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 어필
안 쓰는 물건 팔아치우는데 무슨 어필까지 하란 말인가. 이걸로 먹고 살 것도 아니고.......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일반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다. 물건 팔아 치우기도 귀찮고 바쁘고 번거로운 마당에 머리를 써서 이 물건이 이렇게 좋다는 글짓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얼마 없으리라. 그러나 많은 물건을 처분해야 하거나, 빨리 처분해야 할 경우, 혹은 물건을 팔아서 최대한 돈을 회수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아 속이 영 상한 적이 있다면 장점 어필은 분명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다른 부분이 시원치 않아도 장점이 잘 전해진다면 잠재적 구매자의 마음을 돌리는 한 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옷도 살까말까 고민되는 와중에 어떤 자리에 갈 때 무엇과 매치하면 딱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바뀌곤 하지 않는가.
간단히 예를 생각해봐도,
‘스마트워치. 흠집 없고 배터리 짱짱합니다. 사진 참조’
보다는
‘스마트워치. 흠집 없고 배터리 짱짱합니다. 20그램으로 가볍고 어떤 복장에든 부담없이 찰 수 있어 유용히 잘 썼습니다.’
가 훨씬 매력적이고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을 보면 여주인공 미도리가 여행 안내서를 쓰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단순 정보만 쓰지 않고 ‘철새들은 이곳이 변한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하고 매년 찾아온다’ 같은 감성적 수식을 추가해서 인기를 끌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렇게 한 문장이라도 마음에 와닿는 구석이 있으면 읽는 이를 움직이기도 쉽다. 지갑을 열기도 쉬워지기 마련이고.
따라서 우리도 노련한 매장 주인 혹은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팔 물건의 장점을 드러내며 이 물건이 이래서 좋다고 부지런히 주장해야만 하는데, 문제는 정말로 쇼호스트처럼 상품 장점을 강력하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순도 100퍼센트의 장사꾼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다수에게 보이도록 물건을 내놓고 팔고 있는 입장이니 장사꾼이 아니라곤 할 수 없겠지만, 중고 시장에서 전문 판매자로 보여서 특별히 좋을 일은 없다. 각기 상태가 다른 상품 100개를 매입해서 파는 사람보다 자기가 쓰던 물건 한두 개만 파는 사람이 물건에 대해 더 잘 알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점에 대한 어필은 적당히 간결한 게 더 나은 편이다.
그렇다면 보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며 주문하려 들 정도로 강력한 촌철살인의 문구를 뽑아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다. 중고 시장의 매력은 판매자로부터 상품의 후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임을 떠올리자. 요컨대 직접 써보니 이런 점은 좋았다는 사실을 가급적 진솔하게, 장황하지 않게 쓰면 된다는 말이다. 소재나 기능에 대한 얘기도 좋고, 디자인이 좋았다는 얘기도 무난하다.
‘쉘러 드라이스킨 원단으로 흡한속건이 좋아서 편하게 입은 바지입니다.’
‘칸막이가 잘 되어 있어서 유용하게 쓴 가방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워크웨어 풍에 잘 맞는 재킷입니다.’
이 정도면 딱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편이다. 쥐어짜지 않아도 저절로 떠오르는 내용이 있다면 여기에 한두 문장 정도는 더해도 괜찮겠다. 후기처럼 실제 사용하고 느낀 장점이면 더 좋다.
‘칸막이가 잘 되어 있어서 유용하게 쓴 가방입니다. 30리터급으로 해외여행 갈 때도 짐 다 챙겨넣고 공간이 약간 남았을 정도로 넉넉하고 트렁크 손잡이에 거는 부분도 있어 편리합니다.’
이만하면 마침 가방이 필요한 사람이 혹할 법도 하다. 실제로 물건을 써본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고 물품 판매자는 소비자의 편에 있으며 어쩔 수 없이 잠깐만 판매자측에 발을 걸치고 있다는 느낌을 유지하는 게 좋다.
반면에 어필에 심취한 나머지 문장을 끝도 없이 추가하면 과해보인다는 예시도 살펴보자.
‘드라마에서 아무개 씨가 사용해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한정판 모델인 거 다 아시죠? 칸막이가 잘 되어 있어서 유용하게 썼습니다. 30리터급으로 해외여행 갈 때도 짐 다 챙겨넣고 공간이 약간 남았을 정도로 넉넉하고 트렁크 손잡이에 거는 부분도 있어 편리합니다. 등판 매쉬 처리되어 땀이 안 차는 건 물론이고 어깨 끈에 있는 작은 포켓에 귀중품 수납 가능합니다. 등판 옆 포켓은 RFID 방지기능이 있어 카드 복제를 통한 신종 사기를 막을 수 있으니 더욱 안심이겠죠?’
이쯤 되면 분명 장점 전달은 잘 되긴 했는데, 아무래도 거래가 약간 망설여진다. 심하게 전문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소비자 느낌에서 벗어나서 물건을 팔 수만 있다면 뭐든 감수할 것 같아 신빙성이 하락했다. 과유불급이다. 그러니 장점을 많이, 재미있게 쓰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쇼핑몰처럼 변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런데 거의 쓴 적이 없거나 가족의 물건을 파는 것이라 물건의 장점을 알 수 없다면 어쩌면 좋을까? 이럴 때면 장점을 재빨리 발굴해내는 수밖에 없다. 제품의 공식 판매 페이지를 찾아내어 상품 설명이나 고객 후기를 종합하는 것이다. 벼락치기로 쓴 리포트 같지만, 한 푼이라도 더 벌자면 대충 잔머리라도 굴려야지 어쩌겠는가. 그러나 이 경우에는 ‘이렇게 좋다더라’라는 식으로 정보 출처를 언급해야지, 직접 써보고 얻은 경험인 척하지는 말자. 누가 구체적인 사항이라도 질문했다간 당장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이렇게 은근슬쩍 남을 속이는 사람이 늘어날 때마다 중고 장터를 찾는 이는 줄어든다. 넓게 생각하면 진실만이 나와 시장 전체의 이득이 된다는 걸 잊지 말자.
어디서 파는 무엇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구글 렌즈 같은 이미지 검색을 동원해도 판매 페이지고 뭐고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물건이라면, 이때는 직접 장점을 쥐어짜는 수밖에 없다. 모양이나 소재, 기능 따위를 기반으로 좋은 말 하나라도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리 한심하고 대책 없는 학생이라도 생활기록부에 괜찮은 말이 한마디라도 들어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굴러다니는 상자 하나라도 ‘잡다한 물건 정리하기 좋은 빈티지 박스’라고 할 수 있으니 폭군에게 아첨하는 십상시 같은 심정으로 거짓이 아닌 범위에서 장점을 하나만이라도 끌어내보자. 어차피 팔릴 물건에는 큰 효용이 없겠지만, 나중에 도통 팔리지 않는 물건을 처리할 때는 그 능력이 빛을 발할 것이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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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종이책: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957789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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