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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Aug 06. 2015

괜찮아, 떠나

언제나 그렇듯 제주도는 그와 함께

떠나기 전부터 많은 것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 가는 비용, 가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기간이  짧을수록 이러한 고민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한다. 


김피디와 세 번째 제주 여행을 준비했다. 미리 스케줄을 준비할 수 없는 그의 일정은 일주일,  그중 하루는 집에서 푹 쉬고 싶은 날. 모든 것이 김피디의 일정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여행에서만큼은 내 일정대로 움직이겠다는 그에게 내 속내를 드러내 보이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아무 곳이나 가고 싶었다. 


제주는 사파리와 같은 야생의 광활한 대지만 없을 뿐 모든 것이 갖춰진 곳이다. 심지어 최근엔 다양한 카페, 먹거리, 이색적인 것이 가득 채워지고 있으니 그저 가기만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페에 앉아 서너 시간 이상 앉아 있고 싶었고 태국에서 애써 배운 스노우쿨링도 지칠 만큼 해보고 싶었다. 아주 이기적인 마음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MANGGU / iphone6 / 김포공항

하지만 연인 사이에서 여행이라는 것이 홀로 다녀오는 것과는 달리 무언가 추억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의미 부여가 시작됐다.

나에게 제주란 일본보다 먼 곳이었고 
학창시절 전부 경주로만 수학여행을 갔던 나에겐 미지의 곳이었다.

뻥 뚫린 도로 한 켠에 바다 전경이 펼쳐지고 공항에서 내리면 야자수가 받기며 뚜껑이 열리는 멋진 차를 타고 썡다니 달리는 상상. 화면 속 제주에 익숙한 그러한 풍경들만을 상상해왔다.

첫 번째 제주는  삼사 년 전 2월 어느 날이었고 출발 전 김피디와 나는 맥도널드에서 버거를 먹다 말고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싸웠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왜 기억이 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알고 보면 연인 간에 싸움이라는 게 늘 이런 식인 거 같다. 다툼을 하는 순간에는 지난 다툼까지고 깨알같이 다 기억나는데 곧잘 이렇게 잊어버리고 마니 참 부질없는 짓 중에 하나일지도.

제주는 눈과 비, 바람으로 섬 점체가 고립되어 있는 정도였다. 아무 준비도 없이 간 우리는 공항에 내려 차를 빌리고 숙소를 알아봤다. 아마 그때 이 여행은 고생 문이 열린  듯했다. 제주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나는 결국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적당한 가격대의 골프 리조트를 빌렸다. 누가 한 겨울에 한라산 중턱의 골프 리조트를 빌린단 말인가. 리조트는 한가했다. 그럴  수밖에, 아무도 이 곳으로 오지 않으니 말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숙소를 예약한 나는 맘이 놓여 운전대를 김피디와 교대했고 곯아 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그는 한라산 중턱까지 눈길에 미끄러지며 왔다고 한다. 아직 살아 세 번 째 여름의 제주를 보러 가는 거 보니 당시, 사랑이 조금은 뜨거웠던 것 같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든다. 우리는 첫 날 밤 마주 앉아 어디 갈지를 정하며 김피디가 1년여 간 제주에서 군복무를 했다는 사실과 제주의 날씨를 기대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진은 모두 얼굴이 찌그러질 만큼의 바람으로 건질 것이 없었으며 추위, 바람, 눈 덕분에 바다는 차에서 내다보는 정도였다. 그래도 좋았다고  기억되는 것 역시나 사랑일 테다.

러브랜드, 초콜릿 박물관, 생각의 정원 등 바람과 눈을 피할 수 있고 낮동안의  제주뿐 아니라 밤에도 즐길 수 있는 곳들을 찾아야 했고 우리는 제주에 생긴 새로운 건물 속에서 속으로 다녔다. 다행히 싸돌아 다닐 수 있는 날씨가 있어 승마도 한 날도 있다. 그러니 첫날 버린 하루가 아까워 하루 더 머물렀겠지. 그렇게 나의 인생 첫 번 째 제주는 끝났다. 


두 번 째 제주는 김피디의 지인 도움으로 숙박을  제공받은 채로 떠났다. 가을의 제주, 제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나 보다. 함께는 아니지만 한 끼 식사를 같이 한 김피디의 동료들은 우리에게 다신 제주에 오지 않을 것처럼 다니냐고  신기해할 정도였다. 숙소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어디 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니 말이다.

