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잘 모르겠더라고. 지금 이게 나를 위한 건지, 아니면 그 사람을 위한 건지."
친구가 오랜 연인과 이별했다. 나는 타인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그렇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에는 이별한 이야기에 도달하게 된다. 친구로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서로의 연애사를 잘 아는 사이기에 호들갑스러운 위로는 전하지 않는다. 그저 늘 그랬듯 또 다른 누군가가 네 인생에 들어오게 될 거라고, 그러니 혼자서도 잘 지내보자고, 그러다 너무 힘이 든 날은 꼭 함께 있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최선을 다 한 후의 이별은 상대에 대한 마음보다 일상을 나누던 사람의 부재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은데, 오 년을 함께 한 사이에 정말로 큰 일은 가장 가깝던 친구가 없어졌다는 상실감이라고 했다.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틈틈이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가 사라졌다는 공허함,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내 삶에 등장해서 자연스레 섞여버린 상대는 나의 일상이 되는데 그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 평화롭던 일상이 그대로 박살나고야 마는 것이다.
우리 나이즈음이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온다. 서로에 대한 책임에만 집중하는 동거를 할지, 제도에 묶이는 법률혼을 선택할지, 둘만으로 괜찮을지, 아니면 아이를 낳을 것인지 등 모든 것들은 선택의 문제인데 선택 앞에서는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왕왕 생기곤 한다. 친구는 결혼에 대한 의견차를 극복하지 못했고 나이가 더해질수록 서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확률이 적어질 테니 타협할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서로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남 일처럼 들을 수가 없었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 사이에 그런 일은 빈번했고, 어쩌면 그 일이 내 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친구는 헤어지면서도 울지 않았다고 씩씩하게 이야기했지만 이야기 말미에 오 년이면 아이를 낳아 길렀어도 벌써 말하고 뛰어다닐 나이가 되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사랑으로 엮인 관계라고 해도, 아무리 가까운 연인이라도 상대는 타인이다. 내 마음과 같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희박하고 그 간극을 확인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사랑하는 마음과 별개 일 수도 있다.
나는 친구에게 우리만의 룰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것은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품앗이인데, 제법 쓸만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연애의 시작보다 끝에 더 호들갑을 떨며 소문을 낸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 사이에서의 말은 반나절만에 모두에게 도달한다. 그리고는 너도나도 위로할 태세를 갖춘다. 우리에게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데,
1. 이별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언제가 됐든 이별한 친구의 전화만큼은 받는다.
2. 위로는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한다.
상대가 너무 미워 욕을 하고 싶다면 함께, 너무 그리워 울고 싶다면 마음껏 울 수 있도록 말을 아낀다. 그런 식으로 몇 주, 길게는 두어 달쯤이면 대부분 자신의 트랙으로 다시 돌아간다. 나 역시도 일을 하는 시간을 빼고는 전화기를 벨소리로 바꾸어두었다. 친구는 전화가 와서 훌쩍훌쩍 울다 화를 내고, 아무 말 없이 멍하게 있다, 꾸벅꾸벅 졸 때가 되어서야 끊어도 되겠다고 했다. 나는 그저 혼자 있는 마음이 너무 고되면 우리 집에 며칠이라도 와 있으라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나도 이별할 때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글을 남겼던 적이 있다.
‘나, 헤어졌어. 이유가 다들 궁금할 텐데 설명하기엔 너무 지쳐서 내가 막 기분이 널뛰더라도 이해하고 당분간만 받아주라.’
아무도 이별의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매일같이 끼니는 챙기고 있냐는 안부를 묻는 톡이 여러 곳에서 왔고, 밤이 너무 길어 겁이 날 땐 누구에게든 전화를 걸었다. 어떤 날은 그저 소음이 필요해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친구는 말없이 전화기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업무를 보기도 했다. 그런 도움으로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또 혼자 두 발로 설 기운이 났다. 그래서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고, 괜찮은 채로 살다가 괜찮은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주저앉는 것이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각자의 크기로 있었다. 엎드려 우는 몸 위로 얹어지던 따뜻한 위로들이, 실없지만 다정한 농담들이, 있는 힘껏 안길 수 있던 품이 존재만으로 서로를 지키던 세월로 그걸 증명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단단히 버티고 있는 마음들.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들.
