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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Jan 17. 2023

혼주석만큼은 싫어.

하지만 싫어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어서.


 엄마와는 만날 때마다 꼭 여행을 간다. 강아지가 있어 보통은 자동차 여행이고, 함께 오랜 시간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많아진다. 엄마와 둘만의 여행 역사는 십오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다를 보러 갔던 이박삼일의 여행. 무얼 먹었는지, 뭘 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둘이 차 타고 가는 내내 신나게 웃고 떠들었던 장면은 여전히 선명하다. 서로의 옷을 골라주고, 머리핀을 고르며 함께 다니던 내내 우리는 즐거웠다. 사실 깊게 들여다본다면 엄마도 나도 즐거울 일 하나 없이 사는 삶이었지만, 그 여행만큼은 일상으로부터의 완벽한 탈출이었다. 그 여행을 시작으로 종종 둘이서 여행을 다녔고, 부모님의 이혼 후에는 당연하게 둘이서 다니게 되었다. 엄마의 이혼 후에는 서로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도 더해졌는데, 나는 엄마 연애 이야기를 듣는 것을 참 좋아했다.


 "아니, 그 사람이 밥 먹으러 가는데 문도 안 잡아주는 거야!"

 "푸하 엄마는 왜 이혼하더니 평생 받아본 적 없는 걸 상대한테 기대해! 그래서 뭐라 그랬어?"

 "평생 받아본 적 없으니까 이제서라도 받아보려고 그런다 왜! 뭐라 그러긴 다시는 안 만났지."

 "또 그냥 연락 무시했어?"

 "너 엄마 성격 몰라? 야무지게! 싫다고 했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부인과 사별했다고 소개받았는데 알고 보니 사별하기 전부터 바람을 피우고 있다가 엄마를 소개받으면서도 여전히 내연녀를 만나고 있던 아저씨, 살갑게 말이 잘 통해 괜찮은 사람인가 했더니 이혼한 부인과 한집에서 살고 있던 아저씨, 엄마를 만나며 다른 여자들과도 연락을 하는 아저씨, 누구는 잠자리만 원하고, 누구는 밥 해줄 사람을 원하고, 또 누구는 너무 착하기만 해서 너무 지루하고, 또 누구는 주변에 여사친들이 많아 싫고…. 이혼 후 엄마의 공식적인 연애는 두 번이었지만, 사이사이 소개받거나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조심해. 요즘 세상이 흉흉하잖아.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도 너무 많고. 누구든 만나면 꼭 먼저 이야기해. 진짜 진짜 무섭고 독한 다 큰 딸이 있다고. 허튼수작 부렸다간 딸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응징할 거라고."

 "안 그래도 꼭 이야기하고 다니지! 우리 딸 진짜 무서우니까 너 나한테 잘해야 된다고!"


 그 모진 세월을 버티고도 까르르 웃는 소녀 같은 엄마를 보자면 정말 사랑은 나이 불문, 장소불문 어디에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녀에겐 둘 만의 암호가 있다. 각종 범죄 다큐를 섭렵한 나 때문이다. 엄마가 생활반경 안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란 한정적이라, 인터넷 카페나 돌싱들 모임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다. TV를 보면 범죄를 저지르고 본인인척 가족들과 연락하는 범죄자들이 나오기도 해서 우리는 암호를 정했다. 둘만 아는 단어, 단어는 언제고 바뀐다. 일을 하는 시간이거나 해서 통화가 여의치 않을 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우리만의 암호를 이야기한다. 서로를 확인하고 시작되는 메시지. 암호는 톡을 올려보면 알 수 있으므로 꼭 통화를 하며 바꾸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만의 놀이처럼 되어서 대화를 하다가도 엄마답지 않거나, 나답지 않은 말을 했을 때 ‘누구야! 암호 뭐야!’ 하고 묻고는 와아 웃어버리곤 한다.


 혼자 사는 엄마, 혼자 사는 딸. 멀리 떨어져 살아 늘 경계하는 것이 일상인 모녀에겐 한 번씩 만나 여행을 갈 때가 유일하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날인 것이다.






 몇 년 전 일이다. 그 겨울, 우리는 산으로 여행을 갔다. 운전은 엄마가 했고, 끝없는 도로를 달리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엄마가 만나고 있던 아저씨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아내가 집을 나가 혼자된 아저씨였는데, 그 집 큰 딸이 나보다 열 살이 넘게 어렸다. 엄마는 또래보다 일찍 결혼을 했고 나를 낳았다. 엄마가 젊다는 건 학창 시절 내내 나의 자랑거리였지만 엄마는 그걸 오히려 부끄러워했다. 이렇게 나이가 더 들고 보아도 엄마가 젊다는 건 내게 큰 자랑인데 남들보다 일찍이 아이를 낳은 엄마에겐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엄마는 그 아저씨의 딸 이야기를 종종 했다.

