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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밀 Oct 27. 2023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시놉시스]
미국 입시 명문고 웰튼 아카데미,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학생들이 아이비리그로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곳. 새로 부임한 영어 교사 ‘키팅’은 자신을 선생님이 아닌 “오, 캡틴, 나의 캡틴”이라 불러도 좋다고 말하며 독특한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충격을 안겨 준다. 점차 그를 따르게 된 학생들은 공부보다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하나씩 알아가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를 위기로 여긴 다른 어른들은 이들의 용기 있는 도전을 시간 낭비와 반항으로 단정 지으며 그 책임을 ‘키팅’ 선생님에게 전가하는데...


2020년 가을, 넷플릭스에서 내려간다길래 급하게 틀었던 기억이 나는 영화다.

엉엉 울면서 봤다.

로빈 윌리엄스에 대해 찾아보는데.. 이렇게 좋은 영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줬지만 정작 본인은 우울장애, 파킨슨병, 치매 등으로 힘들어했으며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너무 대비되어 비관적이었다.

안 그래도 여운이 안 가셔서 울고 있었는데 더 슬퍼졌던 기억이 난다.

열정적인 키팅 선생님과 그를 보며 활기를 찾는 학생들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Now we all have a great need for acceptance, but you must trust that your beliefs are unique, your own, even though others may think them odd or unpopular, even though the herd may go "that's baaaaaad". Robert Forst said, "Two roads, diverged in the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길 원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여러분의 신념을 이상하게, 그리고 비주류라고 여겨도 여러분은 자신의 신념이 특별하고 고유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심지어 무리들이 "그건 진짜 구려!"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말했죠. "숲 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고 나는 인적이 드문 길을 택했으며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영화 중, 키팅 선생님의 말


나는 자신 있게 인적이 드문 길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위 대사는 항상 마음속에 품고 다니고 싶은 말들 중 하나인데 저렇게 생각하고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주류로 살지 않으면 실패자라는 소리를 들을까 겁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내 마음보다 주위의 시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를 본 게 어느덧 3년 전인데, 그래도 이 3년 동안 인적이 드문 나만의 길을 개척해 오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보여서 뿌듯하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인상 깊었던 문구가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berately, to front only the essential facts of life, and see If I could not learn what it had to teach, and not, when I ca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 I did not wish to live what is not life, living is so dear; nor did I wish to practise resignation, unless it was quite necessary. I wanted to live deep and suck out all the marrow of life, to live to sturdily and Spartan(...)
-「Walden」 by Henry David Thoreau

내가 숲으로 들어가길 원한 것은 삶을 철저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말하자면 삶의 본질이 되는 것만을 마주 대하고서 삶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고 또 죽게 되었을 때 내가 헛되게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아주 불가피하지 않은 한 체념의 방법을 따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삶을 깊이 살고 싶었고 삶의 모든 골수를 빨아 마시고 싶었다. 삶이 아닌 것은 모두 갈아엎고 그 너절너절한 잡풀을 면도질하듯 잘라내 버릴 만큼 강인하게, 그리고 스파르타인처럼 살기를 원했다.


'I wanted to live deep and suck out all the marrow of life"라는 이 직관적인 표현이 인상 깊었다. 삶의 골수까지 깊이 빨아 마시고 싶은 욕구는 얼마나 강한 욕구일까.

키팅처럼, 소로처럼 살고 싶지만 쉽지 않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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