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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청춘 Mar 06. 2016

이제서야 나는 알았다

Miles Davis - Spanish Key


올 5월이면 마일스 데이비스가 90번째 생일을 맞는다. 살아 있는 사람도 아니고 100번째도 아닌 생일이 어떤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를 위해 며칠 간 그의 앨범들을 차근차근 들었다. 오래 전 매일이 재즈로 인해 새로웠던 날들이 떠올랐다. 낭만적이었고 뜨거웠던 내 청춘의 시간들. 그 시간들로부터 내 삶이 멀어진 것처럼 재즈 또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시간으로부터 멀어졌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가 떠난 이후 25년간 재즈는 분명 많은 분화를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시대를 아우르는 힘은 잃어버린 것 같다.


물론 이에 대해 마일스 데이비스의 책임이 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안다. 예를 들면 앨범 <Bitches Brew>로 인해 재즈는 끝장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에 대해 나는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심지어 찰리 파커가 재즈를 망쳤다고 하는 극단적인 사람들도 보았으니 말이다. 그냥 다 개인차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무튼 모처럼 그의 앨범들을 들으며 그의 음악이 지닌 탈시간적 아름다움을 새삼 느꼈다. 그 가운데 앨범 <Bitches Brew>는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무엇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진다. 사실 조금 더 두 번째 퀸텟의 신비롭고 이지적인 음악이 이어진 후에 퓨전 재즈를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면서도 이 앨범이 지닌 아름다움으로 인해 그 아쉬움을 잊게 된다.


이번 감상에서는 “Spanish Key”가 인상적이었다. 이 곡을 들으며 나는 몸을 흔들었다. 퓨전 재즈라고는 하지만 지금의 달달하고 단순한 팝 적인 재즈와는 달리 집단적인 연주가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연주에서 흥겨움을 느꼈다는 것이 어쩌면 이상할 지 모른다. 그렇다고 집단적인 연주가 주는 주술적 힘에 이끌려 넋 나간 움직임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솔로들의 이어짐 뒤로 흐르는 반복적인 리듬의 펑키한 맛에 몸이 반응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나는 연주자들이 어지러운 과정에서도 서로의 자리를 찾고 어울리는 것에 감탄했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어쩌면 지금도) 낯선 음악에 신기해하고 실험적 자세로 조심스러워하기 보다는 원초적인 리듬에 몸을 맡길 줄 알았다. 자신이 즐겨야 감상자들도 즐길 수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고 나서야 나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당시 대중 음악의 중심에 있던 록 음악으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가져오기 위한 음악으로 이런 음악을 만들었는지 깨달았다. 왜 그의 바람대로 당시 이 황당할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게 ”보이는” 음악에 당시의 대중들이 움직였는지 알았다. 그들은 몸으로 음악을 느꼈다. 멜로디, 리듬, 화성 등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밴드 전체의 움직임이 만들어 낸 사운드 덩어리가 주는 열기를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부끄럽게도 이제서야 나는 이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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