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 밖의 야생, 스타트업에서 내가 마주한 것들
대기업의 톱니바퀴로 살다가 스타트업의 맥가이버가 되었던 시간.
대기업에서 10년을 보낸 뒤 나를 이끈 것은 '주도성', '스톡옵션', '파이어족'이라는 달콤한 단어였다. 거대한 조직의 부품이 아닌,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갈증. 그렇게 발을 들인 스타트업에서의 시간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생존의 기록'이 되고 말았다.
2년 전 다시 대기업의 안정적인 성 안으로 돌아온 지금, 나는 가끔 그 치열했던 야생의 기억을 떠올린다. 스타트업이 왜 힘들 수밖에 없는지, 그 낱낱의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대기업에서의 고충은 '내 일'의 경계가 너무 좁다는 데서 온다. 처음 입사했을 때 내가 맡은 역할은 솔루션 개발이었지만, 10년 전에 만든 시스템 유지보수와 현재는 사용하지도 않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학습해서 개발하는 역할이었다. 그 어떤 회사도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그런 일들. 전문성을 쌓고 싶어 간 곳에서 나는 '90년대 스페셜리스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기업에서의 실망감뿐만 아니라 수십억(?)이 될 것만 같은 스톡옵션. 즐거운 회사생활, 수평적 구조, 좋은 동료들, 보상이 확실하다는 겉모습만 보고 달려간 나의 첫 스타트업 생활은 기대와 달리 너무 달랐다.
말하는 모든 것이 내 일로 돌아올 뿐만 아니라 개발업무뿐만 아니라 개발과 관련된 인프라 구축 또한 내 몫이다. 조직이 작다 보니 인력도 부족하고 조금의 비용에 인색했다. 대기업에서는 느껴보지 못하는 야생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월급의 출처를 매일 걱정해야 하는 삶.
대기업 시절, 월급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매달 21일이면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의 삶은 달랐다. 대표의 표정이 곧 회사의 잔고였고, 뉴스에 나오는 '투자 혹한기' 기사는 곧 나의 생계 위협이었다.
"우리 다음 달에는 월급 나올 수 있을까?"라는 농담 섞인 진담이 오갈 때의 그 서늘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아무리 잘해도 '시장의 선택'이나 '투자자의 변심' 한 번에 배가 난파될 수 있다는 무력감이었다. 내 커리어의 성패가 나의 역량이 아닌, 회사의 통장 잔고에 저당 잡혀 있다는 사실은 밤잠을 설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스타트업 그 2년, 성장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스타트업 찬양론자들은 말한다. "스타트업에 가면 1년 만에 대기업 5년 치 성장을 한다"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성장은 정교하게 설계된 교육 과정이 아니라, 물에 빠진 사람을 강가에 던져놓고 헤엄치게 만드는 식의 '생존 본능'에 가깝다.
체계적인 사수도, 레퍼런스가 될 과거 데이터도 없다. 모든 것을 맨땅에서 헤딩하며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은 값지지만, 매 순간 '이게 맞나?'라는 자기 의심과 싸워야 한다.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는 오롯이 내 몫이었고, 그 중압감은 10년 차 숙련된 직장인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금 나는 다시 대기업의 시스템 속에 돌아왔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도전 정신이 식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100미터 달리기 선수에게 매일 마라톤을 뛰라고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스타트업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회사가 나를 보호해주고 있었다'는 겸손함을 가르쳐주었다. 동시에,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야생성도 심어주었다. 다만,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 누리는 이 '지루한 평온함'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이제는 명확히 알고 있다.
스타트업은 매력적인 곳이다. 하지만 그곳은 꿈을 꾸는 곳이기에 앞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오늘도 망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다짐해야 하는 전쟁터였다. 나는 이제 그 전쟁터를 멀리서 바라보며, 내가 가진 이 평온한 일상의 무게를 조용히 음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