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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Mar 26. 2024

엄마의 자존심

지켰다.


 지난 1월, 글을 올려야지 하고 썼던 글을 두어 달이 지난 이제야 올리면서 이제 다시는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묵은 이야기를 하며 지나간 시간을 마무리하고,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기로 한다. 늦었지만 어서 오세요, 2024년!






 참 길고 긴 오개월이 지났다. 마음이 적당히 힘들 땐 글로라도 뱉을 수가 있는데 그 선을 아득히 넘어버리면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오개월. 영이 다녀가고부터 가시밭길이 시작되었다. 연애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모르고 있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끝. 나는 산산조각 났고 산산조각 난 채로 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파도에 휩쓸리던 때는 한 없이 흔들리더니 오히려 심연으로 가라앉으니 고요하기만 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날 굴러다닌다고 투덜댔는데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살이 15kg 이상 빠져버려 상황과는 반대로 예쁨을 되찾았지만(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었다. 혼자 있는 일이 위태로워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고맙고 미안하게도 가까운 친구들은 함께 마음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었다. 다른 이의 애정에 기대지 않고 온전히 이 연애의 맺음을 혼자 해보겠다고 말하며 매 분 매 초 무너지고 일어서는 나를 지켜보는 따뜻한 마음들이 얼마나 귀했는지….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한 사람을 온전히 덜어낼 만큼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별하고 나면 누군가가 금세 다가오고, 고백을 해 오고… 그러면 나는 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지나간 사람의 잔해도 어영부영 잊히곤 했었기 때문에 늘 타인에 기대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선택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다 한 만큼 그 마음을 비워낼 시간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 하고 싶었다. 연애는 함께 했지만 이별은 내 몫이므로 혼자 맺음을 잘해야 앞으로가 있을 거라 믿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갈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아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새로운 취미를 몇 가지 더 만들었고, 매일 일기를 썼고,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도 무너지는 날에는 상담을 받기도 했다. 깨어져버린 믿음과 함께 어디부터가 거짓이었을까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완전히 이별에 매몰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기 때문에 상담가 선생님을 찾을 때 말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제 연애패턴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숨지도, 피하지도 않고 온전히 받아내고 씹어 삼켜서 소화시키고 싶어요. 상대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저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알고 싶어요. 저는… 이제는 정말 다르게 살고 싶어요.」


 나는 헤어지고 끊임없이 어떤 연애를 했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비단 최근에 끝난 연애에 대한 성찰뿐 아니라 살며 지나온 숱한 관계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상대에게 상처받았단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굴곡진 순간들을 지나면서도 어김없이 ‘나’로 있어야 하는 ‘나’였다.






 무엇이든 해야 했던 때에 나는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함께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었고, 거기에 이별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어떤 때은 하루에 두 편을 쓰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일주일이 다 되도록 한 자도 쓰지 못한 날들이 있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워 빈 창을 열어두고 울기만 하다 꺼버리기도 하고, 간신히 쓰고 며칠을 앓기도 했다. 그래도 거짓말처럼 글로 덜어둔 마음은 그만큼 크기가 작아져 견딜만 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던 일기가 맺음을 짓게 된 것은 예상치 못한 어느 날 아침의 일이다. 수 없이 떠오르던 것들의 빈도가 줄기 시작했다. 헤어질 때 정했던 몇 가지 룰이 있었는데 그중 세 번째가 저절로 되는 걸 깨달은 날이었다.


 -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일들을 상상하지 않는다.


 독하게도 끝까지 시원하게 알 수 없었던 일들이 더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아침, 나는 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자매님, 드디어!!! 저에게 평화가 왔습니다!!!]

 [세상에, 자매님!!! 아주 기뻐할 일입니다! 할렐루야! 얏호!]


 이어지는 대화를 다시 읽어보니, 영은 내게 다행이라는 말을 네 번이나 했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처참하게 상처받은 그 지독한 시간들을 견디게 해 주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오래도록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이었다. 울면서도 꾸역꾸역 글을 쓰던 나를 안타깝게 보면서도 응원 가득, 살뜰하게 챙기던 진아, 울며 이야기하던 내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울던 혜은, 밤낮으로 못 견디겠다고 우는 나를 묵묵히 견디던 영과,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언제든 찾으라던 경이(실제로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래서, 행복하니?라고 문자를 보냈었다.) 소식을 듣고 당장에 달려온 몇몇 친구들과, 비슷한 시기에 이별을 겪어 너털웃음 짓던 언니, 그리고 환이까지 다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


 헤어지던 날, 무슨 정신으로 일을 했는지도 모를 일과를 마치고 나는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 헤어졌어. 내가 마음이 좀 힘들어서 연락이 잘 안 되더라도 어떻게든 이겨내 보려고 용쓰고 있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 내가 한 번씩 안부 전할게.]


