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콜리어 (John Collier) 1898년 작
오늘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저명한 화가 존 콜리어(John Collier, 1850-1934)의 1898년 작품, 레이디 고디바(Lady Godiva)를 가져왔습니다.
콜리어는 아카데믹한 기법과 사실주의적 묘사를 바탕으로 역사, 신화, 문학적 주제를 극적이고 섬세하게 표현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천년 가까이 전해져 내려오는 고귀한 전설을 그의 탁월한 예술성으로 시각화한 걸작입니다.
1. 그림 속으로: 전설이 된 한 여인의 희생
순백의 장엄한 말 위에 벌거벗은 채 앉아 있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말의 표정이 숭고한 여인의 희생을 아는것 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길고 붉은 머리카락은 숙여진 고개를 따라 시선과 함께 아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그녀의 모습과 표정은 수치심과 결단, 그리고 슬픔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말은 붉은색의 화려한 장식 천으로 치장되어 있으며, 그 위에는 사자가 그려진 문장이 새겨져 있는 걸로 보아 이 여인은 귀족 가문의 여인임을 알수 있습니다.
배경은 소박하고 견고한 중세 시대의 석조 건물들로 이루어져, 전설의 시대적 배경을 암시합니다.
2. 구도와 색채: 섬세함 속에 담긴 드라마
콜리어는 이 작품에서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구도를 사용했습니다.
말을 탄 레이디 고디바가 화면 중앙을 압도하며 시선을 즉각적으로 사로잡도록 했습니다.
말의 옆모습은 강한 수평적인 안정감을 주며, 그 위에 앉은 고디바의 연약하지만 결연한 모습과 대비됩니다.
그림의 색채 팔레트는 전반적으로 차분하지만, 강렬한 대비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여인의 창백한 피부는 말의 붉은색 장식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그녀의 연약함과 희생을 강조합니다. 배경의 회색빛 석조 건물들은 차분한 분위기를 더하며, 인물 더욱 집중하게 만듭니다.
콜리어의 붓질은 매우 매끄럽고 정교하여, 인물의 피부 질감, 머리카락의 흐름, 말의 털과 장식 천의 직물감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당시 아카데믹 회화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3. 화가의 시선: 빅토리아 시대의 내러티브
존 콜리어는 당시 영국 왕실 예술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런던의 슬레이드 미술 학교, 파리, 뮌헨 등지에서 수학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다졌습니다.
특히 역사적 사건이나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리는 내러티브 페인팅(Narrative Painting)을 통해 교훈적이거나 영웅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는데, 이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의 도덕적이고 엄숙한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는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영향은 받아 라파엘 전파의 특징인 세밀한 묘사, 선명한 색채, 그리고 문학적 주제들이 그의 작품에 녹아 있습니다.
4. 관음증의 유래, 피핑 톰Peeping Tom
레이디 고디바의 전설은 11세기 코번트리(Coventry) 백작 레오프릭(Leofric)의 아내였던 고디바가 남편의 폭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을 위해 맨몸으로 말을 타고 시내를 가로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백성들은 그녀의 희생을 존중하여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지만, 그 마을의 재단사인 '톰' 만이 엿보다 그 즉시 눈이 멀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이 일화로 '피핑 톰(Peeping Tom)'은 훔쳐보는 사람(관음증Voyeurism, 관음증 환자)을 뜻하는 일반적인 명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불법 촬영/엿보기등 단순히 훔쳐보는 행위를 넘어서, 사생활을 침해하는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도 사용됩니다.
콜리어의 이 작품은 고다이버의 행위가 단순히 벌거벗음의 스캔들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숭고한 자기희생과 깊은 연민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녀의 고개 숙인 모습과 시선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수치심을 알면서도, 백성을 구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도덕적 용기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녀의 몸을 가린 머리카락은 그녀의 수치심과 함께 전설 속 순수함을 상징하며, 빅토리아 시대의 엄숙한 도덕적 기준 속에서도 누드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콜리어의 섬세한 접근을 엿볼 수 있습니다.
5. 인간의 존엄성을 노래하다
한 여인의 전설적인 용기와 희생을 극적이면서도 섬세하게 포착한 명작입니다. 무엇보다 아래 첨부된 고디바 부인을 그린 그림들중 이 그림 속 고디바 부인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부인의 희생과 용기가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