지만 그 날 우리는 와인 한 병이 아쉬울 정도였다.



녀석은 취리히에 내려 루체른으로 오는 기차를 탔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없었다고 한다. 유럽 열차는 기차 안에서 충전할 수 있다는 기본 정보를 가지고 있던 녀석은 맘 놓고 기차를 탔지만 2등석인 자신의 자리에선 충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1등석에서만 충전할 수 있었다는데 그리로 가서 하지 그랬냐는 말에....

"첫날이었잖아.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 1등석에 가려면 무언가 패스가 있어야 할 것 같았거든."

길치인 녀석은 비까지 오는 루체른 역에 내려서 11시가 다 되도록 기다리고 있을 나 때문에 루체른에 올 때쯤부터 창 밖으로 보이는 불꽃놀이에 집중할 수 없었나 보더라. 그리고 지도를 수없이 봐왔던 기억으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간신히 찾아왔다고. 


이튿날, 루체른은 비가 왔고 리기산 일정을 짠 그녀는 첫날부터 실망감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비만 온 것이 아니라 안개가 자욱해서 리기산 전경을 도무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 배에서 와인이나 마시자며 위로했다. 하지만 기우는 아니었다. 이후 우리의 스위스 일정은 그녀가 아직도 프로필 사진을 바꾸지 못할 만큼 끝내주는 날씨였고 곳곳이 그림 같았으며 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풍경들 속에 우리가 있었다.


나 역시 그때의 여행을 수천 장의 사진을 보며 추억하듯 그녀도 그때의 추억을 벗 삼아 다시 또 여행을 꿈꾼다. 그렇게 우리는 훗날 더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이때의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할 수 있으리라.

혼자였던 여행에서 그녀 덕분에, 그리고 여행에 대한 담소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이제야 아주 크고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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