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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잉 Mar 07. 2024

패키지여행 한번 믿어보자!

너무 믿다 내 발등을 찍었다

호기롭게 떠났으나 아픈 기억으로 남은 베이징 자유여행을 극복하고, 다시 찬란한 모녀 여행의 역사를 써야 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패키지여행이 아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과 바람으로는 프랑스나 스페인, 또는 스위스가 어떨까 싶었다.

그러나 그 나라들은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다. 새로운 여행으로 마음의 빚을 세탁해 보고자 가는 여행인데, 이코노미석을 감행했다간 시작부터 진이 빠지는 여행이 될 것이 뻔했다. 난 아직 비즈니스석 두 자리를 턱 결제할 만큼 경제적으로 성숙지 못하다.


더군다나 길치에 어수룩한 내가 엄마와 둘이서 예술의 도시 파리를 탐방한다? 그건 분명 베이징 여행보다 더한 눈물의 후속판이 보장된 선택일 거다. 애초에 우리 부부 호캉스라도 떠나라고 엄마가 주신 용돈에 조금 더 보태 떠나는 여행이다. 유럽 국가들의 여행 예산은 아주 많이 웃돈을 얹어야 하니 최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 결국 정신 차리고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유럽여행의 환상은 금방 포기했다.  


내가 가 본 곳 중에 한 곳을 가게 된다면, 나도 한결 더 편한 마음으로 엄마를 챙기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해 본 대만이나 홍콩은 우기였거나 태풍이 지난다는 소리가 있어 넘겼다. 일본이 가장 무난한 선택지일 듯한데 겁도 많고 걱정도 많은 나는 혹여나 앞으로의 임신준비에 괜히 조금이라도 석연치 않은 구석을 남기게 되진 않을까 하여 크게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국내 지리조차 어두웠던 내게 그동안 일본은 어떤 구별도 없이 그냥 뭉뚱그려 일본일 뿐이었다. 


16년 전 고등학생 때 한 번, 스물여섯 살 회사 휴가 내고 한 번 오사카와 도쿄 쪽에 가보긴 했다. 두 도시 외에 다른 지역은 어디가 어디에 위치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일본이 정말 큰 나라여서 가볼 만한 지역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도 간과했다.  

일본여행을 자주 다니는 친구들이 삿포로는 겨울에 정말 멋지지만 여름에도 멜론과 라벤더밭을 즐기고, 온천욕으로 시원한 여름밤을 보내기에 제격이라고 적극 추천했다.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라면 여러모로 괜찮겠다!

드디어 삿포로를 중심으로 한 3박 4일 홋카이도 패키지로 결정했다.


행선지는 정해졌겠다, 언제 가면 좋을까?


나는 즉흥적으로 아주 가까운 시일에 큰 행사를 치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평소대로라면 이런 중요한 일정은 몇 달 후로 계획했을 것이다.

그 순간 엄마가 늘 나에게 대범해지라, 그렇게 매사 다 신경 쓰고 살면 피곤하지 않냐고 한 마디씩 던지던 것이 떠올랐다. 한 번씩 이렇게 섬광처럼 스치는 계시에 종종 잘못되거나 성급한 선택을 내리곤 한다.





그래, 그럼 이왕 여행 가기로 마음먹은 거
최대한 빨리 즉흥적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나도 얼마든지 쿨할 땐 쿨하게 바로 떠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대략적인 그림을 마음속으로 그려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열흘 뒤쯤에 일본 북해도 쪽으로 3박 4일 패키지여행 가는 거 어때?"


엄마는 예의 그 "얘는 뭘 또 그런 걸!"로 시작하여 다소 들뜬 말투로 화답했다.

"너무 당장 아니야? 가능이야 하지!"


패키지여행이면 그냥 몸만 가면 되는 건가? 패키지여행을 한 번도 이용해 본 적 없던 나머지 지나치게 안심했나 보다.

호탕하게 웃으며 열흘 뒤 떠나는 일정을 예약해 버렸다. 잔금까지 빛의 속도로 결제했으니, 이제 떠나면 되는 거지?


여행 준비로 부담에 짓눌렸어야 할 마음이 낯설도록 가볍다. 민들레 홀씨 같은 가뿐함이다. 바람 타고 구름 따라 편안히 몸을 내맡기면 되는 여행이라니!





그런데, 큰일이다. 해외여행을 자주 가지 않았던 엄마의 여권이.... 3개월 뒤에 만료되는 것이었다! 


갑자기 일기 예보에서 우리가 출발하는 바로 그 주말에 무시무시한 장맛비가 쏟아져 내릴 것이라고 연신 떠들고 있다.  


엄마의 여권 유효 기간도 충분치 않고, 새벽에 출발하는데 엄청난 물폭탄이 예상된다니! 


나는 속이 마구 울렁대는 것을 느끼며, 애먼 엄마에게 짜증을 내거나 초조함을 비추지 않으려 노력하며 (실패)

상황을 제대로 바로잡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줄 세우려 노력했다. 임기응변에 약해 온몸이 허둥대며 흔들린다.


우리... 잘 떠날 수 있겠지?






새벽 공항 가는 길에 통과하게 될 무서운 장맛비를 걱정하기 전에, 유효기간이 임박한 엄마의 여권으로 무사히 공항 수속이 가능할 것인지가 우선이었다.


여행을 가자고 한 것도, 사전 점검 없이 바로 다음 주로 여행 일정을 잡아 버린 것도 나인데 엄마가 매우 바빠졌다. 엄마는 서둘러 여권 재발급 기간이 가장 적게 소요된다는 곳을 찾았다. 


나는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여권 재발급이 늦어질 것 같다고 일정 변경을 요청할 것이었다. 장맛기간이라 그런 걸까? 아무리 통화 버튼을 눌러도 여행사와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다. 절박한 마음으로 쉬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200통 정도 시도하니 다행히 담당자분과 연결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여행 날짜도 변경하고, 엄마의 여권도 재발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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