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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25. 2022

CDP부터 라디오까지, 불편함의 기억

휴대용 음원 재생기의 격동기를 거친 세대로서, CD플레이어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편하기로 따지면 당연히 이후에 나온 MP3플레이어가 압도적으로 편했지만, 레코드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장점으로 꼽는 이유, 즉 넓은 앨범 커버를 감상하고 매체를 직접 손으로 갈아끼워 듣는 즐거움 등등이 CD에도 제법 부합하는 편이라 CD로 음악을 들으면서 ‘어휴, 너무 불편하다. 음악만 들어가는 기기가 있었으면……’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런 불편에 민감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이겠지만…….


휴대용 CD플레이어를 사용할 때는 대형 서점이나 음반점 같은 곳을 들르거나 지날 기회가 있으면 들어가서 구경하고 어쩌다 뭔가를 사오는 재미도 있었고, 그렇게 모은 음반이 책장에 쌓여가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컸다. 자기 전에 다음날 학교에서 들을 음반 네다섯 장을 골라서 챙기는 것도 최강의 패를 준비하는 카드 게이머처럼 설레는 감이 있었다. 이때 나는 조그만 틴케이스에 CD 서너 장만 준비해서 갖고 다녔는데, 공부만 아니라면 뭐에든 심취하기 좋은 시절인지라 십수 장이 들어가는 두툼한 앨범을 갖고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친구에게 무슨 만화책 빌려보듯 음반을 빌려 듣는 것도 제법 재미있는 일이었다. 요즘은 그런 식으로 만질 수 있는 콘텐츠를 빌려주는 것도 드문 일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익히 알려져있듯이 CD플레이어 전에는 ‘워크맨’이라 불린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가 휴대용 음원 재생기로 보편적이었고, 나도 아버지가 어디서 구해온 것을 종종 갖고 다니긴 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게 그렇게 멋지게 느껴지진 않았고, 음악을 깊이 즐기는 나이가 아니었던 탓인지 주변에서도 유행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워크맨은 찰칵찰칵 뚜껑을 열고 테이프를 바꿔 넣거나 모터로 이리저리 감는 기계적인 맛이 좋았는데, 그게 기꺼이 감수할 만한 불편함이 되진 못했던 듯하다. 수동으로 타이밍을 맞춰 테이프에 곡을 녹음해 넣는 것도 여간 귀찮지 않은 일이었고.


CD플레이어가 발전을 거듭해서 몇 초 내내 튕기지 않는 기술도 도입되고 동영상을 재생하는 화면까지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을 전후해서 보급된 MP3P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듯 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너도나도 다 갖고 다니는 물건이 되었지만, 나는 어쩐지 그때부터 음악 듣는 게 좀 시들해진 느낌이 든다. 분명히 전에 듣던 곡들을 넣어서 듣긴 했을 텐데 인상적인 기억이 없다. 진짜 음반은 진짜 음반대로, 집에서 CD-RW로 제작하고 앨범 표지를 인쇄해서 만든 가내수공업음반이면 가내수공업 음반대로 커버를 감상하며 내일을 위해 엄선하고, 학교에 가면 그렇게 도시락 싸오듯 준비한 음반들을 접시 핥듯이 싹싹 듣고 또 들은 물리적 추억이 남지 않은 탓이리라.


그래서인지 나는 언제부터인가 싸구려 라디오를 갖고 다니며 클래식 채널만 듣는, 시대를 생각하면 약간 특이한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음반을 고르거나 음원을 채우거나 기기를 충전하는 귀찮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에선 라디오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공부할 때는 귓구멍을 막기만 하면 되었으니 공기 중에 떠도는 음원을 퍼다쓴다는 것은 나름대로 효율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라디오를 듣는다고 하면 방송을 듣느라 집중을 못한다며 걱정하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당시에 나는 좀 이상할 정도로 라디오 방송에 관심이 없어서 방해가 된 적도 없었다. 아무튼 그때는 라디오가 내 상황에도 맞고 간편해서 좋은 선택이었다. 다른 기기와 달리 후레시도 달려 있어 유용하기도 했고. 농담이 아니라 그때는 핸드폰이 없었던 터라 뭐든 빛이 나면 쓸 때가 있었던 것이다…….