뭐라 형언하기 힘든 정도의 날씨였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인데 밑줄 정도 그어 놓은 수준이랄까.

한라산을 등반했고 우도를 갔으며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싸돌아 다녔다. 풍경이 자꾸 걸음을 붙잡는 시간이었다. 이번엔 무언가 준비해보겠다던 김피디가 잠수함을 준비해 바다 속까지 깊게 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아쉬운 건 둘째 치고 너무나도 피곤했다. 하지만 흥이 넘쳐 흘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마지막 날이 엄청 속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날의 제주는 3년 째 우리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여러 날들 중 베스트다.


세 번째 제주는 슬프다. 아마 나 혼자 슬플 거다. 그리고 김피디는 힘들었으리라. 



가기 전부터 날씨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세 번째 여름의 제주 날씨는 비란다.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제주에 도착해서 후덥지근한 날씨에 우리는 일단 웃었다.

그리곤 냅다 해안도로를 달리고 세화해변에서 멈춰 섰다. 세화항구  한쪽에 하얗게 빛나는 등대가 드디어 우리가 어딘가를 떠나왔다는 것을 알려주듯 서 있다. 차에서 내려 사진도 찍고 깔깔 거리며 웃기도 했다. 바람이 시원했고 바다색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렀다. 여름이었다. 여름!

이런 날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슬프고 김피디가 힘들었던 이유는 이튿날부터  오전마다 병원에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다. 여행 전엔 설레서 느끼지 못했던 통증과 발진이 여행지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 대상포진이었다. 

여행지에서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 일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일본 여행에서 배가 아파 병원신세를 졌고, 여름 날 일본에선 일사병으로 숙소 신세였다.

태국에선 패러세일링을 타다 추락해 팔 안 쪽이 다 멍이 든 상태이기도 했다. 그래도 태국에선 나았다. 속병이 아니니 말이다. 제주에서 대상포진 판정을 받다니.

물을 무서워하는 내가 어렵게 태국에서 배워 온 스노우쿨링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바다에 담글 수 있는 나의 신체는 딱 엉덩이 밑 정도가 전부였다. 대상포진이 옆구리와 허리에 번져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열심히 돌아다녔다. 사진을 많이 찍고 물놀이를 하는 김피디를 쳐다보면서 잠시 상념에 잠기면서도 여행은 즐거웠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더 아프고 내가 왜 대상포진에 걸렸을까를 고민하면서 우울하게 지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여행의 힘이란 그렇다. 아파도 돌아다닐 수만 있다면
뭐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해준다.

 다행히 나이가 젊고(사실 어리고라고 쓰고 싶지만....) 크게 고통스럽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인 게 아마 제대로 된 사실일 거다. 물론 김피디는 운전을 전부  도맡아해야 했고 홀로 스노우쿨링을 해야 했고 혹시라도 내가 더 아프거나 하진 않은지 물어야 했고 약 먹는 시간을 챙겨야 했으며 시간 날 때마다 발진 부위를 확인하고 시원하게 해 주고 뭐 등등 등 그는 힘들었을 거다. 부러지거나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위안이라면 그는 하필 여행 와서 아프냐가 전부일 수밖에 없다.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일 수 없기 때문에.

여름날의 제주는 슬프면서 웃기고 안쓰러운 감정들이 오가면서 돌아온 지금은 재밌었다. 이렇게 기억한다.

여행에 대해서는 나는 너무나도 무한대로 긍정인인 거 같다.


여름날의 제주는 가을과 겨울에 경험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2~3년 전만 해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곳이 뜨거운 장소가 되어 있는 것 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많은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는 걸. 여름이니까 알 수 있었던 사실이겠지만. 

물놀이를 못한 아쉬움만 제외한다면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제주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알고 간다는 느낌? 이제 봄의 제주마저 다녀갈 수 있다면 사계절의 제주를 한 번씩 다 맛 본 셈이니 그 뒤부턴 집중 탐구시간이 되겠다.

또 내년 쯤 제주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겠지. 사실 제주가 시름시름 앓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행객으로서 그것이 좋다 나쁘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입장인 지 잘 모르겠다. 나에게 제주가 보여준 모습들을 포함해 내가 보기도 전에 사라지는 모습들이 없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 정도?


다음에 제주에선 아프지 말아야지. 김피디 대신 내가 운전을 많이 해줘야지. 알콩달콩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여행기에선 축소되거나 이상하게 한 부분만 크게 미화되기 마련이니.....

별 수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 딱 한 마디만 하자면,



괜찮아,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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