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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영 Mar 20. 2022

20대 대선, 성별 따라 표심 갈린 이유는?

[취재] 20대 남녀에게 직접 물었다

“내 목소리를 대변해줄 후보자를 선택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취업준비생 소모(27, 여) 씨는 윤석열 당선인이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심지어 여성의 날에까지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등 특정 성별을 타겟으로 한 공약을 내놓는 모습을 보며 이같이 다짐했다고 말했다. 소 씨는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대남 결집’을 목표로 삼는 모습을 보며 1번과 3번 중 한 명을 뽑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다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있는 1번 후보에게 표를 줬다.     


대학교 4학년인 이모(28, 남) 씨는 반대로 이재명이 싫어서 윤석열을 뽑았다. 이 씨는 주변 남성 친구들도 모두 윤석열을 뽑았다며 “(더불어민주당이) 기성세대 남성들이 쌓은 적폐를 20대 남성들이 짊어지게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20대 대선에서 20대 남성과 여성의 표심이 뚜렷하게 갈렸다. KBS·MBC·SBS 방송 3사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이하의 남성 36.3%가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58.7%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꼽았다. 20대 이하 여성은 그 반대였다. 58%가 이 후보, 33.8%가 윤 당선인에게 표를 줬다.     

 

숫자로 나타난 20대 남녀의 표심 차이. 실제 20대 여성과 남성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어도 차이가 뚜렷할까. 지난 9일과 10일, 20대 남성과 여성 유권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별에 따라 뽑은 후보와 이유가 다른 경향을 보였지만 모두 ‘성별 갈라치기’를 정략적 프레임이라고 보는 등 공통점도 있었다.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준 20대 여성들은 “윤석열에 반대하기 위해 투표했다”고 설명했다. 취업준비생 김모(26, 여) 씨는 “주변 20대 여성들 10명 중 6명은 이재명을, 4명은 심상정을 선택한 것 같다”며 “이재명도 싫지만 윤석열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윤석열이 당선되면 반페미니즘 정책이 늘어나고 20대 여성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 같아서 반대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원모(26, 여)씨는 “이준석 당 대표가 싫어서 이재명을 뽑았다는 얘기가 많이 들렸다”고 했다.     


대학생 하모(24, 여)씨는 “대선 레이스 초반엔 심상정을 뽑겠다고 한 친구들이 많았으나, 여론조사 결과에서 윤석열의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온 점과 박지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의 이 후보 지지 연설 및 호소로 인해 이재명으로 옮겨간 친구들이 많았다”며 20대 여성이 이 후보를 많이 뽑은 이유를 설명했다.      


안모(28, 여) 씨 역시 주변 20대 여성 친구들은 ‘최악’인 윤석열 후보를 피하려 ‘차악’인 이재명 후보를 뽑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주변의 남성 친구들은 좀 갈리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 후보를 뽑은 사람도 있고 윤 후보를 뽑은 사람도 있다는 것. 안 씨는 “남성인 친구들 중에서 윤 후보를 뽑은 이들은 이재명 후보의 도덕성 문제를 비판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대학생 최모(29, 남) 씨는 더불어민주당의 젠더 정책에 실망해 윤을 뽑은 이 씨와 같은 이유로 윤석열 당선인에 표를 줬다. 최 씨는 "페미니즘이 (투표에) 영향을 줬다"며 "남성에 대한 차별이 없는 것이 아닌데 민주당은 지금 여성 차별 해소에만 치우쳐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취업준비생 박모(27, 남) 씨는 이 씨, 최 씨와 마찬가지로 윤 당선인을 뽑았지만, 그 둘과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박 씨는 "문재인 정부의 강압적인 규제 정책들이 싫었고 이재명 후보는 욕설한 모습을 보고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2번에 투표한 이유를 전했다.      


이들과 달리 이재명 후보에 표를 줬다는 양모(29, 남) 씨는 대통령을 뽑을 때 젠더 이슈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페미니즘 등 젠더 이슈 자체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 너무 극과 극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 씨는 "사회복지, 경제 정책 등이 괜찮다고 생각해서 (이 후보를) 뽑았다"고 말했다.



20대 남녀 갈라진 표심...원인은 정치적 전략에     


갈라진 20대 남녀 표심의 원인이 정치인들의 ‘성별 갈라치기 전략’에 있다고 보는 건 성별에 상관없이 똑같았다. 김 씨는 “코로나19, 부동산 문제, 취업 문제 등으로 힘든데 젠더 갈라치기로 갈등을 부추기고 20대 여성을 도외시하는 정치에 피로감을 느낀다”며 “(정치인이) 국민을 통합할 생각 안 하고 혐오 부추겨서 갈등만 커졌다”고 비판했다.      


박 씨 역시 “갈라치기로 이득을 얻는 건 정치인”이라며 “정치인 입장에서는 그거(젠더 이슈)를 던져주면 남녀가 서로 물어뜯으니 특정 성별의 지지를 얻기 위한 최고의 선거전략인 것 같다”고 답했다.      


안 씨는 윤석열 당선인의 언행을 콕 집어 20대 남녀의 표심이 갈린 이유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성폭력 범죄 무고죄 신설 공약,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 후보의 발언이 원인이라는 것.     


정모(24, 여)씨도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이었던 여가부 폐지를 남녀 표심이 나뉜 결정적 이유로 꼽았다. 정 씨는 “윤 후보는 20대 여성 유권자를 무시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고 윤석열에 실질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인 이재명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고 속마음을 드러냈다.      


이대남, 이대녀 등은 일부 정치인들이 만든 ‘프레임’에 불과하다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20대들도 적지 않았다. 한 대학교의 커뮤니티에는 “2030 청년들에게 책임 전가하고 성별 갈라치기를 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갈라치기, 편가르기에 휘둘리지 말자는 게시물들에도 70여 명이 공감 버튼을 눌렀다.    

  

안 씨는 “언제까지 이런 게 반복되나 싶어 피로하다”며 “정치권에서 젠더 이슈를 깊이 있게 논의하거나 남녀갈등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대남-이대녀 프레임을 버리고 20대 남녀 목소리를 당 안팎에서 꾸준히 들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젠더 갈등 해결이 쉽지 않다면서도 제도와 교육을 해결책으로 꼽았다. 이 씨는 "남녀 모두 각자의 고충이 있을 텐데 서로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해결책은 남녀 각각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실질적인 성평등 교육”이라고 했다. 박 씨 역시 교육을 통해 국민들의 젠더 이슈, 정치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차별적 구조를 인정하지 않는 한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 거라고 보는 이들도 있었다. 정 씨는 “성차별적인 구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 갈등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갈등이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라면 굳이 해소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하 씨는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으니 소통할 수 없고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논쟁만 계속된다는 입장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젠더 갈등의 구조적인 원인은 일자리 부족 등 청년 세대에 기회 자체가 부족한 것에 있다”며 “이제 선거 대결이 끝났으니 남녀 간 소통을 이끄는 통합과 화합을 위한 차기 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으면 (젠더 갈등이) 국정 내내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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