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스쿨혁명 3-1
집, 리빙스타일이 곧 홈스쿨링이다.
삶의 공간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간다. 사람들의 말투나 자세, 표정, 행동, 생활리듬이나 취향까지도 집이라는 공간에 의해 좌우될 수 있으며 사회계급의 상징으로도 사용된다. 어디에 사느냐는 경제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도 하고 집주인의 삶의 철학이나 신념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그와 더불어 주인의 리빙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집은 치유, 놀이, 소통, 예술, 휴식, 콘텐츠 생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의 심층들을 경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인간 최초의 학습의 장이었다.
리빙스타일은 자녀들에게 라이프스타일로 전이되고 카피되며 삶의 지향점을 만들어낸다. 왜 리빙스타일이 홈스쿨링인가? 라고 묻는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가장 근원적인 자세와 태도가 환경적 요소인 리빙스타일을 통해 그 사람만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의 치유적 기능
신경건축학의 선구자인 에스더 M 스턴버그 박사는 그의 저서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에스더 M 스턴버그, 더퀘스트,2013)에서 ‘나를 위로하는 정원 · 치유가 빨라지는 병실 ·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사무실 · 오감을 자극하는 놀이동산 · 영감이 솟구치는 연구소 · 건강한 도시’가 치유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집은 물론 아름다운 동네와 세상 자체가 치유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자연 속에서 힐링 하는 것도 공간이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와 같은 원리다. 잠시 머무는 병원이나 연구소, 성지가 인간 심리와 호르몬에 영향을 끼쳐 치유효과가 있다면, 우리가 늘 거주하는 집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가꿔 나가야할지에 대한 답이 보인다.
아름답고 편안하고 따듯한 리빙 스타일은 그 자체로 치유적 효과가 있음은 물론 디자인과 색채 등의 예술적 감각을 향상시키고 안정된 인성과 열린 태도로 소통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효과를 낼 수 있다. 코로나 집콕 시대에 ‘집’이란 공간은 이제 단순히 쉼터가 아닌 학교다. 학교는 아이들이 쉴 수 있는 포근한 집처럼 아늑해야하고, 아늑한 집은 그 자체로 치유적이며 교육적이다.
놀이
일본의 ‘마사 스튜어트’라고 불리는 구리하라 하루미의 일상은 책 제목처럼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가득』하다. (구리하라 하루미,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가득, 인디고,2013) 그녀에겐 어머니에게 배운 청소법도 기분 좋은 놀이이고, 햇살 좋은 아침 창문 닦기와 매일하는 다림질 또한 즐거운 놀이다. 그것뿐인가? 각종 요리는 물론 티타임과 현관장식, 해마다 만드는 잼에서 깨소금 빻기까지 즐겁지 않은 일이 없다. 그런가하면 일본의 또 다른 라이프스타일 전문가인 이노세 아츠코의 경우도 집에서 행복을 찾는 64가지 방법을 마치 즐거운 놀이처럼 제시하고 있다. 그녀들은 둘 다 가사노동을 자신들을 표현하는 하나의 즐겁고 재미있는 리빙스타일로 만들어냈기에 라이프 스타일리스트로 삶의 지혜를 타인과 나누는 성장의 과정을 거칠 수 있었다. 사실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가사노동들은 인간들의 삶을 영위함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들이다. 의식주의 삼요소가 모두 집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하루도 건너 뛸 수 없는 집안일을 하나의 놀이와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그 과정을 자녀들과 함께 공유해간다면 더 이상의 미래교육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집안일과 부모들과 함께 하는 일상의 다양한 체험 자체가 교육이 되는 것이다. 놀이야말로 홈스쿨의 기초 교과목이다.
집의 소통 기능
데이비드 키드는 작가이자 교육학자, 동양학 연구자이자 일본 미술 평론가로 일본 교토 히가시야마 남단에 자신의 집인 ‘도원동’을 건설했다. 『북경이야기』의 저자인 그는 1976년 교토 가메오카시 오오모토와 손을 잡고 일본전통예술학원을 설립했으며 그의 예술적인 리빙스타일은 ‘중국 스타일 차용’의 범위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해마다 한 두 차례 열리는 파티에서 세계적인 예술가와 정치인들의 교류의 장이 되었다. ‘도원동’에는 데이비드 키드의 놀라운 예술적 감각과 안목을 기반으로 중국의 고 예술품과 일본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이 기가 막힌 조화를 보여준다. 집이 아니라 중국 고미술품 갤러리 같은 ‘도원동’은 단순히 개인적인 공간으로서의 효용성만이 아니라 외교를 위한 사교의 장으로도 큰 역할을 했다.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도원동에 모여들어 예술로써 소통하며 풀리지 않는 다양한 관계의 고리를 풀어가기도 했던 것이다. 집은 본디 예부터 핵가족이 아닌 대가족 공동체의 소통의 장이었고 아이들은 집과 동네를 중심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자랐다. 근대적 학교가 세워지기 전부터 집은 삶의 기술을 배우는 학교였다. 이런 전통이 여전히 굳건히 내려오는 대표적인 집 학교가 유대인 가정이다. 아빠는 아이에게 코란을 가르치고, 엄마는 빵 굽기를 비롯한 다양한 유대인의 삶의 기술을 가르친다.
