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페인트 담벼락에 찔리다

인도의 일상여행자 1화

by 김은형

인도 아그라 역에 도착했을 즈음 우리 일행은 이미 인도 여행의 중간에 와 있었다. 뭄바이⇒ 푸네⇒ 뉴델리⇒ 아그라⇒ 바라나시⇒ 홍콩⇒ 마카오로 이어지는 21일 동안의 전체 여정 중 중간을 넘어서 있었다.


이미 인도에 도착해서 뭄바이와 푸네 오쇼 명상리조트, 뉴델리까지 아주 기똥차게 재미난 사건 사고도 많았지만, 내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세 개의 사건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 중 제일이 아그라의 호텔 앞 집 담장 벽으로부터의 찔림(일종의 푼크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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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 역에 도착해서 릭샤 기사들과 흥정을 마친 뒤 예약된 호텔로 향했다. 그런데 릭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아주 강렬한 끌림에 꼼작하지 못하고 얼어붙고 말았다. 스스로 머릿속으로 인식하고 몸으로 깨닫고 존재 전체로 내가 어떤 지경에 처해있는지를 확연하게 알고 나를 바라 본 순간들이 전체 생을 통해 몇 번이었나?


대학교 2학년 때 오대산 상원사에 답사를 갔다가 기절초풍하게 그윽하게 잘생긴 스님과 눈이 마주치면서 완전 얼음이 되어 꼼짝 달싹 할 수 없는 정지된 영원의 시간 속에 갇혔던 일이 좀 강렬할까? 그런데 이번엔 사람도 아니고 세월과 풍파로 꼬질꼬질해진 저 남루한 하늘색 페인트의 벽이, 문조차도 없어서 싸구려 천으로 대충 가려놓은 대문이 달린 낯선 인도의 한 모퉁이 집 담장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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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물인 시멘트벽이 왜 이토록 강렬하게 나를 끌어당기는가?

왜 저 벽은, 저 컬러는, 저 담장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는, 왜 나에게 덤벼드는가? 달려드는가? 그리고 말하는가? 왜 나를 움직이는가? 왜 나는 사로잡혔는가? 이렇게 섬광처럼 동시에 쏟아지는 질문들 속에서 나는 이미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서 내게 활짝 열린 얼룩덜룩한 담벼락을 찍기 시작했다.


이런 감성적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리라곤 상상조차고 해보지 못했다. 사실 내 안에서 이런 창조적 욕망이 솟구쳐 오른 것 자체가 내 삶의 기적이었다.


아! 내가 드디어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되었구나! 난 살았구나! 난 생명이구나! 죽지 않았구나..... 사진을 찍어대는 내 눈에 나도 모르게 감당할 수 없는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무생물인 단순한 벽 따위가 그것도 오만한 생물인 인간에게 이토록 열린 가슴으로 두팔을 온전히 활짝 열어 안아주고 품어주고 용기와 창조적 열정을 응원하고 독려하며 설레이는 창조적 기쁨으로 저절로 그것을 기록하고 담아내고 새롭게 해석하여 그의 이야기를 나를 통해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이 놀라운 신비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를 모르겠다.


좀 더 단순하게 명확하게, 이그젝틀리로 말한다면, 그 벽은 나를 사랑했고, 나를 안았으며, 내 안으로 들어왔고, 내 존재 전체 안에 담기며 나 자신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사랑의 에너지로 나를 가득 채웠다. 나는 그 담벽락과 마주한 그 순간 바로 내가 사랑 그자체로 변형되었다는 사실을 또렷이 알았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신의 사랑이었음은 이그젝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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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전교육연수원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디렉터로 스카웃되어 파견교사로 일하면서 나는 완전히 교육을 위한 기계가 되어있었고, 문화예술교육 사업 자금을 끌어오고 조직을 설득하고 사업을 실행함은 물론 교육 매개자들을 양성하고 사례 강의를 다니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012년에 떡공(대덕전자기계고,폐교됨)에 부임하여 수렁에 빠진 아이들을 만나면서 학교에 ‘행복교실’‘행복카페’‘행복레스토랑’을 만들어서 대안적인 교육을 통한 회복적 삶의 교육으로 아이들을 구제한다는 교육적 열정에 미쳐 내자식 남자식도 구분 못하고 뛰어다니다 나까지 병을 얻는 지경으로 살아온 터였다.


그러다 결국 조직 내의 비수에 찔려 2015년 위암을 얻었고 수술 후 회복기에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1년 넘게 영혼이 날랐다가 비로소 안정기에 접어든 시점 마음 챙김을 위한 인도여행을 떠난 터였다. 나는 황폐할 대로 황폐해서 이집트의 파피루스처럼 훅 불면 날라 갈 정도로 위태로웠다.


“명랑쾌활하나 주위 다소 산만함” 이었던 내가 “침울하나 주위 가끔 바라봄” 모드로 변해버려 세상 모든 일에 관심 하나 없는 무기력은 물론 기쁘고 슬프고 감정 한 톨 없는 생명의 남루한 껍데기요 허물이었다. 그냥 삶은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했고, 어린 딸아이를 돌보기 위해 간신히 연명하고 연장된 생일뿐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살아있음이었다.


교육자로 죽을 만큼(이건 비유가 아닌 팩트요 진실이다) 27년을 헌신했으나 결국 나는 대안교육 나부랭이나 허황되게 말하는 혼자 지랄발광하다 전락한 삼류교사일 뿐이었다. 이런 현실감이 더욱 나를 비현실적인 무기력으로 몰고 있을 때 나는 인도에 갔고, 아그라의 저 남루한 스카이블루 담벼락과 맞닥뜨렸음은 물론 깊숙이 찔렸던 것이다.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온 것은 나의 억눌린 창조적 감수성과 에너지였고, 나의 마음에 갇혀있던 예술과 사람에 대해 무한대로 열린 사랑이었다.


그래서? 그 순간부터 나는 열린 존재가 되었고, 스스로 사진을 찍는 예술가가 되었다. 이토록 강렬한 욕망과 의욕에 넘치는 설레이고 즐거운 순간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나는 담벼락에 찔려 활짝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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