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스쿨혁명 2-1
집과 교육플랫폼이 학교인 시대
세계적인 ‘코로나 STOP’
학교가 교육기관의 기능보다 랜드 마크의 역할이 더 커진 시대가 되고 말았다. 코로나 ‘STOP’은 엄청난 파워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뒤흔들어 놓았다. 일시에 사회 전체 시스템의 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는 상식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코로나로 멈추니 보였다.”
어쩌면 ‘코로나 STOP’은 세계 모든 사람이 등장인물이 된 거대한 스케일의 가상현실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영화를 통해 우리는 4D보다 더 실감나는 영화 속에서 우리 삶의 방향을 급전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재택근무와 재택학습이다. 부모는 돈 벌러 직장에 가고 아이는 공부하러 학교에 가는 것이 기존 가정의 일상적 구조였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집안에서 공부와 업무는 물론 여가시간 까지도 모두 해결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고 외치던 사람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아군이 아닌 적군으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자녀를 둔 엄마들은 전쟁을 치러야했다.
상식이 바뀌었다면 아이들이 배워야할 교과 학습 내용 또한 완전히 달라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과 내용이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살아나갈 때 기본이 되는 사회 규범과 상식을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부는 학교에서 한다’는 상식이 ‘공부는 집에서 한다’는 상식으로 변했다면, 당연히 교과내용과 교육과정과 교육방법도 모두 달라져야함은 물론이고, 교육을 통해 이루고자하는 거대담론인 교육의 목표와 비전도 수정되어야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너무 급하게 바뀌다보니 일단 아이들 교육은 중요하다는 잠정적 합의하에 급하게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으나 많은 문제점을 도출시키고 있다.
상상할 수 도 없었던 ’상식‘의 전복
400년 전 요하네스 아모스 코메니우스가 만든 최초의 그림교과서와 4시간 전 만들어진 위키백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매일매일 내용을 수정해야한다‘는 것이 정답이다. 각 시대의 상식과 통념을 지식화하여 만든 교과적 지식들은 일초가 지나기도 전에 수시로 바뀌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대학입학을 앞둔 고3학생이 등교를 하지 않고 집에 있다면 ”문제아“라고 바로 낙인 찍혔다. 그러나 코로나 집콕 시대인 현재는 등교하는 학생이 코로나 잠복가능 ”문제아“로 전격 환치되었다. 상상할 수 도 없었던 ’상식‘의 전복이다. 지금 당장 ”문제아“에 대해 규정하고 개념화해보라! 고정된 답을 말할 수 있는가? 개념을 규정할 수 있는가? 코로나는 모든 사회적 통념과 규정과 개념을 뒤바꿔 놓았다.
이제 디지털 온라인 세상이 된 코로나 시대의 학교는 학습 내용과 교육과정은 물론 교사의 역할과 교육에 대한 규정과 개념도 달라져야만 한다. 재택 학습이 생각보다 장기화되자 임시방편으로 선택된 결과였기 때문이다. 교육이 하향 평준화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제는 논의의 필요조차도 없이 학습의 주체는 아이들이다.
이제는 논의의 필요조차도 없이 학습의 주체는 아이들이다. 코로나 사태로 교육은 누군가의 ‘티칭’보다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학습자의 ‘배움’의 태도가 더욱 중요한 학습자 중심 교육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단순히 정해진 학습량을 스스로 숙제하듯 해나간다는 뜻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학습으로 자신들의 앎을 생산하는 시대라는 이야기다.
교육과정을 결정하는 진로교육도 다르지 않다. 어디에 취직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안내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직업을 만들어내도록 촉진할 것 인가?가 더 욱 핵심이 되는 시대다. 기업 취업이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직업으로 살아가는 창업의 시대라면 성적순 평가제도는 의미가 없어지고 그에 따른 교육과정도 단숨에 바뀌어야한다.
불가능 하고 어려운 일인가? 이미 코로나는 단칼에 학교중심의 교육을 홈스쿨의 일반화로 바꿔놓았다. 코로나 스쿨 혁명은 이미 완수된 역사적 사실이고 집이 학교다. 그렇다면 학교는 다시 어떻게 정의 내려야할까?
학교의 범주와 정의
세계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배출하는 21세기 학교를 꼽으라면, 에꼴42, 미네르바스쿨을 들 수 있다. 이 두 학교의 특징은 프로젝트 학습에 기반하여 교사와 교과서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컴퓨터기반 온라인 학습과 학생중심프로젝트 학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미네르바스쿨은 학생들이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특정 나라와 지역에 6개월 정도씩 머물며 스스로 보고 배운다. 일종의 그랜드투어로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도 로드스쿨링의 일환이었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에꼴42의 경우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여 프로젝트를 완수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교육과정이고, 학생들은 스스로에게서 배우고 멘토의 조언을 듣기도 하면서 과업을 자발적으로 실행해나간다.
에콜42나 미네르바스쿨이나 둘 다 학교의 기능은 공동체 협력 학습의 장이 되어준다는 점이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소정의 학위 증명서를 주는 정도라고 할까? 모든 교육과정의 배움은 학생 스스로의 목표와 자발적 학습추진 방향에 의해 성과가 결정된다. 가르쳐주는 교사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자발적으로 스스로 좋아하는 이슈에 미친 듯이 몰입해간다는 점이다. 자아성취는 그대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교사도 없고, 교과서도 없이도 온라인 강좌와 협력학습과 체험교육만으로 교육이 가능하다면 기존의 ‘학교’의 개념을 전체 뒤집어야한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이 입학하는 학교를 지역적으로 나누어 관련 관청에서 배당하던 시스템을 학생과 학부모의 지원 시스템으로 본격 전환해야한다. 카트리나로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즈의 학교 입학 시스템에 대해 지난 4월 미국 브라운 교육연구 센터의 Douglas N. Harris 박사가 발표한 글을 빌어 잠시 살펴보자.