"우울한 건지 뭔지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자정까지 사무실에 있거든, 빨래도 주 초에 하고 개지도 않고 있어. 지금도 사무실이고. "
"쓸데없는 데다가 돈 쓰지 말고 집을 좀 치우고 조금이라도 꾸며. 그래야 들어가고 싶은 맛이 나지. 환기도 시키고 좋은 향 나는 디퓨저도 하나 사다 놓고."
장황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진아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퇴근을 하고도 집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차에 몇 시간이고 늦은 밤이 되도록 앉아있던 내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로 대신 현실적인 방안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알고 지낸 세월 동안 넘어지고 잠기고 하는 걸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따뜻한 말이 아니어도 서로 척하면 척 알아들을 수 있는 사이. 나는 쿠션어를 덕지덕지 붙이지 않아도 되는 이 관계를 참 좋아한다.
요즘은 어떤 된장이 맛있고, 어떤 라면이 맛있고, 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마음속의 근심도 덜어지는 것이다. 삼십 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주변에 각자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있지 않은 친구들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비단 나이의 문제라기보다는, 견디는 힘이 조금 더 생기면서 밖으로 말하게 되는 경우가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하고. 내게는 서른이 되기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친구가 둘 있다. 잔잔한 물처럼 고요하게 떠난 친구들. H는 내가 사회생활을 갓 시작해 허덕일 때 떠났는데, 내 생일 한 달 전 즈음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야근을 하는데 전화가 와 뜬금없이 생일 인사를 하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너무너무 바쁘다는 내 말에 쉬엄쉬엄 하라며, 보고 싶다고 했고, 나도 보고 싶다고, 바쁜 일이 끝나면 만나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전해진 부고.
나는 오래도록 H에게 마음은 괜찮은지, 별 일은 없는지 물어보지 않은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말해주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순간들이 삶에 참 많은데 그중에서도 아마 눈 감는 순간까지 잊지 못할 일. 그렇게 H는 내 기억 속에 영원히 그 나이로 남았다.
그 후로는 오히려 내게 어려움을 말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묘한 안도감이 생기곤 했다. 찰랑찰랑 컵에 한가득 넘쳐흐르기 일보직전인 때, 어떻게든 털어놓고 위로받고 같이 이야기하며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들, 그 순간에 기회를 준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컸다.
진아가 말하는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 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을 잘 안다. 주먹만 한 먼지가 굴러다닐 때까지 손 하나 까딱하지 못했던 때가 내게도 있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곁에서 떠드는 내 말이 큰 도움이 되는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태를 묻고, 작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제안하며 곁에 있는 것은, 늘 그 말에 위로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날은 분명하고 확실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아서이다. 백번에 한 번이든, 천 번에 한 번이든, 그 한 번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래도 청소를 해보자. 어차피 크지도 않잖아, 집. 쉴 수 있는 상태로만. 사실 울적할수록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게 주변정린데 잘 안되지."
사무실 의자에 반쯤 드러누워 응, 맞아하고 대답하는 걸 듣고 있자니 말한 대로 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와중에 내 목소리는 들어주고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싶던 날. 결국 내가 온 집을 뒤엎어 대 청소를 하며 내 마음에 앉은 먼지들을 닦아내고는 이 기운이 진아에게도 닿길 바라며 평소와 다름없는 인사를 건넨다. ‘밥은?’ 그 안에 담긴 잘 지내냔 안부와 네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
나도 그랬고, 그러고 있고, 그러고 있을 일들. 내 일이 아니지만 내 일이기도 한 그런 일들을 함께 겪어내다 보면 또 새로운 길이 열리겠지, 열리지 않더라도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조금은 선명해지겠지. 위로는 상대에게 닿고 다시 되돌아와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경계하지 않아도 좋은, 등을 보여도 괜찮은 관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오늘이 마냥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며 모두가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