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간 13년차 직장인

성벽 밖의 야생, 스타트업에서 내가 마주한 것들

by 멜밍
대기업의 톱니바퀴로 살다가 스타트업의 맥가이버가 되었던 시간.


대기업에서 10년을 보낸 뒤 나를 이끈 것은 '주도성', '스톡옵션', '파이어족'이라는 달콤한 단어였다. 거대한 조직의 부품이 아닌,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갈증. 그렇게 발을 들인 스타트업에서의 시간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생존의 기록'이 되고 말았다.


2년 전 다시 대기업의 안정적인 성 안으로 돌아온 지금, 나는 가끔 그 치열했던 야생의 기억을 떠올린다. 스타트업이 왜 힘들 수밖에 없는지, 그 낱낱의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대기업에서의 고충은 '내 일'의 경계가 너무 좁다는 데서 온다. 처음 입사했을 때 내가 맡은 역할은 솔루션 개발이었지만, 10년 전에 만든 시스템 유지보수와 현재는 사용하지도 않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학습해서 개발하는 역할이었다. 그 어떤 회사도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그런 일들. ​전문성을 쌓고 싶어 간 곳에서 나는 '90년대 스페셜리스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기업에서의 실망감뿐만 아니라 수십억(?)이 될 것만 같은 스톡옵션. 즐거운 회사생활, 수평적 구조, 좋은 동료들, 보상이 확실하다는 겉모습만 보고 달려간 나의 첫 스타트업 생활은 기대와 달리 너무 달랐다.


말하는 모든 것이 내 일로 돌아올 뿐만 아니라 개발업무뿐만 아니라 개발과 관련된 인프라 구축 또한 내 몫이다. 조직이 작다 보니 인력도 부족하고 조금의 비용에 인색했다. 대기업에서는 느껴보지 못하는 야생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월급의 출처를 매일 걱정해야 하는 삶.

​대기업 시절, 월급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매달 21일이면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의 삶은 달랐다. 대표의 표정이 곧 회사의 잔고였고, 뉴스에 나오는 '투자 혹한기' 기사는 곧 나의 생계 위협이었다.

​"우리 다음 달에는 월급 나올 수 있을까?"라는 농담 섞인 진담이 오갈 때의 그 서늘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아무리 잘해도 '시장의 선택'이나 '투자자의 변심' 한 번에 배가 난파될 수 있다는 무력감이었다. 내 커리어의 성패가 나의 역량이 아닌, 회사의 통장 잔고에 저당 잡혀 있다는 사실은 밤잠을 설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스타트업 그 2년, 성장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스타트업 찬양론자들은 말한다. "스타트업에 가면 1년 만에 대기업 5년 치 성장을 한다"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성장은 정교하게 설계된 교육 과정이 아니라, 물에 빠진 사람을 강가에 던져놓고 헤엄치게 만드는 식의 '생존 본능'에 가깝다.

​체계적인 사수도, 레퍼런스가 될 과거 데이터도 없다. 모든 것을 맨땅에서 헤딩하며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은 값지지만, 매 순간 '이게 맞나?'라는 자기 의심과 싸워야 한다.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는 오롯이 내 몫이었고, 그 중압감은 10년 차 숙련된 직장인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금 나는 다시 대기업의 시스템 속에 돌아왔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도전 정신이 식었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100미터 달리기 선수에게 매일 마라톤을 뛰라고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스타트업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회사가 나를 보호해주고 있었다'는 겸손함을 가르쳐주었다. 동시에,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야생성도 심어주었다. 다만,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 누리는 이 '지루한 평온함'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이제는 명확히 알고 있다.


​스타트업은 매력적인 곳이다. 하지만 그곳은 꿈을 꾸는 곳이기에 앞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오늘도 망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다짐해야 하는 전쟁터였다. 나는 이제 그 전쟁터를 멀리서 바라보며, 내가 가진 이 평온한 일상의 무게를 조용히 음미한다.

작가의 이전글불안장애, 스트레스 호르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