세계 어느 학교라도 공간에 제약 받지 않고 골라서 간다.
Douglas N. Harris 박사는 코로나 이후 교육의 변화에 대해 차터스쿨(Charter school은 미국의 교육 시스템으로, 대안학교의 성격을 가진 공립학교이다. 특정 과목을 중점적으로 교육하기도 하지만 많은 학교들이 전인교육과 창의적 교육방식을 추구한다. 행정상으로는 공립학교와 유사하게 운영되나 사립학교의 특성을 띄고 있다. 위키백과)을 대안적으로 제시하면서 카트리나 이후 뉴올리언즈의 교육개혁에 대해 유의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중 ‘코로나 ST0P’이후 학교에 대한 범주와 개념정의에 대한 좋은 힌트가 보인다. 바로 출석구역이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행정구역상에 있는 학교입학을 국가에서 통보하였으나 카트리나로 이재민이 많아져 인구의 이동이 많다보니 주정부단위에서 지역별로 지정하던 입학 학교를 학생과 학부모가 선택해서 갈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트리나 진정 이후에도 뉴올리언즈는 여전히 학생과 학부모가 지역구와 관계없이 ‘학교를 선택해서 입학’할 수 있다.
카트리나 이후, 도시는 본질적으로 출석 구역을 없애고 학교 선택으로 전환해야 했다. 왜냐하면 돌아오는 인구는 "구역"이 충분한 학생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들은 임시 집에서 다른 집으로 바꾸고 있었다; 그 지역은 학생들이 끊임없이 학교를 바꾸도록 요구했을 것이다. 따라서 학교 선택으로의 전환은 부분적으로 위기를 다루는 실용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가족들은 선택에 익숙해졌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여행을 해야 하는 거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폭풍과 그 영향의 대부분은 이미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출석 구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대화는 거의 없었다.
뉴올리언즈의 사례처럼 지역구와 관계없이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면 이제 쌍방향 온라인 학습이나 온오프라인 블랜디드 교육을 코로나 이후 교육 대안으로 제시하는 세계적인 추세에서 학생이 사는 지역의 학교 입학을 의무화할 이유는 없다. 사이버 대학은 이미 일반화된 교육제도다. 사이버학교의 학령을 낮추는 일은 이미 세계가 코로나스쿨혁명으로 이룬 쾌거다. 그렇다면 온라인 입학에 대한 법안을 마련하여 제도화 할 경우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학교라면 국내는 물론 유럽과 아프리카까지도 지원이 가능하다. 다만 글로벌 교육 플랫폼의 지식의 평준화과정은 있어야 할 것이다.
평가 대신 에듀블록 등 교육 인증 제도를 마련하고 공동체 프로젝트 학습 등 전인교육에 해당하는 컨텍트 교육의 경우는 기존의 학교시설에서 이수하도록 하면 된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학생들은 설령 부모가 로드스쿨링을 위해 한 달 단위로 여행을 하면서 아이를 양육한다고 해도 학교교육에 의존해서 지역차별과 터부의 설움 없이, 차별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온라인 학습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쇼핑센터와 문화센터도 학교다
온라인 학습으로 기존의 공교육기관인 학교의 기능이 덴마크 에프터스콜레와 같은 대안학교들처럼 프로젝트 협력학습 등 공동체교육이나 인생설계 진로 직업학교로 전환된다면 쇼핑센터의 문화센터도 작은 학교가 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종교단체의 온라인 교육시스템이나 유튜브의 개인 미디어 플랫폼 자체도 하나의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정토회와 북튜버인 책추남의 네이버 카페는 코로나 이후 온라인 중심 학교 조직의 방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일산 벨라시티와같은 대형 쇼핑센터나 일본의 츠타야서점과 다이칸야마 같은 라이프스타일 연계 서점들, 문화살롱이 열리는 동네 카페와 작은 책방도 하나의 학교가 될 수 있다. 물론 섭이네 미용실 같은 개인 집에서 이루어지는 생태적 삶의 기술도 집 학교가 될 수 있다.
기존의 학교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배움’이 일어나는 장소가 학교라는 단순하고 새로운 개념을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의 삶의 터전 어디라도 ‘학교’가 아닌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일상이 교육이고 우리가 사는 동네는 물론 온라인 공간까지도 온통 배움터인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옛 어른들의 ‘죽을 때까지 배워야한다’라는 말씀은 허언이 아니었다.
이제 진짜 학교는 건축물이 아닌, 배우는 학습자의 태도와 자세, 선택과 마음가짐으로 규정된다. 코로나 이후 교사와 부모의 역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제 교사와 부모는 동기를 부여하는 촉진자와 도우미, 그리고 같은 팀원으로서의 동료의식 등이 최고의 미덕이 된다. 그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코로나시대 이전부터 좋은 스승과 부모가 되는 지름길이었고 포스트코로나 이후 시대에도 교육은 학습자중심의 원칙에 는 변함이 없다. 이제 학교에 대한 범주화와 규정이 바뀌었다면 배움의 내용과 형식도 함께 달라져야한다. 코로나 스쿨혁명은 이미 코로나 이전에 과학기술의 발달로 선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