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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소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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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Nov 10. 2019

나의 칠칠찮음이 밉다

오늘은 뭘 또 잃어버렸나


 없다. 아무리 사방팔방 다 뒤져봐도 없다. 이번엔 또 뭘 잃어버렸나.. 하니 아이패드에 챙겨 다니던 블루투스 키보드를 잃어버렸다. 마지막에 썼던 것이 언제인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도통 모르겠어서 다이어리를 뒤져 지난 일주일 간의 일정까지 죄다 뜯어 살펴봤지만 모르겠다. 이런 내가 너무 밉다.


 아주 비싼 물건도 아니고, 2-3만 원짜리 키보드 하나 잃어버린 것 가지고 유난이다 싶을 수도 있겠다. 나의 속상함은 단지 키보드를 잃어버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늘 정신이 없고, 주변을 어수선하게 해 놓고는 여기저기 물건을 찔찔 흘리고 다니는 내가 너무 미운 것이다. 어쩜 나 자신인데도 이렇게 내 맘대로 컨트롤이 안되는 걸까.


 매일같이 잃어버리고 매일같이 찾으러 다니는 물건들이 있다. 안경, 립 제품, 핸드크림. 솔직히 말하자면 "핸드폰 어디 있지?!" 외치는 횟수도 만만치 않은데, 그건 전화를 걸면 소리가 나니까.. 그나마 어디 있는지 쉽게 찾는달까. 한껏 '빡친' 기분으로 타이핑을 하는데, 한 줄 한 줄 쓰면 쓸수록 내가 너무 밉다. 밉고 짜증 나서 그만 쓰고 싶은데 정말 반성을 해야 한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어서 꾸역꾸역 자판을 눌러쓴다.


 계절이 바뀌면 항상 옷 주머니에서 현금을 발견한다. 이게 웬 돈이냐 싶어서 기분이 좋은 것도 잠시. 내가 또 이렇게 아무 데나 돈을 넣어 놓고선 기억도 못했구나 하는 맘이 든다. 물건을 살 때, 늘 같은 종류만 사는 습관이 있다 보니 잃어버리고 찾는 것을 반복하며 같은 물건의 개수가 늘어 난다. 똑같은 립이 옷 주머니마다 들어 있고, 같은 종류의 핸드크림이 도처에 산적해 있다.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하루에도 몇 번씩 "ㅇㅇ 어디 있지?", "ㅇㅇ 빼놓고 그냥 왔나 봐!" 같은 소리를 수없이 반복하는 나를 보며.. 이 바보 같음에 울화통이 터지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한결같을 수가 있나. 가진 게 엄청 많은 사람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내 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지! 나는 자기애가 꽤나 높은 편이라 나 자신에게 정말 관대한 사람인데, 이런 순간들 만큼은 나 스스로가 너무 밉다. 뭘 잃어버리고 나면 쿨하게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주제에, 왜 이렇게 있을 때 소중한 줄을 모르고 간수를 못하는지. 물건도, 사람도, 시간도, 기회도 죄다 지나가거나 손에서 흘러나가 버린 뒤에야 깨닫는다.


주름이 직쏘짤 / 너는 네 물건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았지..T_T 쒸이익..


 얼마 전에 계절이 바뀌어서 옷장 정리를 하는데 "이런 옷이 있었나?" 싶은 게 너무 많더라. 필요한 게 있어서 여기저기 서랍을 뒤지다가도 "이게 여기 있었네?"란 말을 하기 일쑤.. 며칠 전에 주방세제 통에 세제가 떨어졌길래 리필을 담아놓으려고 찬장을 열었는데 세상에.. 똑같은 리필 세제가 네 개나 찬장에 들어 있었다. 집에 남은 게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 사다가 채우기만 했던 거다. 바보 같은 내가.. 뭘 제때 잘 정리하지 않으니까 집에 뭐가 있는지, 당장 필요한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시간도 돈도 낭비하고 허비하고 있었다.


 반성문 같은 이 글을 쓰면 쓸수록 자괴감이 드는 중. 나에게 무심하면 망가지는 건 나인데, 내 주변을 가꾸고 내 것들을 챙기는 일에 서툴러 뭘 자꾸 놓치는 내가 정말 밉다. 정리와 비움이 필요한 시간이다. 내년이면 서른. 나 이제 정말 이런 나와 이별하고 싶어. 적어도 나한테 소중한 건 소중하게 대할 줄 아는 으른이 되고 싶은걸. 맨날 질질 새는 내가 너무 싫다T_T..



 11월 안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나 스스로에게 셀프 압박을 넣기 위한 글. 해결이 필요해, 간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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