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생 심주임 이야기(1)

여의도 증권사 속에서 흘러가는 여직원 이야기

by 만년필

1.


나는 93년생이다. 올해로 만 30살. 아니다. 새해가 밝았으니 만 31살이 되어버렸다. 만나이로 바뀐 나이계산법이 퍽이나 맘에들면서도 어쩐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나이가 된 듯한 느낌이다. 직장은 여의도로 다닌다. 그래, 여의도. 금융기관들이 몰려있는 여의도의 수많은 회사 중 바로 증권사에 다니는 여자 직원이다. 증권사 여직원. 어쩐지.. 좋은 어감은 아닌 듯하다.


언제부턴가 외부 사람들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의 타부서 사람들과 얘기할때도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은근히 흘려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단순 지출업무 및 상위 계급자의 비서업무를 하는게 아니라 제대로된 메인업무를 다른 남자 주임 혹은 대리들과 동일하게 하고있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래, 내 자기방어인 것도 같다.


다른 금융기관과 마찬가지로 내가 다니는 증권사에는 6급과 5급 두가지 직급이 보통의 출발선이다. 6급은 보통의 경우 고졸사원이라고 불리지만 요새같은 취업난에는 서울 중위권 4년제까지도 포함하기도 한다. 5급은 중상위권 이상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원으로 주임이라는 직함으로 불린다. 그럼에도 보통의 ‘증권사 여직원’은 6급 사원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서두가 길었다. 나는 지금 여의도 증권사 중에 한 곳에 재직중인 93년생 여자 주임이다. 팀내부적으로는 MZ 직원, 회사내 타팀과의 관계에서는 꽤나 주요업무를 맡고있는 여자주임, 회사밖에서는 여의도 증권사 IB업무를 다루는 꽤나 커리어우먼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2.


사실 증권사 주요 부서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꽤나 먼길을 돌아온 편이다. 비상경 전공인 탓에 첫 출발이 쉽지 않았고, 스스로 머리가 좋은편이라고 생각해버린 탓에 2년간 고시준비도 해봤다. 그래도 글쓰는 실력은 나쁘지 않았는지 자기소개서가 눈에 띄었던 덕분에 첫직장을 금융권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금융권내에서 알아주는 회사라고 하긴 힘들었다. 그래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학력도 일정수준 이상, 아니 오히려 나보다 좋은사람들이 더 많았다. 스마트한 사람들과 효율적으로 일하는 회사, 역시 여의도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은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회초년생의 나였다.


그렇게 2년여간 여의도 금융권이란 효율적으로 일하는 스마트한 사람들의 세계라고 생각을 하던 도중, 그 중에서도 잘 적응한 나의 업무효율성은 꽤나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그에비해 받는 돈이 너무 적지는 않은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안그래도 얼마전 옆회사 다니는 학교동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전문적이지 않은(아무래도 금융권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듯해보이는) 일을 하는 듯한데 나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아가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돈을 더 주는 곳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이직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1월 중순 정도 성과급을 받고나서 '음, 그럼 그렇지. 역시 나는 더 많은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갈 자격이 되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해버렸고, 2월에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어쩐지 순식간에 최종면접까지 끝나버린다. 마치 흘러가는 물처럼. 흘러내려가는 물은 낙폭이 클수록 더 빨리 흘러내려가기 마련임을 의미했던 것만 같이. 그럼에도 당시의 난 원래부터 내가 가야하는 곳은 이정도의 돈을 줘야한다고 생각했더랬지.


3.


첫번째 이직, 두번째 회사. 쉽지 않은 두번째 시작이었다. 아참, 사실 나는 그때 결혼도 하게되었다. 물흐르듯 1년간 사귄 남자친구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아 2년째 될때 결혼식이 예정되어있었다. 다만, 이직후 반년후라는게 그정도로 문제될지 몰랐을뿐.


보통의 경우 작은 회사에서 큰 회사로 옮기면 경력을 모두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나는 이직 조건도 경력 년차를 모두 인정받아서 회사를 옮길 수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정도 값어치를 하는 직원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으니. 조건협상시에 그 해 연말 대리승진 대상자에 해당한다는 확인까지 받고 회사를 옮겼다. 사실은 대리를 달고 옮길수 있는지 문의해 보았으나, 거절당했다. 어쩜.. 문제는 여기서 부터였던걸까?


시간이 한참 흐르고 알게된 사실이지만, 당시 부서장이었던 분이 나와의 조건협상 전화를 본인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받은거라고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 본부는 평소 쥐죽은듯 조용하기 마련이었다. 덕분에 내가 말하는 건 안들리고, 부서장의 대화만 명확하게 들렸겠지만.


네, 대리 승진자는 3년차라서 해당됩니다./ 네? 물론 업무에 인정이 되면 승진이 가능하죠./ 아 그걸 제가 보장해드릴수는 없지만 업무를 너무 못한다고 생각이 들지않으면 승진이 가능하다고 할수 있죠. 제3자의 입장에서 듣게되었을 한쪽의 대화, 나는 그렇게 이미 입사하기도 전부터 승진에 미쳐있는 약삭빠른 여자 경력직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들어오자마자 반년안에 결혼식을 한다니. 잘알지도 못하는 버르장머리조차 없을거같은 MZ세대 여직원한테 축의금까지 해야한다니. 경력직으로 들어와서 왜 업무도 바로 투입이 되지 않지? 지나가면서 볼때마다 컴퓨터만 보고있네? 왜 쟤는 업무관련 질문도 하질않고 컴퓨터만 보고 앉아있지? 나는 네이버부동산 일하려고 보는데, 쟤는 투자하려고 보는건가?


물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참 여러모로 운이 없었다. 여러모로. 다방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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