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해 무얼 못하리
카야잼을 만난 건 싱가포르 첫 여행에서였다. 사랑에 빠지길 4년, 나는 이제 카야잼의 나라 싱가포르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카야 신의 빅 플랜 아니었나 싶다.
나는 하나에 빠지면 미친 듯이 그것만 먹는 스타일이다. 대학교 때 치즈 케이크가 그랬고 대만 어학연수 때 파인애플 케이크 (펑리수)가 그랬고 직장 생활 때 칼로리 밸런스가 그랬다. 파인애플 케이크의 장인을 찾겠다고 주말마다 타이베이 전역을 뒤지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모두 2년 정도 지나면 시들해졌으니 영혼의 단짝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놈은 다르다. 첫 입을 베어 무는 순간부터, 소리부터가 그랬다. 바야흐로 2015년 11월, 카야 토스트를 처음 만난 그 날 나는 카야잼의 나라, 싱가포르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혼을 갈아 넣은 맛, 카야잼. 처음 맛을 보았을 때 나의 첫마디는 “이게..... 뭐야?”
카야잼의 기원은 19세기 영국의 통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배에서 부엌일을 하면서 돈을 벌던 하이난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캐러멜로 토스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고 그 후 싱가포르인들이 캐러멜 대신 판단 잎을 이용하여 만들면서 카야잼이 탄생하게 된다. KAYA는 말레이시아어로 달걀의 달콤한 맛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주재료는 판단 잎, 코코넛 밀크, 그리고 달걀이다.
코코넛 밀크도, 달걀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판단 잎의 향기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이게 뭐라고 바에 가면 판단 잎이 들어간 칵테일은 무조건 시킨다. 약간은 인위적인 진한 연두색의 음료는 때깔부터 남다르다. 판단 특유의 냄새는 전생에 싱가포리언이었나 싶을 정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나의 싱가포르 친구들이 부지런히 카야잼을 사다 주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때문에 홍콩에서 완벽한 카야 토스트집을 찾았을 때 나는 잠시 흔들렸다. 이거 홍콩에 눌러앉아야 하나? 허허 큰일이군. 하였지만 역시 본고장의 맛은 저버리지 않는다. 크리미한 카야잼이 진득하게 들어간 카야 토스트도 일품이지만 나는 빵을 압축해서 짭짤한 버터와 함께 먹는 카야 토스트가 더 끌리는 것이다. 단 맛이 입천장을 강타하는 바로 그때 버터의 짠맛이 혀의 돌기들을 자극하여 입천장과 혀를 부지런히 비비게 되고 그러면 눈 앞의 토스트는 순 삭.
백 투더 베이직이지만 가끔씩 나는 카야잼의 귀여운 변형 디저트들도 좋아한다. 카야잼에 대해 이렇게나 긴 글을 쓰게 해 준 오늘의 디저트는 카야 포키이다. 나의 유별난 카야 사랑을 존중해준 싱가포르 친구가 기특하게 내 생각이 나서 샀다며 건네 준 카야 포키. 커피 포키와 카야 포키를 한 번에 먹으면 어떤 맛일까.
아무튼 카야잼은 앞으로 나의 싱가포르 생활에 원동력이 될 예정이며 나의 다이어트에 큰 적이 될 예정이다. 영원히 카야잼 전도사가 되어 살겠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