 그리고 엄마에게 온 답장.


 [그래…. 니가 많이 힘들겠다. 너무 힘들어하면 몸 상한다. 너는 더 힘든 일들도 이겨냈잖아. 다른 거 생각 말고 너만 생각해.]

 [응 그럴게. 나도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어. 혼자서 잘 이겨볼게. 고마워 엄마, 사랑해♥]

 [그래, 나는 걱정 안 해, 너는 시행착오도 많이 겪어서 이겨내는 방법도 더 잘 알 테니…. 더 나아질 거다.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다. 더 좋은 사람 만날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고 더 좋은 기회를 만나기 위한 준비기간이라고 엄마는 믿어. 화이팅!!!]


 퇴근길에 엄마의 답장을 읽으며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며 운전을 했다. 그래도 다 컸다고 눈물 때문에 앞 안보일까 봐 부지런히도 닦으면서 운전하네, 하는 생각을 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엄마와 짧은 문자를 나눈 후, 직접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헤어지고도 며칠이 지난날이었다. 울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어 전화를 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눈물보다 먼저 마중 나온 콧물, 훌쩍이며 이야기하는 내 말에 엄마는 간간히 대답을 할 뿐,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끊기 전 씩씩하게 나 괜찮아! 하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내게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딸이 어떤 년인데 당연하지!


 엄마와 전화를 끊고도 한참을 차에 웅크리고 앉아있다 집으로 들어가는데 진동이 울렸다.


나를 해치면서까지 지킬 인연은 없어. 인연이 아닌 거였다.

뜨거운 햇볕아래 하루종일 서 있었던 건 음식이 아니라 너야.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마음의 안식을 찾으려고 널 택한 것뿐이야.

두 번 연락하는 건 엄마까지 자존심상하게 하는 거다. 명심해.


 엄마의 자존심…. 이를 꽉 물었다. 우리 엄마 자존심은 지켜줘야지. 그 말로 끝까지 버텨냈다.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건 엄마의 자존심, 그리고 자부심인 나.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더는 눈물이 나지도 괴롭지도 않다고, 엄마 자존심, 내가 끝까지 지켰다고 가슴을 한껏 펴고 말하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잘했다, 엄마는 하나도 걱정 안 했어’.


 상대가 내게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찾고, 나를 등졌을 때도 나는 끝끝내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는 오래 괴로웠다. 사실 하고자 했다면 둘 다 처절하게 망가지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망가질게 아니라 그 사람을 망가트렸어야 했다고 후회를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그래서 그렇게 반복하며 살도록 두는 것이 훨씬 큰 벌이 될 거라고 악에 받쳐 생각하기도 했다. 그 속에 그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감정이란 것이 끝 하고 외치자마자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차라리 다른 사람의 존재는 모르고 헤어졌더라면…. 하는 생각과, 몰랐다면 내가 이렇게 이를 악물고 그 사람을 떨쳐내기 위해 발버둥 칠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 사이에서 내 안에 남은 것이 사랑인지 분노인지 알 수 조차 없었다. 하지만 끝이 있었다. 희한하게도 헤어짐을 말하는 순간에 관계는 끝이 났는데 나의 끝은 헤어지고도 시간이 더 지난 후에야 왔다. 그 끝을, 나 혼자 보았다.






 훌쩍 털고, 벗어던진 채로 새해를 맞이했다. 지닌 물건의 대부분을 버렸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순간의 의미를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사는 내가 오래도록 망설이며 미루던 일이다. 결정과 다르게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고 새해를 알리는 불꽃을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맞이하는 새해, 이제는 해가 바뀐다고 해서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쉬움 없이 두고 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한 뼘 자랐구나-하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나아졌는가.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야 내린다. 적어도 나는 그때처럼 불행하지 않다. 그때처럼 마음이 괴롭지도 않고, 그때처럼 슬프지도 않다.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느냐보다 지금을 사는 내가 괴로움에 발버둥 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움과 원망,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말하지 못할 많은 이야기들을 뒤로 남겨두고 나는 이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생애 처음 완전한 맺음을 하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내 곁에는 많은 이들이 있다. 당신보다 더 소중한 딸을 가진 우리 엄마, 매일을 함께 발맞춰 걸어 나가는 좋은 사람들. 끝이 나지 않는 괴로움은 없다는 것, 헤어짐으로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나에겐 그것을 혼자 이겨낼 내면의 힘이 생겼다는 걸 확인하는 귀한 경험을 했다. 그래…. 잃은 것만 있었던 건 아니지. 그것으로 완전한 맺음을 지으려고 한다. 더는 미워하지 않기로, 그래서 스스로 괴로워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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