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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방문한다는 예약알림이 울렸다. 마음의 준비가 약간 필요하다. 그의 이름은 'J'. J는 말이 매우 많다. 시사, 경제, 문화 등등. 뿐만 아니라 본인의 고민까지. 커트를 하면서 그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일은 양손으로 동시에 글씨를 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노력하면 될 것 같은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때문에 주로 맞장구를 치거나 질문을 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의 답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쉽게도 그와의 대화 내용이 꽤나 어렵기 때문이다.
50대인 J는 문래동 철공소에서 사업을 한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과거 문래동에 즐비했던 철공소들은 많이 사라지고 코로나 여파로 인해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신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그쪽 분야를 잘 알지 못해도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화학시간에나 나올 것 같은 다양한 용어를 쏟아내며 본인의 사업 고민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과였지만 지구과학과 생명과학을 공부했었다.) 어렵다. 그가 말하는 건 분명 한국말인데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적절한 비유를 찾아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대답한다.
"아 진짜요? 쉽지 않으시겠어요." (적당한 공감을 표현하기 위해 높은 억양으로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업이야기가 끝났으면 다음은 시사, 경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이로 인한 각 나라의 상황. 앞으로의 흐름은 어떨지. 달러는 왜 오르는지. 또 달러가 오르면 어떻게 되는지 등 평소에 내가 크게 관심 가지지 않는 것들을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설민석 작가님의 한국사'나 '김상욱 교수의 물리학' 등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보고 들을 때는 너무 재밌지만 프로그램이 끝나면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까먹기 때문이다. 이렇듯 J와의 대화는 유익하지만 늘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런 그도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한 때 시티팝에 빠져 몇 주 동안은 시티팝을 틀어놓고 일한 적이 있다. 시티팝에는 아련하고 아날로그한 감성이 느껴진다. 그 시절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들의 언어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어폰만 있으면 느낄 수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더 먼 과거를 상상하게 한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었나보다. 그 시절을 실제로 경험한 그는 언제나처럼 알고 있는 많은 것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번에는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일할 때 가끔 사운드클라우드로 음악을 듣는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에 새로운 음악이나 장르를 개척할 때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이때 시티팝에 빠져 랜덤으로 재생되는 음악을 열심히 들었다. 그즈음에 J가 방문했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야마시타 타츠로네요!" 사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야마시타 타츠로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시티팝가수라고 했다. (무려 "시티팝은 야마시타 타츠로가 본좌"라더라.) 뒤이어 그가 한 말은 충격이었다. 야마시타 타츠로는 앨범을 발매할 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라온 곡들도 대표곡 몇 개뿐이고 그의 음악을 더 들으려면 앨범을 구매해야만 했다.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듣고 싶은 노래는 뭐든지 다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는 그의 신념이 이해가 안 되다가도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음악이 그 시절을 더 잘 담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음악이 더 궁금해졌다.
그날 밤 중고나라에 그의 앨범을 여러 번 검색했다. 하지만 고민 없이 덜컥 구매하기에는 종류도 많고 더 이상 발매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도 비쌌다. 역시 '본좌'의 음악을 듣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근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J에게서 카톡이 왔다. 본인이 구매했던 CD에서 음원을 추출해 파일을 만들어 나에게 보내준 것이다. 정말 너무 고마웠다. 나에게 음악은 재산이다. 내가 직접 만든 음악은 아니지만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이나 그 시대를 '음악'을 통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는 노래가 많으면 스포티파이, 유튜브뮤직 등 음악을 추천해 주는 어플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언제든 듣고 싶은 노래를 편하게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있어 보이지 않는가.) 근데 자신의 재산을 공유한 샘이니 나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날 이후로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그가 공유해 준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그 이후로도 J는 또 다른 고민들을 들고 와 나에게 털어놓고는 한다. 어쩌면 그도 내가 그의 이야기 전부를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직장에서는 직원을 챙겨야 하는 사장, 가정에서는 언제나 든든해야 하는 가장인 그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순간이 머리자를 때가 유일할지도 모른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들은 누구나 하지만 복을 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되지 않냐. 나에게 복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나는 복을 주는 사람인가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복을 주는 일이 더 대단한 일이지 않을까.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복'이 된 적이 있을까." 우리는 모든 것에 금방 익숙해진다. 내 앞에 큰 행복이 존재한다면 그 이면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희생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 자리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있다. J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 늘 그 자리를 지키며 주변을 밝히는 등대 같은 존재. 하지만 이제는 그를 비춰줄 작은 등대도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당장은 손전등만 한 크기의 빛일지라도 그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 마음 편히 와서 쉬다 갔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내가 비추는 빛도 점점 더 밝아질 테니까. 그의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