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일상여행자 3화
발렌타인데이가 쵸콜렛 향기 한 줄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새삼스러울 것은 하나도 없다. 매년 되풀이되는 패턴이다. 그러나 발렌타인 쵸콜렛과 꽃과 선물을 꿈꾼다는 것은 참 낭만적이다. 그러나 아그라에서 최고로 낭만적인 발렌타인 프로포즈를 하고 싶다면, 먼저 부자가 되어야한다.
아그라에 있는 궁전 호텔은 타지마할이 가장 잘보이는 객실에서 하룻동안 묵으면서 발코니에서 붉은장미꽃으로 프로포즈하는 패키지가 한국돈 1000만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지마할 앞에서 1000만원짜리 프로포즈 패키지를 논한다는 것은 참 민망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사랑의 본질이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라면 무굴제국의 샤자한 왕(Shāh Jahān, 1592~1666)이 사랑한 두 번째 왕비 뭄타즈 마할의 무덤인 타지마할 앞에서는 사랑에 대해 함구해야한다.
샤자한은 장신구를 팔던 열아홉 살의 처녀 바누 베감을 보고 한눈에 반해 두 번째 왕비로 맞아들이고 ‘궁전의 꽃’이라는 의미의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타지마할은 ‘마할의 왕관’이란 뜻이다. 5000명의 궁녀에도 불구하고 샤자한은 뭄타즈 마할을 전쟁터까지 데리고 다닐 정도로 사랑했다.
그녀가 전쟁터에서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자 샤자한은 제일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타지마할을 지었으나 국고의 5분의 1을 쓸 정도로 예산이 막대하자 샤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의 왕위 찬탈과 함께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아그라성, 레드포트에 죽을 때 까지 유폐 당한다.
다만 아우랑제브는 아버지가 타지마할을 바라볼 수 있는 권리는 허락하여 샤자한은 죽을 때까지 붉은 아그라성에서 사랑하는 뭄타즈 마할이 묻힌 타지마할을 바라보다 죽고 타지마할에 함께 묻혔다.
사실 타지마할 보다 더 매력적인 곳은 어쩌면 붉은 사암의 아그라성이다. 샤자한의 사랑 에너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어서 일까? 아그라성이 주는 전율은 타지마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타지마할이 관광객들의 스냅사진 찍는 장소라면, 붉은 사암의 아그라성은 샤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사랑을 사색하고 샤자한이 타지마할의 뭄타즈 마할을 그리던 그 테라스에서 하염없이 막연한 사랑의 공상에 빠져볼 수 도 있는 정념 가득한 장소다.
뉴델리로 떠나는 기차가 20시간 연착이 되어 각자 자유 시간을 가졌던 아그라에서의 세 번째 날,
주변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 다른 동료들과 달리 나는 혼자서 붉은 사암의 아그라 성으로 산책을 갔다.
호텔에서 아그라 성까지 40여분을 걷는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인사를 나눴다.
그 중 잊을 수 없는 한 소년이 있다. 아마도 나이가 19세쯤이나 되었을까? 맞은편 신호등에 서 있던 아이가 나와 스쳐 지나갔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와서 “마담!”하고 불렀다.
내가 뒤돌아보니 아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아이는 내가 여왕처럼 천사처럼 이쁘다고 했다. 이유는 얼굴이 하얗단다. 하지만 아이는 세상에서 처음 들어보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서로의 코드화된 언어는 다르지만 아이와 나는 언어자체가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 완벽한 소통의 열린 촉수로 사랑의 (우주적 존재의 근원적인?)대화를 나눴다.
귀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각자의 말을 하고 있지만 뭔가 더듬이처럼 연결된 어떤 보이지 않는 촉수가 서로의 언어를 더듬어 알아내는 경지라고 해야할까?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 밉고 예쁘고의 그 어떤 경계도 필요치 않은, 그런 경계를 생각할 수도 없는 우연한 마주침과 완벽하게 순수한 온전히 열린 상태의 대화였다.
푸나에서 일주일 동안 명상을 하고 왔던 탓일까?
말없는 아그라의 벽과 문과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의 말에도 내 귀는 열려있었고, 내 머리는 인식했으며 내 마음은 100% 순수한 공감과 따듯함으로 열려있어 내 앞에 닥치는 그 어떤 무엇이라도 당겨오기 시작했다.
타지마할에서만 200여명이 넘는 인도인들과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연예인이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