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와 학력의 통계적 성향과 의미
그런말이 있다. 사주팔자는 수많은 표본을 토대로 통계적으로 경험에 의해 발전된 내용이라고. 네개의 기둥과 여덟자의 글자는 그 조합의 통계상 한사람의 인생을 높은 확률로 어떠하다고 설명할 수 있다는 소리이다. 나는 이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 꽤나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식상이 많은 사람들은 표현을 하는 데 능하다던지, 관성혼잡한 경우 오히려 관이 없는 경우보다 여성의 경우 남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던지 등 사실 그 글자가 그 개인에게 각자 의미하는 위치, 의미하는 역할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환경이란 것은 또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사주여도 어떠한 환경에 놓여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동일한 사주를 가지고 태어나더라도, 오늘 하루 먹을 쌀알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경우와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는 경우의 각자의 삶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주를 옹호하지 않는 사람중에 같은 사주인데, 한명은 재벌, 한명은 거지였다는 이야기만 봐도 이러한 상황이었지 않을까를 유추하게 한다.
사람을 판단하는 데에 사용하는 지표로 다소 비공식적인 방안이 사주팔자라면, 공식적인 방안으로는 학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난 사주팔자는 몰라도 학력은 사람을 판단하기에 너무 일편적인 요소가 아닌가라고 생각했고, 학력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다분히 엘리트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일일 뿐이다 라고 생각을 했다. 학력이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것 처럼 통계적인 의미를 가지지만, 결국 그 개인이 무작위적으로 놓여지게 되는 상황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본인의 노력으로 커버할 수 없는 영역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성향, 지식수준, 성격 등과의 상관관계를 단정지을 수 없다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어쩌면, 나는 나이가 들면서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불과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5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나는 이미 학력이 상당부분 한 개인의 성향과 성격까지도 설명하는 요소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수많은 반문과 의심을 거쳐왔지만, 결론은 하나다. 굉장히 높은 확률로 학력이 그 사람의 인성을 포함한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첫째로, 학력이 높은 사람들은 이미 성실함을 무기로 가진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 중에 성실함이 무기인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확률적으로 성실한 사람들이 인성에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크고, 그들은 학력이 높은 사람들일 것이라는 결론이다.
둘째로, 학력이 높은 사람들은 자격지심을 가질 확률이 낮다. 사회생활을 하게되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인성의 상당히 많은 부분은 자격지심으로부터 결정된다.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 자격지심을 느끼느냐, 얼마나 많은 갯수의 발작버튼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다른사람을 올바르지 않은 태도로 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굉장히 놀랍고, 아직까지도 자격지심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금으로서 나의 답은 하나다. 자격지심있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지 말라. 진심이다. 괜한 말들과 소문과 괜한 (상대방의) 피해의식으로부터 발생된 이상한 죄책감과 같은 것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자격지심이 얼마나 인성에 많은 문제를 끼치는지는 좀 더 자세하고 세부적으로 사례를 제시할만한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성문제가 자격지심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과 특정 발언이 자격지심으로 인한 내용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내 개인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불과 얼마전에 깨달은 사람이 나라는 진지한 고백이다.)
셋째로, 학력이 높은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주변 지인들의 학력 또한 높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평균 이상의 비교군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평균 이상의 비교군과의 비교를 통해 본인 역시 평균 이상의 인성과 평균 이상의 매너, 평균 이상의 사고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길바닥에 침을 뱉는 행동이 평균 이하의 행동이라고 하였을 때, 평균 이상의 비교군은 그 행동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비교군의 행동을 보고 특정한 행동의 이상유무에 대한 인지가 있었음에도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특별(?)하고 수적으로 적은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적은 비율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모든 이유가 서로 이어진다. 집은 찢어지게 가난해도 서울대라는 학력이 있는 사람이 인성에 문제 있을 확률이 높을까, 집은 엄청나게 부자지만 대입 실패로 인해 본인이 원하는 인서울에 실패한 사람이 인성에 문제 있을 가능성이 높을까? 개인적으로 난 후자라고 생각한다. 본인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부분이 상당부분 학력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본인 자신에 대해 믿을 구석이 있다는 것은 인성이 비뚫어질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노력과 성실함으로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본인의 노력과 성실함으로는 변화된 결과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정 수준의 자격지심이 존재하는 사람은 성실하게 노력할 생각보다는 결과만을 낼 수 있는 방법(예를 들면 범법행위 등)을 추구할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주변에는 고졸 친구들도, 석박사인 고학력 친구들도 존재한다. 다만, 이러한 인사이트를 내 나름 갖게 된 이유는 오히려 내가 그들을 편견없이 대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많은 상처 또한 받았기 때문임을 내 방어기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난 고학력이지 않은 친구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 객관적으로 본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의 자격지심에 대한 안타까움을 글로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이들에 대한 몇글자를 더 남기자면, 내 인생은 다른 사람을 통해 완성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인정을 통해서 또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내.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을 항상 내도록 하고, 내 스스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사고와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게 좋겠다.
(사업하는 아버지가 있는 유학생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만, 주요 지점에 자가를 지원받는게 결혼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문대 졸 친구에게. 본인은 호텔예식을 원하지 않아 돈 안쓰고 싶은 개념녀이지만, 예비 시댁이 40억가량의 매매를 지원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없앨 수 없어도 김치녀는 아니라는 친구에게. 본인은 돈은 조금 벌고 편안한 일을 하다가 그만둬도, 집도 다해오고 사업체도 가지게 될 남자친구가 집안일도 당연히 같이 하는게 인성적으로 문제없는거라던 친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