 엄마는 내가 멀리 있는 것을 슬퍼했다. 남들은 다들 딸이랑 다니는데 ‘나만 딸이 여기 없어.’ 하며 늘 서럽다고 말했는데, 한 동네에 살아 간간히 볼 수 있는 그 애를 엄마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엄마 정을 모르고 자라서 아이가 엄마에게 살갑다는 이야기, 가끔 둘이 만나 밥 먹는 이야기, 엄마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멀리 있는 내 생각이 나기도 해서 이야기도 더 잘 들어주고 싶고, 잘해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걔도 힘들었겠네.’ 하고 말했지만 솔직해지자면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내가 본 적도 없는 아이, 엄마 남자친구의 딸.


 엄마는 아저씨가 결혼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재혼. 생각해 보아도 불편했던 적이 없다. 서로 비밀이 없는 우리에게 이혼이나 재혼은 입에 올리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엄마에게 늘 좋은 사람이 있으면 재혼하라고 이야기했고, 엄마는 그때마다 뭐 하러 결혼을 두 번씩이나 하느냐고 말했지만, 그 아저씨의 노모도 챙기고, 그 집 딸도 만나고, 건강이 좋지 않은 아들도 챙기는 엄마를 보며 재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아저씨가 엄마에게 결혼을 이야기한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엄마 걱정이 아니라, 내 걱정.


 "엄마가 재혼하는 거 좋아. 안정적으로 사는 거, 나는 찬성해. 근데 뭐랄까… 엄마가 그 아저씨의 아내가 되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 집 애들의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좀 이상해. 그 집 애들이 결혼할 때 혼주석에도 앉을 거 아냐. 나는 그건 정말 싫은데…."


 결국에는 울었다. 나는 좀처럼 엄마 앞에서 우는 일이 없는데 엄마가 그 아저씨의 딸 결혼식에 혼주석에 앉을 생각을 하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엄마도 함께 울었다. 엄마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좋아, 하지만 엄마는 영원히 내 엄마이기만 했으면 좋겠어. 울음반 말반, 나는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여겼으나 나는 아직도 엄마가 제일 좋은 철없는 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안 해. 나는 내 자식이 있는데, 내 자식도 제대로 못 보면서 사는데 남의 자식이 무슨 소용이야. 엄마는 안 할 거야."


 서럽게 우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아빠가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누군가에게 아버지로 불리는 건 상상해 보아도 큰일이 아닌 것 같은데 어째서 엄마가 누군가의 가족이 된다는 걸 상상만 해도 이렇게 속이 상할까. 나만은, 세상에서 나 하나만큼은 엄마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지지하고 엄마 편이 되어주기로 다짐했는데 이상하게도 엄마를 나눠가지는 것 같은 기분만큼은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영 내키지 않는 것이다. 나는 결혼식은 하지 않을 거라 엄마 아빠가 누가 오나, 누가 혼주석에 앉느냐로 고민하고 싶지 않다고 큰소리쳤지만, 사실은, 말만큼 쿨한 마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늘 스스로에게 말한다. 엄마에 관한 한 자연스레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은 노력해서라도 받아들이자고, 그래야 엄마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더라도 그 식구들에게 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엄마는 결국 그 아저씨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날 울던 나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 지독한 학대 속에서도 아이들을 두고 나갈 수 없었던 때처럼, 서럽게 울던 다 큰 딸을 두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 엄마가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불편함 없이 엄마를 편히 놓아주고 싶다. 주렁주렁 엄마 발목을 붙들고 있어 자꾸만 마음 쓰이는 딸이고 싶지 않다. 엄마의 오랜 죄책감으로 남아있는 것만큼은 정말로 하고 싶지가 않기에 오늘도 생각한다. 자연스레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은 노력을 해서라도 받아들이자고.


 우리가 더는 서로가 안녕한지 확인하기 위해 암호를 말하며 서로를 확인하지 않아도 잘 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도록 좋은 사람이 꼭 엄마 옆에 있다면 좋겠다.






(사실 나는 혼주석 거부 사건 이후 운 것이 머쓱해 남의 자식 혼주석은 안되고 이복동생이라면 아무렇지 않으니 동생 낳으라고 까불다가 엄마에게 등짝을 맞았다. 오래 무거운 것은 절대 못 참는 모녀의 하루는 대체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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