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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03. 2023

유혹하는 불량식품과의 전쟁



식생활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는 편이다. 현대 한국 대도시에 거주하는 성인의 식생활의 평균 다양성 점수를 100이라고 잡으면 나는 아마 40에서 50 정도가 아닐까 의심한다. 일단 정상적인 아침 식사는 하지 않는다. 효율성과 체중 감량을 위한 선택이다. 대신에 유행이 좀 지난 ‘방탄 커피’를 마신다.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리고, 여기에 MCT 오일과 버터를 일정량 섞어 만드는 커피다. 간단히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영양 식사라고 하기에는 어렵고, 간헐적 단식을 보조하는 수단에 가깝다. 저녁부터 긴 공복 상태에 들어가면 자기 지방을 분해시키는 타이밍이 오는데, 이를 더 길게 유지하면서 당장 저장하지 않고 쓸 에너지로 지방을 공급하는 게 바로 방탄 커피의 원리라고 한다. 제법 과학적인 것 같다. 이를 음용해서 몇 킬로나 뺐다고 후기를 남긴다면 멋지겠지만, 그렇게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일단 회사를 다니는 석달 동안 착실하게 찐 3킬로그램 정도는 다시 뺀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간식이나 야식 따위를 먹지 않은 덕이고, 방탄 커피가 여기에 어느 정도의 부가적 효과를 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건강 기능 식품과 마찬가지로 이런 종류의 음식은 효과를 측정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심지어 간헐적 단식이 감량에 효과가 빼어난지에 대한 논란도 많다. 자가 포식 상태가 특별한 효과를 일으킨다기보다는 그냥 간헐적 단식이라고 여긴 시간 동안 뭘 먹지 않은 만큼 열량 섭취가 줄어들 뿐이라는 연구 결과도 주워들었다. 소식과 공복 상태 유지가 노화를 늦춘다는 얘기는 대체로 사실로 여겨지고 있으니 의미는 분명 있겠지만, 간헐적 단식후에 방탄 커피로 지방을 섭취하는 것보다는 이것도 그냥 안 먹는게 감량에는 나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방탄 커피의 이점은 감량에 도움이 된다는 것보다는 아침을 번거롭게 이것저것 챙기거나 고심해서 먹는 대신에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절실하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가족들이 모여 앉아서 대단히 든든하게 먹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형의 분가와 아버지의 근무지 이동 등을 거치며 아침 가족 식사도 자연스럽게 해체되었고, 다들 알아서 챙겨 먹는 게 기본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아침으로 떡이나 시리얼 따위를 먹게 되었는데, 거기서 벗어난 것만 해도 편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귀찮고, 기름기가 강한 커피의 맛은 즐겁지 않은 구석도 많지만, 아침을 간소화하고 허기를 밀어내면서 카페인으로 정신을 깨우는 이 방식에서 쉽게 벗어나진 못할 것 같다.


점심이 되면 빵과 우유와 시리얼을 먹는다. 대체로 잡곡빵에 계란을 넣어 먹는데, 계란은 부치지 않고 컵에 두 개를 깨서 넣은 다음 잘 휘저어 뚜껑을 덮고 전자레인지에 1분 가량 돌린다. 그러면 계란찜과 엇비슷한 상태가 되어 식감도 좋고, 많은 양을 먹는다는 착각이 들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을 식빵 사이에 넣고 케첩과 머스타드 소스를 뿌려 먹는다. 상추가 있으면 상추를 넣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채소는 넣지 않는다. 시간적 효율성과 맛, 건강 세 가지 가치 사이에서 효율성에 중점을 두고 타협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벗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볶은 귀리를 토핑해서 씹는 맛과 포만감을 연출한 시리얼을 두유와 함께 곁들일 때도 있고, 만두를 먹을 때도 있다. 어쩌다 집에 다른 빵이나 햄버거 따위가 입고되면 그걸 우선적으로 먹어 치우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점심은 빵과 두유를 먹게 된다. 심지어 직장에 출퇴근할 때도 점심은 개인적 교류와 소통의 날로 지정한 월요일을 제외하면 항상 빵과 두유로 해결했으니, 빵이나 밀가루 음식을 빼면 식생활이 난처해질 듯하다. 사실 누가 묻는다면 빵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부정할 마음도 없진 않다. 그러나 그건 빵과 밀가루 음식도 이미 주식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기나 물처럼 당연히 필요로 하는 것을 애호한다고 표현하기는 좀 어색한 느낌이 있으니까.


