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일상여행자 2화
아그라의 전통시장은 산자와 죽은 자의 음식이 공존함은 물론 결혼에서 탄생과 죽음까지 모든 삶의 여정이 작은 시장 안에 꼼꼼히 들어 차 있다.
또래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하면서도 미친 아이가 생기를 뿜어대며 깔깔대며 뛰어다니고 비현실적인 느낌의 노파가 슬로우 모션으로 세상이 끝날 때까지라도 걸어갈 것처럼 발을 질질 끌면서 느릿느릿 시장의 한 요소가 된다. 그야말로 삶의 바자르다.
이제 비로소 DJ KSHMR의 ‘bazar’ 뮤직비디오가 확실히 이해가 된다. 바자르, 시장은 그냥 단적으로 인도인들의 생과사가 가판대에 널려있는 삶의 전시장이자 라이프스타일 자체다. 힌두교가 인도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의 형식과 시스템을 제공하는 신념이라면, 시장은 그러한 신념을 축으로 인도인들의 삶이 탄생에서 죽음까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재화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아그라는 물론이고 인도의 시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키치한 컬러들의 감각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를 모르겠다. 그것은 붉어도 그냥 붉은색이 아니고, 파래도 그냥 파랑색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그 유니크한 색감들의 더 유니크한 조합들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너무나 극단적으로 이질적이어서 더욱더 어울리는 조화로움일까? 어디를 둘러 봐도 강렬한 컬러감각에 찔린다. 각각의 요소들이 겹쳐지면 겹쳐질수록 더욱더 강렬하다.
만약 저런 색채조합의 감각적 특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있다면, 아마도 가장 민주적이거나 가장 평화로운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인도는 철저한 신분사회다. 어쩌면 컬러에도 레이어가 있을지 모른다. 다양한 층위의 색채들은 다 다른 색감을 가진다. 똑같은 붉은색 옷이라도 브라만이 입는 그것과 크샤트리아와 수드라 바이샤가 입는 붉은색의 감각은 다르다. 세탁 상태, 낡기의 정도, 원단 자체의 특징 등이 겹쳐지면서 그것은 붉은색이되 붉은색 자체가 아닌 그 무엇이 되는 마술이랄까?
아니면 생활 속에 그대로 뭍어 있는 생활 속 얼룩과 때 때문일까? 오염마저도 새로운 차원의 색채를 완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는 신비감?
장난감과 과일에서조차도 인도의 색채는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도대체 순백의 타지마할로 유명한 아그라에서 이토록 컬러풀한 색채들이 작정하고 내게 덤벼드는 이유는 뭘까?
미친 아이도 깔깔대며 내게 덤벼들어 깜짝할 사이에 나를 와락 껴안는다. 시장 전체가 잠시 정지하며 화들짝 놀라는 나와 아이를 누군가가 떼어내며 아이를 모질게 막대기로 마구 때리며 쫓아낸다.
아이는 매를 맞으면서도 잠시 울컥하나 했지만 다시 깔깔깔 웃으면서 도망을 가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아이를 때리며 쫓던 사람이 나에게 사과를 해온다. 아이가 미쳤으니 불쌍하게 생각하고 용서하란다.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니 아그라의 초등학교 교사란다. 나도 한국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아픈 아이들과 오랫동안 함께 해서 아이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나를 헤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좋아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 거라고 말하니 정중하게 인사하며 아그라를 떠나기 전에 시간이 된다면 학교를 한번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런 사건의 와중에도 할머니는 여전히 느릿느릿 때에 찌들은 흰색 옷차림으로 누에고치가 성큼성큼 걷는 것만큼이나 천천히 슬로우슬로우 퀵퀵으로 삶의 바자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