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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청춘 Oct 21. 2015

가슴이 시큰거린다

6시 18분 지하에서 올라오니 거리에 밤이 내려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낮의 기운이 붉은 노을 속에 사라지는 것 정도는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다.


낮에 마신 술 탓일까? 불현듯 나타난 6시의 밤을 느끼며 집으로 향해 걷는 중 괜스레 가슴이 아려왔다. 사실 이 맘 때면 늘 찾아오는 감정이지만 중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머리를 흔들고 이불을 차게 될 유치한 감상임을 알면서도 모른 채 할 수 없다.


어쩌면 매일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는 일상이란 것에 만족하고 그것이 큰 탈 없이 지속되기를 바라면서도 가슴 한 쪽에는 여전히 몸 속을 흐르는 피의 속도를 곱절 이상으로 흐르게 만드는 사건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소년 시절 처음 이유 없이 가슴이 찌릿해져 오는 것을 느꼈을 때도 나는 극적인 무엇이 펼쳐지기를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처럼 바라고 기다렸던 것 같다.  


지하철 역 앞의 인파를 거쳐 집으로 향한 주택가의 인적 없는 골목길로 접어 들었을 때, 다섯 가닥 전선줄 사이에 초승달이 ‘파’음을 내며 떠 있을 때 데이빗 실비앙이 떠올랐다. 아니 그의 그윽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주 좋아한다고 할 수 없으면서도 괜한 애착을 지닌 아티스트이다. 그의 음악은, 아니 허무와 허망으로 가득한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찾아 온 밤처럼 불쑥 머리 속에 떠오른다.


확실히 그의 음악은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마음의 여린 속살이 노출되었을 때 들으면 좋다. 글쎄. 이것을 위로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의 노래는 그냥 마음을 더 가라앉게 하고 속살을 더 건드려 시큰거리게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뒤로 다시 마음이 평온해 진다. 꼭 기분이 상승하고 외적 자극에 결계를 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뭐랄까?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 계절이 바뀔 때 감기몸살을 앓고 나면 자연스레 그 시간에 적응이 되는 것처럼 그의 음악은 우울한 가을의 문턱을 넘어 다시 그 안에서 내 자리를 찾게 만든다. 어떤 극적인 사건을 경험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데이빗 실비앙의 앨범은 다 좋지만 그래도 이 가을에는 <Secrets of the Beehive>이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앨범의 건조한 사운드와 목소리 모두가 떨어진 낙엽 같다. ‘Orpheus’, ‘When Poets Dreamed of Angels’, ‘Let The Happiness In’같은 곡이 특히 그렇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When Poets Dreamed of Angels’를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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