그렇게 아침과 점심을 그럭저럭 해결하는데에 비해 저녁은 아주 푸짐하게 먹는다. 어머니가 차린 밥을 식구들이 모두 모여 먹기 때문이다. 건강한 식생활은 아침이나 점심을 많이 먹고 저녁을 덜 먹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던데, 그것과는 정반대로 돌아가는 셈이다. 하지만 모두의 패턴이 뿔뿔이 흩어진 이제 아침을 잘 먹고 점심 저녁을 대충 해결하기란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저녁까지 각자 해결하자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공동 생활을 하는데 그렇게까지 각자 먹으면 효율성도 많이 떨어진다. 그리하여 그럴듯한 식사는 저녁 한끼만 먹는 생활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아무리 먹는 일에 큰 가치를 매기지 않는 나라도 종종 식생활이 황폐하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아침 점심은 말할 것도 없이 무한 반복이고 심지어 저녁까지 비슷한 메뉴의 긴 반복인데, 외식할 일은 한 달에 기껏해야 두 번쯤 있을까 말까 하니, 틀에 박힌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럴 때면 뭔가 좀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갈구에 시달린다. 식욕은 식욕인데, 일반적으로 말하는 식욕, 즉 맛있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잔뜩 먹어치우게 하는 욕구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과 쾌락에 대한 갈구가 식생활 방면으로 터져나오는 듯하다. 특히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피곤하면 이런 느낌에 심하게 시달린다.


(음식이 영혼을 채워주진 못하지만 당장은 즐겁게 해준다)



그리하여 견디기 힘들어질 때마다 군것질 거리를 파는 가게 근처를 그냥 지나지 못하고 들어가서 뭐든 하나쯤 집어들게 된다. 과자일 때도 있고, 술일 때도 있으며, 당연히 양쪽 모두일 때도 종종 있다. 과자로는 식감이 강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가격에 비해 양이 많은 편인 새우깡을 자주 먹었는데, 요즈음에는 오징어 땅콩을 먹을 때가 많았고, 가끔은 별뽀빠이를 먹기도 했다. 셋중에선 오징어 땅콩의 만족도가 근소하게 높은 것 같다. 그러나 이건 너무나 고급 과자라서 포기했고, 별뽀빠이도 너무 빨리 술술 들이켜듯이 먹게 되여 자제하게 되었으며, 새우깡은 짠맛이 걱정스러워서 먹지 않는다. 대신에 식감이 좋기로 유명한 꼬북칩을 집을 때가 많아졌다. 이런 추세라면 아마 조만간 센베처럼 딱딱한 과자만 먹지 않을까? 스트레스의 강도에 따라 입으로 깨어 부수고 싶어지는 과자의 단단함도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술을 마시는 날도 좀 늘었다. 엄밀히 말하면 음주는 하루동안 먹은 식사의 종류나 만족도와 큰 관련은 없는 것 같다. 그저그런 메뉴로 때웠다고 밤에 술을 마시고 싶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저녁에 술과 어울리는 맛있는 음식을 술 없이 먹으면 이후에 술 생각이 강해진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과자를 집을 때도 여차하면 술까지 사게 되곤 한다.


주종은 맥주를 선호하는 시기가 상당히 길었다. 대학교에서 친구들과 마실 때는 흥청망청 대중 없이 마셨고, 가족끼리 마실 때는 캔맥주를 500밀리에서 700밀리 정도 마셨다. 그러다 혼자 마시기 시작한 뒤로는 대체로 1리터 이상을 마시게 되었다. 혼자서 마실 때는 배가 차는 안주를 덜 먹게 된 탓이리라. 게다가 체중이 늘어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아질 때까지 필요한 알코올의 양이 늘어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 코로나 유행 이후 우울감이 심해지면서 혼술을 아예 끊게 되었는데, 근래에 들어 놀러 다닐 때마다 마신 위스키가 참 맛있다 싶어서 독주만 골라 마시는 습관이 생기고 말았다. 심지어 피곤할 때 알코올을 들이부어 일시적 신경 마비로 인해 느껴지는 안락감을 즐기는 지경까지도 갔으니, 어떻게 봐도 건강한 생활 습관은 아닐 뿐더러, 고생해서 뺀 살이 고스란히 돌아오기 시작한 게 끔찍해서 다시 끊게 되었다. 집에 있는 독주가 바닥나기도 했고.


