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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메 Sep 01. 2024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게을러도 괜찮다

난 게으른 사람이다. ‘게으름’이란 현대에서는 인간 사회에 위배되는 행위로 들린다. 항상 바쁘게 돌아가고 비교하는 사회에서 ‘게으름’은 패배자의 것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나는 ‘게으름’이 한심하고 나태한 행위만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게으름은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본능이며, 잘 사용한다면 삶을 여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라 생각한다.


현대 사회는 과도한 부지런함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갓생이라는 것이 트렌드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새벽 기상이라던가, 투잡을 넘어선 N잡, 퇴근 후 자기 계발이 당연시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말만 들어서는 갓생이란 참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 분명히 그런 부지런함이 태생적으로 맞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마치 갓생이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나도 그랬다. 아마 나처럼 게으름이 본능에 가까운 사람들이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인간이 로봇처럼 평생 매일을 바쁘게 살 수 있는가에 의문이 들었다. 더 나아가선 사람들의 성향이 제각각인데, 사회가 사람을 오직 노동 자본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래서 난 게으른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게을러도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매일을 알찬 생산성으로 보내지 않아도, 오히려 더 행복할 수 있다고.


트렌드보단 아날로그가 좋은 이유



‘부지런함’과 ‘게으름’은 유행을 향유하는 태도에 있어 주류와 비주류로 나뉜다. 물론 부지런함이 주류 쪽에 가깝다. 유행에 따라가는 일 역시 부지런한 자들의 것이다. 매년, 매분기, 매주 달라지는 유행에 뒤따르기 위해선 고도의 노력과 노동이 요구된다. 자본도 끊임없이 소비된다.


그래서인지 게으른 나는 종의 진화처럼 비주류의 취향을 가지고 태어났다. 유행하는 가수, 옷, 음식 이런 것은 좀처럼  호기심이 들지 않았다. 방송에 출연한 식당을 몇 시간 동안 웨이팅하는 일, 감성 패턴으로 생산된 물건을 사는 일이 다른 세상 같이 느껴졌다. 어쩌면 게으름이란 성분이 내 몸을 이루고 있어서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난 유행이 최선의 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게으른 사람들은 대부분 급격한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굳이 세상 사람들과 발맞추려 유행에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찾는 게 중요하다.

나의 경우 아날로그적인 면이 있는데, 아날로그 제품에 관심이 있고, 굳이 아날로그적 방법을 고집하는 게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아날로그의 매력은 발산적인 어지러움이 없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단순하다. 아날로그 제품은 대부분 3가지 기능을 넘지 않는다. 직관적인 디자인이 주는 미감도 정감 있다. 그런 단순함이 본질을 더 잘 보여준다. 아날로그 스피커가 폰보다 노래를 더 노래답게 들려주는 것처럼. 이북리더기보다 종이책이 책을 책답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이렇게 게으른 나는, 세상의 기준과 유행에 벗어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이런 아날로그 함이 나를 더 유니크하게 만들어주고, 소비 충동을 줄여 내가 사는 공간을 깔끔하고 질 좋은 것들로 채워준다.


나에겐 아날로그가 나의 캐릭터를 만드는 요소인 것처럼,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벅찬 게으름뱅이는 자신만의 취향을 발굴해야 한다. 그래야 트렌드를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과소비 후의 공허함을 방지할 수도 있다.


나쁜 게으름 고치기


게으름이란 개념은 가치 있는 게으름과 고쳐야 할 게으름으로 나뉜다. 내가 추구하는 건 가치 있는 게으름, 삶의 여유이다. 그러나 나는 고쳐야 할 게으름이 아주 많은 게으름뱅이다. 행복한 게으름뱅이가 되려면 조금씩 나쁜 게으름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긍정적 사고방식과 여유로움을 채워 넣어야 한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지만, 세상이 정한 훌륭한 사회인이 되진 못했다. 졸업 후 1년이 지나 문과 출신에 보잘것없던 내가 운 좋게 대기업 인턴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인생의 전환점이란 생각이 들어 생경 맞은 기대감이 부풀었다. 그러나 결국 채용 전환 단계에서 최종 탈락했다.


그 후 열 번 정도 다른 곳에 지원해 봤지만 어디 하나 나를 합격시켜 주는 기업이 없었다. 결국 눈을 낮춰 계약직으로 임시 일자리를 얻었다. 대기업에서 첫 인턴을 하고 오니 현재 직장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아직 제자리라는 사실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매일 내 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사형선고처럼 느껴졌고, 그럴 때마다 직장에서는 늘 성실하려 애썼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지쳐 아무것도 손 데기 싫은 상태가 되었다. 절대 되기 싫었던 방구석 외톨이가, 거울 속에 있었다.


양귀자의 <모순>에서 읽었던 ‘인생의 볼륨’이란 표현이 문득 생각이 났다. 인생에도 볼륨이 있어야 했다. 불리한 상황이 닥쳐도 우회하거나 역전시키는 자신만의 기술. 나는 그런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내 인생도 볼륨 없이 납작해져만 갔다. 나 스스로 미래를 궁금해하지도 않고, 힘낼 의지도 없이 그저 주어진 시간을 견뎠다.


그러다 나 자신을 미워하기도 지치는 순간이 왔다. 난 나로 살 수밖에 없는데, 죽을 때까지 나 스스로를 미워해야만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나이만 먹고, 남은 게 없는 사람이 되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러자 무기력하던 일상을 바꾸고 싶어 졌고, 이 세상을 이겨보고 싶었다.


나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이었다. 나 자신이 싫어서, 아무것도 도전하기 싫고, 모든 일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것보다 우선 나 자신을 사랑해 주려 노력했다. 난 항상 내가 남들만큼 빛나지 않음에 주늑들어 있었다. 자신감도 부족하고 ‘나는 해도 안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이런 패배자 마인드를 고치기 위해선 우선 나를 사랑해줘야 했다. 어떤 병이든 근본적인 문제가 뭔지 파악해야 한다. 그러면 치료 방법이 보인다.


난 노트를 펴고 되는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뭔지 써 내려갔다. ‘책’, ‘문학’, ‘스토리’, ‘드라마’, ‘오래된 것’, ‘빈티지’, ‘동물‘

하나씩 써 내려가니 나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나 자신을 알려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인간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난 내가 현대에서 바라는 갓생러와는 많이 다른 인간임을 알았다. 난 잔잔하고 오래 탐색할 수 있는 것들이 좋았다. 그제야 날 어떤 식으로 사랑하고 가꿔줘야 할지 마음으로 느껴졌다. 나 스스로를 트렌드에 발 빠르지 않거나, 갓생을 살고 있지 않다고 남들과 비교하여 폄하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대신 난 나만의 기준으로 부지런하게 살아가면 된다고, 그게 진정한 행복이라 믿게 되었다. 나 자신을 미련하고 낡아도 수리하면 오래도록 쓸 수 있는 아날로그 제품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내 모습이 조금은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에게도 이제 행복한 삶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자기혐오로 시작된 게으름을 고치고 하나씩 여유로운 삶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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