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디 맥베스>의 악마적 매력 캐서린
성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잔인한 부분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관문들이 꽤 있잖아요. 자식을 희생시키게 만들고, 주를 부정하는 민족에겐 피의 보복을 하고... 이렇게 꽤 잔인한 맥락을 감안하고 저 격언을 다시 보면, 스스로를 돕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노력해야 하는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주님의 뜻에 따라 남을 죽이는 것도 가능한 걸까요? 주님의 뜻은 어디까지인지 감히 인간이 헤아릴 수 있을까요?
캐서린(플로렌스 퓨)은 말 그대로 팔려온 어린 부인입니다. 늙고, 성불구의, 괴팍한 대지주. 반면에 캐서린은 17살의 어리고, 욕망에 가득 찬, 영리한 사람입니다. 권력의 위계를 아주 잘 알고 있고 제 입맛대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억압과 폭력에 짓눌려 찌그러지기보다는,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이듯, 제 역할과 지위를 톡톡히 누릴 줄 아는 사람이에요. 오히려 제 위치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같은 지주로서' '같은 여자로서' '같은 연인으로서'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은 끔찍한 행동들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해낼 수 있어요. 빌려온 지위였기 때문이었을까요. 권력을 사용할 줄만 알았지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기엔 너무 역사가 짧았거든요.
저는 드라마 <SKY캐슬>을 재밌게 봤는데요. 극 중 '혜나'와 캐서린이 겹쳐 보였습니다. 혜나는 평생 가진 것 없이 살다가 생부의 존재를 알게 되고 SKY캐슬에 입성하게 됩니다. 아빠와 아빠가 가진 배경을 하나 둘 체험하다가, 갖고 싶어 지고, 딸로서 예서의 자리까지 빼앗기 위해 그야말로 폭주하다가 비극을 맞게 되는 인물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혜나는 그 모든 욕망을 감당하기에 너무 어렸어요. 어리다는 건 능숙하지 못하다는 뜻인데요. 제 욕망이 어디까지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고, 자신의 행동들이 불러올 책임들을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고 보스몹(?)에 의해 저지당하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권력 사회 속에서 캐서린은 절대 권력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기에 자신을 해할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습니다. 혜나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릴 일은 없겠지만 역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허무하게 끝낼 수는 있어요. 그렇다면 고삐 풀린 욕망의 폭주기관차 캐서린은 악마 그 자체인 걸까요?
제 생각에 '절대악'처럼 보이는 캐서린이 그야말로 악마적인 매력을 가진 이유는 역설적으로 인간적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캐서린은 절대 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까지 모두 죽이는... 그런 상황이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마저 노리는 상황은 더더욱 알지 못했겠죠. 그래서 그 위협들을 피해 가는 방식이 굉장히 임기응변식입니다. 폭주하고, 더 폭주하는 모습은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지 철저한 계획범죄가 아니에요. 한이 서린 절대악이 아니라 그저 눈 앞의 욕망에 따르며 위험한 칼자루를 휘두르는 것뿐입니다. 절대악이 아니라 그저 GONE BAD라는 것이죠. 죄책감과 두려움은 결과를 받아들이기 위해 때로는 무시되기도 합니다.
캐서린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너무 힘든 인물입니다. 시대와 관습의 피해자인 동시에 전유자입니다. 억압을 세습하고, 살기 위해 죽게 만듭니다. 스스로를 구하는 핏빛 선택들을 해나가는 레이디 맥베스. 제가 본 영화 속 인물들 중 가장 깊은 잔상을 남긴 악마적 매력의 캐릭터였습니다. 숨 막히고, 잔인하게 현실적인 영화의 분위기를 견디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서 더욱 캐서린의 행동에 설득력이 부여되는 것 같기도 했구요. 사실 마지막 살인만 빼면, 캐서린이 이해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구하는 방법이 이런 거라면,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욕망하는 인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영화 <레이디 맥베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