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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 Apr 18. 2023

한 사람의 시간을 멀리서 지켜보는 일

바버샵

 처음 오신 고객님들에게 항상 묻는 말이 있다. 이전에 한 곳에서만 머리를 자르셨는지, 그게 아니더라도 자주 가시는 미용실이 있는지 여쭤본다. 어떠한 계기로 나에게 찾아왔는지 알아가기 위한 과정 중에 하나다. 고객님들의 대답은 다양하다. 그냥 아무 곳이나 다니다가 바버샵이 궁금해서 오신 고객님, 원래 다니시던 곳이 있는데 집이나 직장 근처에 새로 생겨 궁금해서 오신 고객님, 다니던 곳이 예약이 다 차서 급하게 머리를 하러 오신 고객님.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또 유독 잘해드리고 싶은 분들이 있다. 수년의 시간 동안 한 사람에게만 머리를 자르다 나에게 찾아오신 분들이다. 보통의 디자이너는 한곳에서 그리 오래 근무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이직하고 개인샵을 오픈한다. 즉, 디자이너가 어디서 근무하든지 간에 항상 그들을 찾아가 머리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 남자들은 단순하다. 별 말하지 않아도 또 가끔은 작은 것들을 요구해도 알아서 척척 잘해주는 디자이너에게 '정착'한다. 그렇기에 한번 정착한 이상 웬만하면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잘 맡기지 않는다. 한 번 망친 머리는 다시 붙일 수 없고 상한 마음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큰 용기를 가지고 나를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덥수룩한 머리를 한 남성이 샵으로 들어왔다. 그의 이름은 B. 나에게 처음으로 머리를 하러 온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오늘 머리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제가 바버샵은 처음이어서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나는 간단한 상담을 통해 그의 모발이나 라이프 스타일 등을 파악한 뒤를 파악한 뒤 커트를 시작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어요?"

"제가 집이 근처여서요. 바버샵이 늘 궁금했는데 드디어 와보네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혹시 이전에는 머리 어디서 자르셨어요?"

"제가 항상 머리 자르던 곳이 있어서요. 거기서 항상 잘랐어요."

"바버샵 오시기 쉽지 않으셨겠다. 거기서 머리는 얼마나 자르셨어요?"

"한 15년 정도 된 것 같아요."

"네?!"     


 당황했다. 15년이라니. 그 시간을 생각해 봤다. 한 아이가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남을 나이. 15년 전 나는 초등학교 6학년, 15년 후 나는 무려 마흔세 살. (어우... 너무 많네....) 과거로 보나 미래로 보나 까마득한 걸 보면 15년은 분명 긴 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득, 지난 15년 동안 B의 머리를 잘라주셨을 디자이너는 어떤 분이실까 궁금해졌다. 아직 일을 시작한 지 5년도 채 되지 않았다. 때문에 단골이라 해도 고작 2, 3년 정도의 시간 정도만 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과 나름의 유대감을 쌓았다고 생각했다. 근데 15년이라니 나의 시간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나도 15년 동안 지치지 않고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한 고객님을 15년이란 시간 동안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그 정도면 남은 아닐 것 같은데 그러면 과연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밖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커트는 마무리되어 갔고 B는 내가 해준 커트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나가면서 나에게 인사했다.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그의 그 인사가 진심일지 그저 한 소리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확신할 수 있던 건 B는 분명 그 디자이너를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15년 동안 머리를 맡긴 사람을 한순간에 떠나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B가 나가고 하루 종일 생각했다. 한 사람의 시간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겠구나. 한껏 꾸미는 것에 관심 있을 20대를 지나 취업을 하고 또 결혼을 하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기까지. 그들의 헤어스타일은 매번 달랐을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정착하지 못해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을 수도, B처럼 한 사람에게만 머리를 맡겼을 수도 있다. 오래 일하고 싶다. 머리를 최고로 잘 자르는 바버는 아니더라도 그들에게 누구보다도 편안한 한 시간을 제공해주고 싶다. 자주는 못하더라도 그들과 오래 인사하고 싶다. 15년 후 나는 과연 누구의 머리를 잘라주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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