CD의 시대는 편이성과 물리적 재미가 잘 타협된 시대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흘러 MP3P 몇 대와 핸드폰, 아이팟을 거쳐 스마트폰을 쓰게된 지금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전전하고 있는데, 이게 기막히게 간편하긴 해도 음악 생활을 예전만큼 즐겁게 해주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마치 책 한 권을 사서 읽는 대신에 여러 조각으로 잘린 무료연재분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음악가가 심혈을 기울여 구성한 앨범을 쭉 듣는 대신 이것 좀 들어보다 별로면 건너뛰길 반복하는 것이다. 아니면 추천 대로 흘러가는 곡 중에 특히 괜찮은 것을 골라 하트나 찍는 상황인지라 앨범이라는 작품 하나를 듣는 달성감, 성취감도 희미하고, 아무리 좋아한들 내가 소유할 수는 없다는 점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달까……. 이런 음원 스트리밍 시대에 딱 맞는 즐거움을 아직 발견해내지 못한 것 같다. 내게 음악은 생활의 소품 같은 것인데 사용 기간이 끝나면 싹 다 회수해가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니, 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CD음원을 듣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데, 기업들도 나도 필요없다고 이것저것 버리면서 여기까지 왔더니 CD를 듣는 것도 아주 번거로운 일이 되고 말았다. 전자제품 제조사도 CD를 쓴다는 선택지를 빼고 있고, 나도 CD가 돌아가는 예전 기기를 유지하지 않은 탓이다. 랩탑에는 외장 드라이브를 꽂아야하고, 그나마 하나 있던 컴포넌트 오디오는 고장나서 CD를 읽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오디오를 새로 사기는 그렇고, 휴대용 CD플레이어 하나 사놓으면 잘 써먹을 날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쇼핑몰을 찾아봤더니, 휴대용 CDP는 지금도 8만원쯤 나가는지라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사듯 가볍게 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심지어 CDP의 전성기처럼 얇고 아름다운 비행접시나 변기 뚜껑 같은 것들은 있지도 않다. 사회와 기술의 변화로 아름다운 CDP는 쉽게 누릴 수 없는 초고대 문명 비슷한 게 되고 만 것이다.


옛날에 나의 형은 전자제품으로 지구를 지배할 기세였던 소니의 팬이었기에 당시 기술의 정점을 달성했던 워크맨과 CDP를 지금도 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걸 생각하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예전에는 신기술이 나와서 문화의 양상이 변하면 예전 것을 치워버리는 걸 당연하게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특정 기술이 ‘아름답다고 해도 좋을 만한’ 정점을 이루는 시점이 분명 있으니, 그 시절의 물건을 보유하고 추억하는 것도 음반을 물리적으로 소유하고 듣는 것처럼 재미난 일이다. 언젠가 충분한 공간 엇비슷한 게 생긴다면 레코드 플레이어를 사서 좋아하는 음반 몇 개를 걸어보고 싶기도 하다.


요즘은 근 1년 넘게 매주 금요일마다 라디오 방송 하나를 녹음해서 듣고 있다. 그런데 이때 사용하는 기기가 재미있게도 스마트폰이다. 유선 이어폰이 안테나 역할을 하기에 이것을 잘 뻗어 서랍장에 걸어놓은 다음, 시간에 맞춰 녹음 버튼을 누르고 끝나면 중단함으로써 따끈따끈한 녹음 파일을 생성하는 것이다. 첨단 기기를 쓰고 있지만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작업이라, 종종 이어폰 위치가 잘못되면 잡음이 들어가기도 하는 게 독특한 맛이 있다. 게다가 방송에서 엄선하여 들려주는 음악들 중에 기막히게 취향에 맞는 것들이 종종 있어 인간의 추천이 맞아떨어지면 이렇게 감탄스럽구나 싶기도 하다.


글이 ‘아날로그 최고’라는 심심한 주장으로 끝나기 전에 수습하자. 요점은 아날로그인가 디지털인가가 아니라 ‘어떤 체험이 추억이 되려면 일단 기억에 남아야 하는데, 불편함을 동반하는 체험이 기억에 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취향에 맞는 것만 공기처럼 당연히 깔려 있는 환경에서 듣는 음악보다는 어느 정도 번거로운 짓을 거쳐서 듣게 된 내 취향의 음악이 더 큰 기쁨을 준다. 물론 ‘번거로운 짓’이 공인인증서 로그인처럼 끔찍한 것이면 곤란하겠지만, 내 손에 쥐고 볼 수 있는 형태를 갖춘 음원을 다루는 정도, 주파수를 맞추고 전파를 잡는 정도의 불편함이라면 지금도 종종 감수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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