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에 빗물이 들어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쓰는 일기.
아침부터 하늘이 꿀렁꿀렁했다. 한차례 비가 다녀갔지만 그친 것이 아니라 잠시 숨 돌리고 다시 내리는 게 동남아의 하늘인 걸. 점심쯤 집을 나왔을 때도 하늘색이 심상치 않았다. 버스에 올라타고 내리는 데 15분. 그 15분 사이에 폭우가 내리더니 이내 그쳐 다행히 비를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후 하늘은 내게 그렇게 친절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왠지 요가학원까지 걸어가고 싶었고, 한 시간이나 일찍 나온 김에 화장품 가게에 들러 괜히 향수를 한 번 둘러보았다. 친구와 전화를 하고 있는데 강수연이 죽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기분이 울렁거렸다.
하늘은 멀리에서나마 안타까운 별이 세상을 떠났음을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싱가포르는 날씨에 따라 통신상태가 좌우된다. 그렇게 전화가 끊겼을 때 알았어야 하나보다. 나는 초행길을 걸어 부기스에서 인도인 마을에 도착하였고 그때부터 땅을 부수듯 내리는 비가 시작되었다. 잠시 우산을 살까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이내 뛰어가면 금방이겠거니 하고 뛰어갔다. 그리고 시작된 미로 찾기.
길치가 폭우를 뚫고 뛰어가는데 초행길을 잘 찾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앞머리를 시원하게 올리고 노트북이 든 가방을 껴안으며 열심히 달려갔다. 요즘따라 상태가 메롱인 구글맵은 그렇게 맛이 간 채로 나에게 자꾸 반대방향을 가리켰다. 수업 시작 5분이 지나고 막다른 골목에 멈춘 나는 이내 포기하였다. 남의 아파트 단지까지 들어온 나는 단지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어떻게 해서도 이 길을 뚫고 요가학원에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비를 뚫고 집에 가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노트북을 꺼냈다.
아까 우산을 살 걸, 수업 불참비는 얼마였더라, 저녁은 무엇을 먹지,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 쓸데없이 끄적인다. 이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고 싶은 마음 반절, 그냥 택시를 부르고 싶은 마음 반절. 이렇게 나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요가원을 앞두고 아파트 공터 의자에서 일기를 빌려 푸념을 해본다. 자포자기로 페이스북을 켜 시답잖은 영상을 보기를 30분, 그 사이가 사람들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비가 그쳤다. 동쪽 하늘에서 짙은 먹구름에 구멍을 낸 해가 밀려들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6시 - 요가가 끝날 시간. 나는 요가원을 지나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갔다. 왠지 국밥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맥주까지 한 입 하고 싶은 저녁이다.
진짜 치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