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의애나 Aug 09. 2019

굿걸, 굿보이 영향(impact)

 

 평생을 굿걸로 살아왔지만 그만큼의 칭찬을 받아보지 못한 나는 항상 "대기만성"의 그때를 위하여 쉼 없이 달려갔었다. 더 나은 나를 위해, 더 나은 무언가를 향해, 그 보이지 않는 "더 나은" 것을 향해서 말이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키울 때의 좌우명이 "대기만성"이었다. 너는 뭔가를 할 때 처음부터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노력파의 기질이 있기 때문에 "더" 노력해서 "더" 나은 결과를 받는 대기만성을 이뤄보자며 항상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항상 굿걸이지만 더 나은 굿걸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가끔씩 들려오는 칭찬에 흐뭇해하며 말이다. 하지만 최근 그 보이지 않는 더 나은 실체를 끊임없이 좇다 보니 한계에 부딪쳐버린 나를 발견했다.


조금 내려놔도 될 거 같은데?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완벽하기 위해 나를 채찍질하는 걸까?
이젠 좀 지친다.

 나는 정말 많이 지쳐있었다. 내가 실수를 한다고 해서 누구도 나를 책망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그건 실수일 뿐인걸! 이 완벽한 "굿걸"이 되고자 함은 모두 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조금은 놔줄 필요가 있었다.


 디지털시계를 차고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가며 완벽을 추구하던 나는 아날로그시계로 바꾸고 작은 것부터 내려놓는 연습을 시작했다.


 느긋해지기.


 하루에도 수백 가지의 일을 끝내기 위해 복잡해진 머리를 좀 비워두기. 까먹으면 좀 어때.


 솔직히 삼십 년을 넘게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 단숨에 모든 걸 내려놓는 건 아직도 많이 힘들다. 하지만 내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좀 내려놔라!!! 넌 이미 굿걸이야!"






 평생을 굿걸로 살아온 그녀가 있다. 모든 이는 그녀를 "굿걸"이라며 칭찬해줬다. 


 그녀는 정말 굿걸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똑소리 나게 잘 처리하며, 똑똑하고 책임감이 있다. 하지만 그녀가 한 가지 마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면,  "네가 틀렸어(You're wrong)"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난 항상 모두가 칭찬하는 굿걸이었기 때문에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어.
나는 항상 굿걸이어야 하고 굿걸이야.



 우리는 둘 다 굿걸이지만 더 나은 굿걸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마주하고 있는 장애물이 상당히 컸다.




 호주에서 굿걸, 굿보이(Good girl, good boy)는 사라지고 있는 표현 중 하나이다. 아직도 깊은 생각 없이 쓰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적어도 아이들을 교육하는 사람들은 지양하는 표현이다. 그 이유인즉슨, 이 표현 안에 아무 의미가 없고 성 편견을 심어주는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할 때에는 (특히 아이들에게) 굿걸, 굿보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떤 "행동"을 잘했는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정리정돈을 참 잘했네!(Well done for packing up!)", "장난감을 양보해줘서 고마워.(Thanks for sharing your toy.)"와 같이 행동에 초점을 둔 칭찬을 하도록 노력해보면 좋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