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으나 말하지 않는 것들.

그리고 내게 말을 건네지만 견딜 수 있는 존재.

by 김다정

 “저는 살아있지만 말하지 않는 것들을 사랑해요.”


 선생님은 크게 웃었다. 무겁고 깊은 이야기들을 마주하고 꺼내어 이야기해야 하는 세션들이 많다 보니 이렇게 한 번씩 환기를 위한 세션들도 존재하는데, 주로 이야기 나누게 되는 것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공간이라던가, 가장 좋았던 여행지라던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행복했던 순간,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


 선생님은 그걸 내적자원이라고 했다. 어렵고 힘든 순간에 꺼내어 힘을 낼 수 있는 무언가. 그건 사람이기도 했지만 코끝에 남아있는 냄새이기도 했고 눈에 가득 담았던 풍경들이기도, 따뜻하게 온기를 나누어 주는 생명체들이기도 했다. ‘말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내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듣는 나도 입을 꾸욱 다문채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말을 하는 모두가 싫었던 때가 있다.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던 많은 일들을 나보다 더 많이 떠들어대던 사람들, 편하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것을 외면하는 것조차 애를 써야 했다. 그렇게 멀리, 더 멀리 걸을수록 말하지 않는 것들의 존재가 선명해졌다. 어느 날은 뒷마당에서 부지런히 자라던 초록 딸기가, 동글동글 부지런히 걷는 공벌레, 방충망에 붙어있는 무당벌레와, 있는 힘껏 하늘을 향해 벽을 타고 오르던 담쟁이덩굴이. 아침햇살을 맞으며 풀밭을 뛰는 강아지와,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것처럼 보이는 선인장. 쉬지 않고 헤엄치는 구피와 점처럼 작은 구피의 새끼들.


 기적처럼 피어났다가 사라지는 많은 생명들, 나는 그것들을 보며 살아갈 힘을 얻곤 했다. 그리고 요즘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된 것은 적갓의 새싹. 동글동글 예쁘기도 해라, 하며 심은 적갓 씨앗은 이제 싹을 틔웠다. 매일 같이 들여다보며 이 작은 씨앗도 싹을 틔우고 열심히 자라는데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요즘 나를 일으키는 것들은 그런 것 들이다. 어느 날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파랗다던가, 해 질 녘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힐 때, 열심히 자라는 적갓은 새싹이나, 글을 쓰는 내 곁에 얌전히 앉아있는 고양이나, 내 다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누워있는 강아지. 살아있는 것들은 살아있는 그 자체로 어떤 힘을 가진다. 한 없이 내가 싫어지는 어떤 날에는 내 존재도 누군가에게 기쁨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위로가 되고, 한 없이 스스로가 좋아지는 어떤 날은 나 하나만으로도 다 되었다 하는 마음이 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살아 있으며 말까지 하는 상담사 선생님은 내 인생에 조금 덜 불편하게 등장해 자리하는 인물. 상담을 하며 어디까지 솔직해야 할까 고민하던 것이 무색하게 정말 날 것의 이야기들을 꺼내어 놓는 일이 많은데, 선생님의 세상에 큰 일이라곤 없는 듯한 의연한 태도가 자주 큰 도움이 된다. (‘자주’라고 한 것은 가끔 까끌한 마음이 일어나 불편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마다 선생님, 선생님이랑 상담하는 건 대부분 좋지만 가끔 열받아요! 하고 이야기하고 선생님은 그때마다 저도 알아요, 하면서 와앙 웃는다.)


 가끔 열받지만 대부분 커다란 위로와 생각해 봄직한 이야기를 안고 이어져 나가는 세션은 대부분 좋고 가끔 힘들다. 매 회기 상담이 끝나면, 선생님은 짧은 피드백을 요청하시는데, 나는 ‘오늘은 참 유익하고 좋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선생님은 ‘다정님은 즐거운 이야기 나눌 때 꼭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군요!’라고 하며 웃는다. 사실 무거운 이야기들은 꺼내어 놓고 나면 물 먹은 솜처럼 한 없이 푹 가라앉기에, 상담이 끝난 후에 혼자서 또 견뎌야 할 일주일이 두려워 피드백 시간에도 ‘괜찮았어요.’ 하고 마는 것이다. 아이러니. 사실 나는 여러 상담사 선생님들을 여러 해에 거쳐 만나왔고, 좀처럼 마음을 붙이지를 못했다. 시작이 있다는 건 끝이 있다는 것이고, 상담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그 목표에 도달할 날이 있을 것이고(그렇게 믿고 있다), 그 끝에 상담의 종결이 있다는 걸 알기에 상실이 두려워 도망치기를 반복했던 무수한 날들…. 내가 그 두려움에 대해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게 되었을 때, 선생님은 말했다.


 ‘상담이 끝난다고 해서 정말 없었던 일처럼 우리의 관계가 끝이 날까요?’


 더 이상 상담을 하지 않는 때가 오더라도 선생님은 멀리서 나를 궁금해하고, 나의 안녕을 기원할 거라는 말, 꼭 정해진 시간에 만나지 않더라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삶을 함께 사는 동료로 그렇게 살아가게 될 거라는 말, 그리고 상담을 종결해야 될 때가 오면 지금은 같이 걷는 이 길을 혼자서도 충분히 걸을 수 있게 될 거라는 말…. 나는 그때마다 그건 없는 거죠, 다시 이야기 나누지 못하는 건 사라진 거죠, 하고 뾰족하게 말하곤 하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선생님이 말하지 않는 존재로 내 인생 한편에 남더라도 나를 깊이 이해하고 버텨주던 지금의 기억이 내게 커다란 힘이 되리라 믿는다.


 이래놓고 새로운 세션이 되면 다가올 이별에 대한 두려움은 온 데 간데 없이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하고 말하는 선생님께 아뇨, 아직은 아닌 거 같아요 못해요, 하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다가 또 그다음 세션에는 선생님 제가 선생님이 말씀하신 걸 해봤어요! 하고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이야기하는 말 많은 내담자여...(선생님은 내가 늘 할 말이 많아 어떨 땐 상담자가 너무 편한 것 같다며 농담을 하시기도 한다.) 매번 못한다 안 한다 소리를 하며 드러눕지만 결국엔 해버리고 마는 나를 이제는 너무 잘 아는 존재. 살아있고 말하는 선생님. 어쩌면 나는 선생님 덕에 말하는 생명체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결국 사람을 치유하는 건 사람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는 날, 살아있으나 말하지 않는 존재, 그리고 살아있으며 내게 말을 건네는 사람으로부터의 위로, 무엇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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