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선청춘 Nov 05. 2015

한 때 나는 공책에 관심이 많았다.

낮에 외부 미팅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지하철 환승통로에서 문구를 싸게 파는 가게를 만났다. 호기심에 가게에 들어가 문건들을 보았다. 필통, 카드 지갑, 셀카봉, 간단한아이들 장난감, 필기구 등 이것저것을 평균 1000원에 팔고있었다. 


물건들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공책들에 눈이 갔다. 예쁜 표지에 정갈하게선이 그어진 노트들. 사람들이 많이 구입하지 않으니 이리 염가로 판매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나는 공책에 관심이 많았다. 공책 종이의 질감에 따라 악필의글씨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책에 따라 영감의 정도가 달랐다. 다 거기서 거기 같은 디자인의 공책들이었지만 기이하게도 느낌이 오는 공책이 있었다. 그 공책의 빈 페이지를 보면 저절로 글쓰기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괜히 이것 저것을 끄적이곤 했다. 나아가 글이 쓰고 싶어 소설, 영화, 음악을 읽고 보고 듣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작은 군인 수첩에 깨알같이 글을 쓰기도 했다. 그 때는공책 하나만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숨길 수 있는 공책!)


하지만 어느덧 나는 공책에 글을 쓰지 않는다. 언제 마지막으로 글을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그와 함께 내 글씨 또한 악필을 넘어 외계의 문자처럼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향수에 젖어 공책을 사지는 않았다. 이미 나는 공책에 글을쓰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몇 페이지 쓸 수는 있으나 끝까지 쓰기는 어렵겠다는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미 나는 과거보다 더 멋진 공책 몇 권을 이미 갖고 있다. 말 그대로 공책(空冊)으로 남아 있는.


가게를 나오는 순간 프랑스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바니 윌랑의 “I WillSay Goodbye”가 생각났다. 며칠 전 오랜 만에 이 곡이 담긴 앨범 <New York Romance>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모든 추억을 지워버릴 듯한 안개 같은 색소폰 음색과 우수 어린 멜로디가 잠시나마 공책들을 보며 떠올린 내 지난 날들과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이면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외로움에 빠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