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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메 May 19. 2023

반시골에 갇힌 20대와 1미터의 삶

논과 밭 사이에 롯데리아가 있는 곳 

집은 있다가도 한순간 사라질 수 있는 것이고, 그러다 또다시 생기기도 한다. 나는 이를 열여덟에 깨우쳤다. 이런저런 어른들 사정으로 우리 가족은 한평생을 지냈던 오래된 아파트를 처분했다. 그때 나는 내 방을 잃었고, 언니와 함께 자취를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익숙하고 누군가에겐 독특한 그런 환경에 나는 꽤 일찍 적응을 했다. 투룸에서 고등학교를 통학하던 시절을, 힘들지 않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마냥 어렸기 때문이었다. 


짧다면 짧은 분가 경험이 끝을 맺은 무렵은 스무 살 즈음이었다. 아빠는 시골에 땅을 사들여 주택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그 지역은 우리 가족이 살던 곳에서 버스로 40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동네였다. 그 동네는 어딘가 이상한 동네였다. 분명히 무언가 없는 것이 많음에도 카페나 롯데리아, 기타 소소한 프랜차이즈 매장이 있었던 특이한 동네. 그러나 논과 밭이 펼쳐지고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건물이 즐비한 곳. 


오히려 번화가나 시내 쪽으로 이사 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 적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시골 동네에 새롭게 정착하는 느낌은 좋음도 나쁨도 아닌 맹숭맹숭한 감정이었다. 그렇게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주택이 지어졌고, 우리 가족의 새 보금자리는 반시골 동네의 가장 끝 집이 되었다. 그럼에도 바로 앞에는 아파트 단지 하나가 있어서 사람 구경을 꽤 할 수 있었다. 자잘한 시멘트 덩어리와 흙이 발에 차이던 마당은 점점 아빠의 손길을 거쳐 초록 잔디밭과 소나무, 진달래, 장미, 할미꽃이 가득한 정원이 되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30분, 또 버스 타고 터미널까지 40분인 이 집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나는 아직 젊었고(지금도 그렇다) 또 놀고 싶었다. 이곳의 지리적 불편함이 나를 옥죄던 와중 아빠는 개 한 마리를 데려오겠다고 말했다. 우리 아빠는 조경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조경 일로 자주 들렸던 나무가게의 개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손님이 오면 왈왈 짖는 개는 자신의 일에 굉장히 충실했다. 하지만 이제 막 6개월이었던 개는 심심했는지 마당에 구덩이를 팠고, 나무가게 사장님의 입에서는 '데려가려면 고마 데려가이소(귀엽기는 하지만 나보다 잘 키워줄 수 있으면 데려가실래요?)'라는 실언이 나오게 된다. (후회가 되었는지 몇번이나 다시 주면 안되냐는 말을 했다. 네 안돼요.)


처음 만난 날의 이공이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개를 보러 나무 가게에 들르게 되었다. 개는 마당 한편에 마련된 집에서 쉬고 있었다. 하얀 여우 같았다. 겁이 많은지 자신들을 보러 온 인간들에 화들짝 놀란 똥개. 비록 목줄에 묶인 채였지만 주인을 보고 꼬리 치는 모습과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는 천막에서 이 개가 나름대로 사랑받고 있음을 알았다. 


항상 묶여 있지만은 않고 가끔 산책도 했던 아이는 낯선 사람을 굉장히 경계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통했는지 10분 정도가 지나자 내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고 간식을 받아먹고 애교를 부렸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사모님이 말했다. "자기 데려갈 걸 아나 보네"






아직 낯가리던 이공이

그렇게 이공이는 우리 집 첫째가 되었다. 이름이 왜 이공이냐고 물어보자 사모님은 "2020년도에 태어났으니까 이공이"라고 명쾌한 답을 주셨다. (참고로 다른 개는 2015년에 태어나 이름이 '일오'였다) 이제껏 묶여있던 것이 답답했었는지 이공이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마당을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첫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속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얌전한 강아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상 에너자이저 댕댕이었다. 

    




  









이공이의 첫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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