그리하여 다시 밋밋한 식생활로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원래부터 이렇게 살았고, 그 기간도 짧지 않은 터라 아쉬움에 어쩔줄 모를 지경은 아니다. 대체로 큰 문제 없이 지내는 편이다. 허기지거나 뭘 씹어먹고 싶어서 견딜 수 없을 때에는 초콜릿 함량이 높아서 쓴맛이 나는 초콜릿을 몇 알 집어먹는다. 이런 초콜릿은 당 수치를 느리게 변화시킨다는데, 그게 사실인지 감량에 심한 악영향을 끼치진 않는 것 같다.


한편으로 술을 마시고 싶을 때는 차를 끓여마시곤 한다. 따뜻한 차의 온도와 향이 맛있는 음료를 갈구하는 심리를 약간이나마 달래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목을 자극하며 내려가는 시원한 술의 그 맛만큼은 어쩔 수가 없어서, 요즘은 닥터 페퍼 제로를 사서 마시곤 한다. 어째서 닥터 페퍼인가 하면, 고유의 독특한 향 때문에 평소에 배달 음식이나 식당 음료로 접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좀처럼 접하기 힘든 특수성으로 나를 잘 대접한다는 느낌을 연출하는 셈인데, 얼음으로 아주 차게 식혀 마시자면 확실히 이 정도면 그럭저럭 됐다는 느낌이 들긴 한다. 아마 이것도 익숙해지면 약발이 듣지 않을 테지만, 요즘은 저칼로리 탄산 음료가 쏟아지는 중이니 이것저것 시도하면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닥터 페퍼 같은 탄산 음료를 매일매일 꿀떡꿀떡 마시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설탕이 안 들어간다고 해서 건강에 좋을 턱도 없고, 돈도 돈이며, 쓰레기도 적잖이 나온다. 그러니 슬슬 콤부차나 자스민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도록 뇌를 뜯어고쳐야할 것 같은데, 어째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식생활 자체의 수준을 좀 더 높여서 깊은 밤에도 아쉬움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아니면 대체 식품을 잘 찾아서 비교적 건강한 방식으로 욕구를 해소하는 게 맞는 것일까? 어디서 간단히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앞으로도 내 몸을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해보면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차와 건강한 식생활 얘기를 하자니 생각나는 밤이 있다. 십여년 전, 대학생 때 동아리 친구들과 한 후배의 집에 놀러가서 늦게까지 신나게 놀았다. 그때 우리는 아주 건전하기 짝이 없게도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았다. 대신에 낮에는 콜라를 먹고 밤에는 차를 마셨다. 철관음을 고급 다기 세트와 원목 테이블을 이용해서 끓였는데, 그때의 정경과 맛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모든 게 아름답고 즐거운 순간이었고, 알코올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피자를 먹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맥주 생각이 나긴 했지만, 밤에 차를 마시고 놀 때는 모든 게 완성적이어서 그런 사특한 물질은 일절 필요 없었다. 그 순간을 떠올려 보면 내게 필요한 것은 사실 맛있는 음식이나 전두엽을 마비시키는 알코올, 혹은 시원한 탄산 음료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행복의 시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은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도 아까운"이 개정되어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리며, 책 속의 세 부분을 남깁니다.






버림받은 물건이나 버려질 때가 된 물건을 쓴다는 행위는 대개 이런 식이다. 같은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새것을 사서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편이 합리적일 때가 많다. 그런데도 이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첫째가 돈이 불충분하기 때문이고, 둘째가 사람이란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남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알아보았을 때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타인과 식사를 할 때면 아무래도 부끄러워진다. 혼자서만 메뉴판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저렴한 음식을 찾는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고, 성인으로서 온당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아 괴롭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충분히 노력했으니 자신이 가끔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호캉스를 긍정하려는 이유는 그게 합당하고, 자격을 따져선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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