집의 예술 기능
미국의 에너지 재벌 재임스 듀크의 외동딸인 도리스 듀크는 전 세계를 다니며 친구를 만들고 ‘샹그릴라’를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도리스 듀크는 특히 이슬람의 전통문화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하와이에 이슬람 풍 집을 짓고 자신이 소장한 이슬람 예술품들로 장식하여 샹그릴라를 현실화 했다. 듀크 도리스가 샹그릴라에 소장한 이슬람 문화 예술품들이 3500여점으로 미국 대형 박물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이슬람 예술품의 수를 뛰어 넘는 것이었고 모로코, 이집트, 이란, 파키스탄, 시리아 등지에서 수집한 예술품들이었다. 그녀는 수십 년 동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스람 예술품을 수집하거나 장인들을 고용해 이슬람 스타일의 물건을 만들게 했고 세상을 떠나면서 샹그릴라를 중동 문화와 예술을 연구하는 이슬람 문화센터로 지정했다.
도리스 듀크의 ‘샹그릴라’나 윌리암 모리스의 ‘레드하우스’처럼 박물관이 될 정도의 규모는 아닐지언정 집안에 놓인 작은 생활 예술품 하나로도 아이들은 예술적 안목을 갖게 된다. 집에 있는 사물들은 아이들이 가장 자주보기 때문에 익숙하면서도 깊이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무조건 1000원짜리 물건이 싸고 실용적일 수도 있지만, 10000원짜리 물건이 아름답고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우린 선택에 앞서 많이 숙고해야한다. 만약 당신의 집에 아름다운 의자를 들여놓으라고 한다면, 그건 바로 당신 생활이 바로 예술적인 무엇으로 극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예술 감수성이 바로 이 포인트에서 성장한다. 경주의 카페 ‘뉴트로’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던 버려진 자게농장을 모아서 새로운 자게 박물관을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헌 물건이라도 보는 이의 감각과 안목에 의해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예술의 매직이랄까? 우리 집에도 20년 전 아이가 어린이세트 햄버거를 먹고 받아온 플라스틱 말 장난감이 콘솔 위 최고의 자리에 올려져있다. 집이 곧 아이 성장 박물관이라고 할까? 집은 이렇듯 다양한 스펙트럼의 홈스쿨링 공간이 된다.
집의 콘텐츠 생산 기능
〈크롬웰〉, 《파리의 노트르담》, 《레미제라블》 등 세계적인 고전 명작을 남긴 빅톨 위고는 집이 곧 콘텐츠를 생산하는 자신의 일터였다. 파리 마레지구 보주광장에 있는 ‘빅톨 위고의 집’은 들어서는 방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개성이 넘치는 고급 벽지들과 아름다운 가구들과 장식 접시들이 빅톨 위고의 삶의 취향을 이야기해준다. 빅톨 위고는 평소 글쓰기를 시작하면 자신의 옷을 하녀로 하여금 모두 숨기게 하고 작품을 끝내고야 비로소 옷을 입고 외부 출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만큼 빅톨 위고에게 집은 영감을 주는 장소이자 콘텐츠를 생산하는 작업실이었던 것이다.
요술 양탄자가 나온 아라비아의 서민 가정엔 베틀과 베틀의자가 꼭 그것이 놓인 방만한 크기의 양탄자가 생산되었고, 조선 양반집 규수들은 전통자수와 서화 등의 작품을 쏟아냈고, 농부들은 또 어떠했나? 그들이 집에서 만들어내는 짚 풀 공예나 목 공예품들 또한 문화 콘텐츠다. 목수들은 양반집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장롱이나 집안 세간살이를 만들어 고적한 선비의 방과 생활을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현대의 우리 자녀들은 매일매일 스케치북이나 일기장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지 않나? 이 또한 콘텐츠 생산 활동이다. 광주의 한 뮤지션은 초등학생 아들이 연습장에 그린 낙서를 모아 페이스북에 게시하면서 아들의 작품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처럼 집이란 편안하면서도 혼자서 멍 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안식처이기에 영감도 쉽게 찾아들고 그것이 창조적 활동으로 이어진다. 집과 일터와 콘텐츠 생산의 일치가 어쩌면 미래 진로직업 교육의 핵심 맥락이 될 것이다.
교육의 클래식이란 이런 것이다. 집이 치유, 놀이, 소통, 예술, 휴식, 콘텐츠 생산은 물론 교육의 기능까지 아우르던 옛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로 코로나 스쿨혁명시대의 새로운 교육 개념이고 교육의 목표이며 교육방향이다. 그래서 집은 학교다. 부모는 교사다. 진정한 홈스쿨링이란 집에서 학교 숙제를 하고 교과 지식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교육적 코드로 풀어 생활하는 것이다. 사실 교육이라고 의식할 필요도 없다.
그저 부모가 가치 지향적이고 의미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성실하고 즐겁게 살아간다면 이미 최고의 교육이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부모의 라이프스타일은 아이의 미래다. 홈스쿨링이란, 부모의 삶이 아이의 삶의 비젼에 동기부여를 해주는 가정의 아름다운 일상을 말한다. 거기에 세상 모든 배움의 코드가 모두 융복합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일상에서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