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자~알 놀기
내가 스무 살 때 처음으로 카페에서 잘 노는 것이 행복을 위한 삶의 기술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프랑스 혁명사 수업에 처음으로 들어오신 교수님의 수업은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첫 수업인지라 수업에 대한 말씀을 먼저 하실 줄 알았지만, 교수님의 수업 첫마디는 파격이었다.
“ 학생들! 봄볕이 참 좋다. 제 멋대로 살아라! ”
대학 2학년이던 우리는 제멋대로 살으란 말씀을 방종이나 타락이나 아니면 되는 데로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 말씀이 단 번에 나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면서 호기심을 폭발시켰다. 왜? 왜지? 왜 제멋대로 살라고 하는 거지? 등등의 의문이 줄을 이었고 그다음 말씀에 더 귀 기울이게 되었던 것 같다. 그 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당시 환갑 노인이었던 교수님의 수업 마무리는 더 파격적이었다.
“ 학생들! 카페 가자! 전주에 좋은 카페가 있나?”
다시 햇살 좋은 봄날이다.
나는 교수님을 만나러 늦은 밤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갔다. 볕 좋은 아흔네 번째 봄을 맞이하셨을 교수님 영정 앞에 조악한 나의 책을 한 권 올리며 눈물로 인사를 드렸다.
다음 날 아침 교수님은 분당 어디쯤의 안식처로, 나는 집으로 느리고 천천히, 어쩌면 우아한 걸음으로 생과사의 갈림길을 걸었다. 내비게이션으로 도보 7분 거리를, 2시간에 걸쳐 걸으며 30여 년의 세월을 휘청휘청 되짚다 보니 서러움이 몰려온다. 그럴듯하게 산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은 세월과 시간과 찰나와 순간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어 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길 위에서, 길 위에서 선 인간으로 목 놓아 소리 내어 펑펑 울었다.
부모님이 내게 생명을 주시고 기본적인 삶의 양식을 주셨다면, 교수님은 두 번째 삶의 르네상스를 내게 선물하셨다. 끊임없는 지적 자극과 지성인으로서의 삶의 에스프리와 에티튜드로 완성되는 각성된 삶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자기 멋대로의 스타일로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가르치셨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똑 같이 변화하는 주체로서의 삶이 가지는 의미를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가로지르며 가르치셨다. 단 한 시간도 뜨겁지 않은 수업시간은 없었다. 인간에게 배움이란 무엇인지를,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를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깨우치셨다.
강남 성모병원에서 강남터미널을 잇는 육교를 건너는데 핫핑크색 철쭉이 봄볕에 작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스타벅스가 눈에 띈다. 멋진 날씨엔 수업보다 커피 한잔과 담소가 우리 삶을 더욱 살찌운다고 하시던 은사님 말씀을 따라 ‘베네치아의 카페 프롤리안’은 아니지만, ‘루이 비 뱅의 몽마르트르’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선다.
주문한 커피가 다 식도록 나는 세상 모든 사람과 사물들로부터 침묵의 거리를 지킨다. 아침 일찍부터 노트북을 펼치고 업무에 열중하는 사람들과 심지어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온라인 수업을 하는 엄마도 보인다. 아이는 엄마가 기계적으로 내미는 빵과 음료를 받아먹으며 엄마의 지시에 따라 집중적으로 온라인 수업에 임한다.
수업내용은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세요’다.
아~~~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8살 남자아이가 집중하며 들어야 할 수업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숨이 턱 막힌다. 내가 배운 카페의 기능은 교양과 담론의 공동체와 연대의 장소였는데.. 이젠 학교의 기능까지.. 쓰레기통의 기능을 집중하고 몰입하여 배워야 하는 학교의 기능까지....
갑자기 슬픔이 싹 가시고 도발적인 생각이 발딱 고개를 든다. 이광주 교수님 말씀처럼 카페를 진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담론과 교양의 장으로, 새로운 시대의 문화가 새롭게 재생되는 르네상스의 산실로 다시 만들어봐야겠구나! 로마의 광장인 플라자(plaza)와 포럼(forum)으로, 그리스의 아고라처럼 시민 모두의 생활의 중심이요 시민적 결합과 연대의 토 포스(topos)로서의 광장으로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양 사학도로서 유럽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이래 유럽은 갖가지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변모를 거듭하였다고 할 그 관심과 탐색의 역정에 있어 일관하여 나를 끌어당긴 유럽상(像)은 교양과 담론의 공동체로서의 유럽이었다.”
- 이광주, 베네치아의 카페 프롤리안으로 가자, 2001, 도서출판 다른 세상 -
이광주 교수님이 유럽을 교양과 담론의 공동체로서 인식하게 한 중요한 일상이 바로 유럽의 카페 문화였다. 카페는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다양한 관점의 문화를 가르치는 산실이 되어왔다. 그러나 현대의 카페는 어떠한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곳으로써의 기능 이외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이미 상품 자본의 공룡이 된 스타벅스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이제 다시 카페의 기능을 프랑스의 카페 드 마고와 플로르,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 등이 성취해냈던 새로운 문화와 삶의 스타일로부터 일깨워야 할 때이다.
카페는 ‘자유인(liber)’을 위한 교양과 담론의 새로운 미래 공동체의 출현을 도모하는 토 포스로서의 기능은 물론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고 연대하는 포럼과 아고라로 거듭나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 거리두기와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위축되었던 두려움과 공포를 벗고, 함께 손잡는 세상의 즐거움과 ‘자유인(liber)’으로서의 행복의 기술을 다시 한번 각성하게 될 것이다. 카페에서 자 ~ 알 노는 삶의 기술을 우리 아이들과 더불어 나누어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